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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신복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어떻게 안다 말이야? 이 자는 신라 사람인데……."

"그래서 더욱 믿기지 않는 다 말이야."

"어디서 죽은 이 자를 보았다 말이야?"

"우리 배를 약탈했던 해적선에 타고 있던 자였어. 칼로 날 찌르려는 걸 아슬아슬하게 피했지. 이 놈 볼에 있는 큰 점 때문에 잊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김충연이 죽은 자의 옆얼굴을 살피자 정말로 커다란 점이 귀 밑 볼에 붙어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죽은 자를 자세히 살폈다. 한참동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김충연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이 자의 얼굴이 낯설게 보이지만은 않아."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정리하다가, 이내 자신의 이마를 툭 쳤다.
"이 자는 만파식적이 있는 섬을 찾기 위해 우리와 같이 배에 올라탔던 자야. 우리 숙부인 상대등을 호위하는 군사였던 것 같아."

왕신복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아냐. 날 죽이려던 해적이라니까."

둘은 죽은 남자의 옆에 나란히 앉아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왕신복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가 다 맞을 지도 모르지."

"우리 둘의 이야기가 다 맞다니?"
"이 자는 네가 탔던 배처럼 함께 그 섬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우리 배를 공격했다면 우리 둘의 말이 다 맞을 수 있잖아."

하지만 김충연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함께 떠났던 세 척의 배는 무기를 거의 싣지 않았어. 설령 항해 도중에 네가 탔던 배를 발견했더라고 공격하거나 약탈을 할 이유가 없어. 우린 그 섬을 찾아 대나무를 베어 신라로 돌아가야 하거든. 아무리 적대 관계에 있는 발해라고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할 리가 없다 말이야."

듣고 있던 왕신복이 죽어 있는 사내의 복장을 다시 한번 살피며 대답했다.
"지금 이 자가 입고 있는 옷이 그때와 전혀 달라. 단령이 아니라 낡고 허름한 백저포(白紵袍)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 대신 검정 머리띠를 했던 것 같아."

"네가 이 자를 잘 못 본 것 아냐?"

"날 죽이려던 놈인데 얼굴에 난 점과 이목구비를 잊을 리가 없지."

"우리 둘이 기억하는 사람은 이 놈이 분명한데 각자 다른 곳에서 만났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그 섬을 찾기 위해 떠났던 배가 모두 세 척이라고 그랬지?"

김충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신복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세 척이 함께 다니다가 그중 한 척이 따로 섬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이 언제였어?"

"글쎄……."
김충연은 한동안 기억을 떠올리다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신복이 즉각 그 말을 받았다.
"우리 배가 해적선에 습격 당한 것이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그 배의 모양새 또한 신라의 것이 분명했고 말야."

"그럼 함께 떠났던 배가 해적선으로 위장하고 사람들까지 해적들의 낡은 옷을 입고 너의 배를 약탈했다 말이야?"

왕신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 백성들이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그런 짓을 할 여유가 없어. 설령 너희 배를 공격했다면 해적선으로 위장하고 그러진 않았을 것이야."

"이 배가 정말 그 대나무가 있다는 섬을 찾기 위해서만 항해를 한 것일까?"

"그럼 다른 목적이 있다 말이야?"

왕신복은 그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어디엔가 생각이 미쳤는지 문득 이렇게 물어왔다.

"전에 네가 말했던 이상한 것 말야. 선원들이 어떤 것을 보고 모두 사라졌다고 했잖아."
"그걸 어제 확인하려다 갑자기 폭풍이 몰려오는 바람에 찾지 못했잖아."

"다시 한번 찾아보자."

"그게 이번 일과 무슨 관련이 있다 말이야?"

"어쩌면 네가 타고 있는 이 배의 항해목적을 밝혀줄 지 모르지."

"다른 목적은 없어. 우린 정말 그 섬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항해를 했던 것이야."

"우선 그것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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