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를 고생시키던 양들, 진작 말 좀 잘 들었으면 좋았잖아!
우리를 고생시키던 양들, 진작 말 좀 잘 들었으면 좋았잖아! ⓒ 김하영

드디어 내일 양털깍기가 시작된다. 농장주인인 톰(60·가명)과 그의 아들 론(19세·가명), 그리고 이 기간에만 잠깐 일을 도와주기로 한 에이브(55세·가명). 이 세 사람은 새벽 5시에 도시락을 싸 들고 양을 몰러 갔다. 전편에서 말했듯 농장 끝에서 끝까지가 50km이기 때문에 한 두 시간 안에 끝나는 일은 절대 아니다.

이미 전날 톰이 혼자서 오랜 시간 동안 양을 몰았지만 오늘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양털깍기 창고 옆 울타리에 양들을 넣을 수 있다. 톰은 이번 양털깍기 기간을 위해 오토바이도 새로 샀다. 론은 작은 트럭을, 에이브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양을 몬다.

점심때가 지나자 톰이 혼자서 돌아왔다, 검정 가죽잠바에 하늘로 치솟은 머리. 록스타가 따로 없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서 그런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톰은 부인인 마릴린(50·가명)에게 나를 그곳에 데려가 구경하게 하라고 제안했다. 마릴린은 자신의 모토바이크 뒷 자석에 나를 태우고 론과 에이브가 한창 양을 몰고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수천 마리의 양떼가 걸어가는 모습

몇 분 정도 달린 후 판타스틱(Fantastic)한 장관을 맞이했다, 수천 마리의 양 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 마치 신의 부름이라도 받은 듯 말이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내 심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나는 마릴린의 뒤에서 뷰티풀(Beautiful)과 그레이트(Great)를 연발했다.

그 거대한 양 무리 뒤쪽에는 많은 새끼 양들이 엄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끼들에게 이 여정은 너무 멀고 힘들기 때문에 다리를 저는 새끼들이 많았다. 양털깍기 기간에 많은 새끼들이 엄마 양을 잃어버린다는 톰과 마릴린의 말이 떠올랐다.

양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과정이나 엄마 양털을 깍는 동안은 새끼랑 헤어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새끼가 엄마를 못 찾는다고 한다. 물론 조금 큰 새끼들은 나중에라도 엄마를 찾을 수 있지만, 생후 몇 주 정도 되는 어린 새끼들은 엄마를 영영 잃어버린다고 한다. 다리를 절면서도 엄마 옆에 바짝 붙으려고 애쓰는 새끼 양이 안쓰러웠다.

마릴린은 나를 론에게 넘기고(?) 돌아갔다. 나의 이 들뜬 기분과는 다르게 론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고, 역시나 양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렇게 이 일을 싫어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돕기 위해 집에 돌아온 것이 대견했다. 톰과 에이브는 양 무리 뒤에서 천천히 전진하며 양을 몰고 있었다. 혹여 무리에서 옆으로 빠지려고 하는 양들을 막기도 하면서 말이다.

군중심리를 갖고 있는 양들

울타리 문으로 한 마리라도 들어가면 빨리듯 쫓아 들어가는 양들. 마치 인간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군중심리같다.
울타리 문으로 한 마리라도 들어가면 빨리듯 쫓아 들어가는 양들. 마치 인간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군중심리같다. ⓒ 김하영

드디어 울타리 문 앞. 이제 양들을 몰아넣어야 한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앞서가던 양들이 당연히 문을 통과해 울타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양들은 마치 앞에 문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무리의 뒤에서 소리를 치고 위협을 가해도 옆으로만 도망가려 하지 절대 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론과 에이브는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도 차에서 내려 무리 옆으로 달아나려는 양들을 막아야했다. 그러다가 에이브가 양 무리 뒤에서 문 쪽으로 빨리 달리며 양을 몰아 몇 마리를 울타리 안으로 넣는 것을 성공했다. 그러자 이 멍청한(!) 양들이 그 몇 마리를 따라 울타리 안으로 빨리듯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굉장히 겁이 많기 때문에 다른 양이 한 마리도 없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마리라도 있는 곳이면 앞 뒤 재지 않고 뒤쫓아 들어간다. 마치 인간 사회 속 군중심리와 같지 않은가?

그 울타리 안에는 다른 작은 울타리가 겹겹이 있었다. 양을 분할해서 다시 다른 작은 울타리로 몰아야 했는데, 드디어 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