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번쯤은 들어본 듯한 외국 동화 작품 중 하나가 <어린 왕자>일 것이다. 최근까지도 나는 그것이 어린이 동화인 줄로만 알았다. 읽어보니 사실은 달랐다. 이것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어야 더 좋을 책이었다.
작가인 생텍쥐페리는 2차대전 중인 1944년 공군조종사로 정찰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되었다. <어린 왕자>는 실종되기 1년 전인 194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전쟁으로 주변이 거의 폐허가 된 상황에서 작품 <어린 왕자>를 썼다.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을 되찾게 하려고 즉 인간성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창작 의도를 뚜렷이 밝혔다. 그는 작품에서 동심으로의 회귀가 인간성회복 방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갔을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작품 <어린 왕자>는 인물과 구성 두 가지 면에서 특징이 확연하다. 우선 작중 인물인 ‘나’가 누구인가이다. ‘나’는 서술자이면서 작가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구성의 복잡성이다. 이것이 독자에게는 독서 방해 요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구성이 난해해 몇 번을 더 읽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단계를 몇 가지 방식으로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인공 어린 왕자는 ‘나’이외에도 여섯 개의 별 여행 중 여섯 어른을 만난다.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썩 드는 어른은 아니다. 임금님․잘난 체하는 사람․술꾼․사업가․점등인(가로등에 불을 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지리학자 등이다. 이들 중 점등인과 지리학자를 제외한 네 명의 어른에게는 아주 실망한다.
임금님은 명령하기만 좋아한다. 잘난 체하는 사람은 자기 외모에 빠져있고, 남이 자신에게 칭찬하는 말만 듣는다. 술꾼은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부끄러움을 만든다. 사업가는 하루 종일 쓸데없이 별의 숫자만 센다. 점등인은 부지런한 사람이지만 바삐 일하느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지리학자는 탐험가의 보고 내용을 기록하는 이외의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한편 이들 여섯 어른 모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몹시 권위적인 사람, 지나치게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사람, 같은 실수를 반성 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무모하리만큼 실속 없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는 있지만 항상 육신이 피곤한 사람, 세상을 좀더 넓게 보지 못하는 사람 등이다. 어쩌면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인 것도 같다는 생각에 다소 떨떠름해진다.
중요한 내용은 더 있다. 주인공 어린 왕자는 고향이 소행성 B-612호라는 별이다. 이곳에서 그가 보살피던 한 송이 장미꽃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괴롭히는 캐릭터이다. 이것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싸우는 일은 흔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지구라는 별에서 만난 금빛 여우와 노란 뱀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금빛 여우는 자신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는 캐릭터다. 이것은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경우일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은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금빛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존재이기에.
다음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해법까지도 알려 준다. 이것은 사실 나에게 동화 읽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었던 부분 중 하나이다. 순간 잠시 눈을 감고 현재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머릿속으로 더듬어 보기도 했다. 여러분도 꼭 체험하기를 바란다.
노란 뱀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내는 캐릭터다. 손가락처럼 가늘지만 임금님의 손가락(무엇이든 손가락으로 지시만 하면 이루어지는)보다 힘이 센 존재다. 아무리 몸뚱이가 큰 사람이라도 30초안에 의식과 생명을 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왕자가 자기별로 돌아갈 때 노란 뱀의 도움을 받게 되는 장면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발목을 물어 잠깐 의식을 잃게 한 뒤 몸을 가볍게 한다. 이어서 모래에 쓰러지게 한다. 다음 어린 왕자 자신이 타고 온 별이 데려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반면 밝혀내지 못한 점도 있다. 나의 독서습관 탓인지 초독할 때부터 ‘어린 왕자’라는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 천착했지만 만족할 만큼 세세하게 밝히진 못했다. 나의 소견으로는 ‘어린 왕자’의 의미는 ‘깨지기 쉬운 보물’ 정도로 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아쉬울 뿐이다. 사실은 ‘왕자’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왕자’란 ‘소중한 것’, ‘보물’, ‘사랑’, ‘관심’, ‘배려’ 이상의 의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압권은 따로 있다. ‘나’가 마실 물이 없어진 상태에서 잠든 어린 왕자를 안고 물을 찾아 나서다 새벽에서야 우물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나’의 상황은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갈증이 심하다.
한편 세상 모르고 자신의 두 팔에 안겨 잠든 어린 왕자를 내려다본다. 순간 ‘나’는 마음의 눈으로 ‘어린 왕자’의 마음을 보게 된다. 어린 왕자가 별에 두고 온 장미꽃을 자면서까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는 어른이 동심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이쯤에서는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의 희열을 경험한 대목이다.
동화 작품 <어린 왕자>를 40대 중반의 어른이 되어서야 읽게 된데 처음엔 조금 서글펐다. 읽고난 현재의 기분은 엄청 다르다. 어린 시절에 안 읽기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린 왕자>를 읽은 뒤의 느낌 즉 독후감은 여기가 최정상일 것 같기 때문이다. 동화는 어린 시절에 읽으면 좋은 것이지, 어린 시절에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작품 <어린 왕자>에는 이외에도 어린 왕자라는 아이의 눈으로 어른의 단점을 날카롭게 제시한 부분이 많다. 사실자체보다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 내용보다는 겉모습으로 주로 판단하는 어른 등을 비롯해, 어린 왕자가 우리 어른에게 주는 과제를 겸허히 받아들여 개선해나가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동화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지녔기에 여태까지 동화를 멀리해온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권장하고 싶다. 옛날 상처 입었던 마음을 어루만져줄지도 모르는 책이라고.
덧붙이는 글 | <어린 왕자>(원작 생텍쥐페리, 엮음 홍윤기, 예림당,2005) 값 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