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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 산별노사는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15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덟번째 산별교섭을 진행했으나 입장차를 좁히는데 실패했다.
ⓒ 석희열
보건의료산업 노사간 산별교섭이 무산되면서 병원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20일까지 자율교섭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낸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15일간의 조정 기간이 끝나는 다음달 4일 전국 99개 병원에서 산별총파업이 벌어지게 된다.

노조는 ▲산별기본협약(사용자단체 구성) ▲보건의료협약(의료공공성 강화) ▲임금협약(임금 인상 및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 보장) ▲고용협약(고용안정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과정협약(주5일제 전면 실시)의 5대 산별요구안를 들고 사용자 쪽을 압박하고 있다.

노사는 13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8차 본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교섭이 열려 타결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막상 요구안 심의는 하지 못한 채 정회만 거듭하다 끝났다. 교섭장을 찾은 참관인 150여명도 허탈해했다.

사용자 쪽은 이날 간사를 선임하지 않고 교섭장에 나와 노조의 큰 반발을 샀다. 더욱이 노조의 항의가 빗발치자 뒤늦게 요구안을 제출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사용자 쪽이 자율교섭보다는 중노위의 조정을 받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진정성을 담은 구체적인 안을 내놓고 원만한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용자 쪽의 태도를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며 "계속해서 교섭을 파국으로 몰아간다면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사용자 쪽 임시대표를 맡은 최일용 한양대병원장은 "간사를 뽑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간사 선임을 위한 정회를 요청한 뒤 "다음 교섭에는 책임지고 간사를 선임하여 나오겠다"고 말했다.

사용자 쪽이 제시한 안에는 노조 산별요구안 가운데 병원 특성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임금부분은 빠졌다. 식대 급여화 등에 따른 병원 경영 악화를 이유로 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에서는 임금 총액의 9.3%를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병원이 자꾸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말로만 해서는 믿을 수 없다"면서 "정말 어렵다면 근거를 대고 식대 급여화에 따른 경영 변화 등의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윤덕보 경희의료원 행정차장은 "입원 환자들의 식사는 일반 식사와는 다른 치료식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병원 경영은 사용자들이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말고 맡겨달라"고 맞받아쳤다.

다음 본교섭은 18일. 노조에서는 20일까지 마라톤 협상을 통해 교섭을 마무리짓자고 했지만 사용자 쪽은 18일 교섭을 해보고 향후 일정을 정하겠다고 맞섰다.

안풀리는 보건의료 산별교섭, 해법은 있다
윤진호 교수 "개별사용자 상대로 싸우는 것도 방법"

산별 노사관계에서 큰 숙제는 역시 사용자단체 구성 문제. 최근 대공장노조들이 기업별 담합주의를 버리고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산별시대의 물꼬가 터졌지만 산별교섭 3년차인 보건의료 사용자들은 사용자단체 구성을 미루고 있다. 사용자단체 구성은 사용자의 자치영역이라는 것.

이에 따라 한국적 산별 노사관계의 정착을 위해 사용자단체 구성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도 높다.

사용자단체 구성 법적 강제 안돼... 산별정착 위한 정부 지원 필요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사용자단체 구성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노조가 사용자단체 구성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용자를 상대로 산별노조의 위력을 보여주면 사용자 스스로 단체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 않으면 개별 사용자를 상대로 싸우라는 충고다.

윤 교수는 "보건의료산업은 내부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산별교섭이 가능하다"며 "실제로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보건의료산업만은 산별교섭을 하고 있고 그것도 단순한 산별교섭이 아닌 중앙교섭이 지배적인 교섭구조로 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윤 교수는 산별교섭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산별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의 도입 등 정부의 법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노사가 산별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별 위주로 되어 있는 법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정부는 교육 훈련과 고용안정, 사회보험, 산업정책 등이 산별교섭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산별협약 효력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교섭, 개별 병원간 임금 격차가 원인

산별교섭이 근본적으로 풀릴 수 없는 복병은 또 있다. 이중교섭, 이중 쟁의행위에 대한 병원 사용자들의 우려가 그것.

윤 교수는 "산별교섭에서는 최저한의 임금과 기준만 정하고 나머지 중요한 것은 다 지부교섭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이라며 "따라서 노조가 기본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중앙교섭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여 사용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윤 교수는 "사용자들도 산별교섭 초기단계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마치 산별교섭의 고유한 문제인양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며 "이중교섭 이중 쟁의행위 문제는 병원간 임금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임금 격차를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 석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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