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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7월 2일 오후 5시 대전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전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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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렵고 딱딱하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들이 일부러 법전을 찾아가며 공부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법은 모든 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민들은 관심분야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안주거리 삼아 오순도순 이야기하곤 한다. '사학법'이나 '학교급식법' 등에 보여준 관심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조례'

법체계 중 비교적 하위개념에 속하는 '조례'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소위 지방자치단체의 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법령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제약은 지역 특성에 맞는 조례 제정을 어렵게 만든다. 아무튼, 법령이 국가의 정책기조나 방향을 제시하고 있듯,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조례만큼 중요한 법체계도 없다.

조례 제정권은 지방의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법의 위임이 없더라도 경우에 따라 다양한 조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자치사무에 한해서 그렇다. 간혹 조례를 검색하다보면 특색 있거나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모범적인 조례들을 찾을 수 있는데,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가 그 중 하나다.

"OOOO"란 시의 의사형성 단계에서부터 집행하는 단계까지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시와 시민이 협동하는 것을 말한다.

위 조항은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 제3조에 실린 내용이다. 눈치가 빠른 분은 알겠지만, 빈 칸에 들어갈 말은 "시민참여"다. '시민참여'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꼼꼼히 살펴보면 시민참여의 근본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 시정이 결정된 후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되기 전'부터 '시민들과 협동'하겠다는 의지가 잘 묻어 있다.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는 11조로 구성된 짧은 조례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시장 당선자가 시민단체가 제안한 '지방자치 100대 과제' 중 '시민참여기본조례'를 공약으로 수용하면서 2004년 9월,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조례가 제정되는 과정도 눈여겨볼만하다. 2003년 2월, 각계 분야 인사들이 참여해 '시민참여기본조례제정추진협의회'를 만들었고 시민참여의 기본 원칙에 따라 협의회에 참여할 위원들을 공모해 일반 시민 10여 명을 추가로 모집했다.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시민참여조례의 기본은 정보공개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가 만들어지자 여러 지역에서 부러움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안산시도 이에 질세라 2005년 초 '안산시주민참여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5·31 지방선거 때 메니페스토가 제안한 좋은 정책 중에는 '시민참여기본조례'가 지방자치 분야에 우선순위로 제시됐다. 청주의 모범적인 시도가 제도적인 측면에서 시민참여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제6조(회의공개의 원칙) 시에 설치된 각종 위원회의 회의는 법령 및 타 조례에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의 및 회의 자료 등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다.

정보공개는 시민참여의 기본 전제이다. 정보 없이 참여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제6조는 각종 위원회의 회의 및 회의 자료 등을 공개할 것을 의무화했다. 임의조항이 아닌 것이다. 정보공개법이 제정되어 있긴 하지만, 지역 차원에서 한 발짝 나아가 청구자의 공개요구가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는 의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제7조(위원회에의 시민참여)
①시에 설치된 각종 위원회의 위원구성은 공모제나 추천제 등 공개적인 절차에 의한 일반시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②제1항의 위원구성에 있어서는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위원회는 지역의 중요한 정책과 사안을 심의하는 기구이다. 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각 영역의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보통 지방자치단체 내에는 각종 위원회가 줄잡아 50여개 정도 설치되어 있다. 법정위원회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자치사무에 관해서 얼마든지 위원회를 만들 수 있다.

행정부 '들러리'가 되지 않으려면...

그런데 위원회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점, 이해당사자가 상당 부분 참여한다는 점, 행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한다는 점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누가 참여하느냐가 핵심이라면, 얼마나 민주적으로 선출하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청주의 조례는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공모제'나 '추천제'를 통해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추상적이긴 하지만, '여성,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 참여 보장'이라는 문구는 상당히 진일보한 내용이다.

제8조(예산편성의 시민참여)
①시장은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시민이 충분한 정보를 얻고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정보공개와 시민참여의 보장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시민의 예산편성 참여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하여 청주시예산참여시민위원회(이하 "예산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예산참여시민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이다. 여섯 개의 항으로 되어 있는 짧은 내용이지만 예산참여위원회의 기능, 구성방법, 권한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 예산편성 과정에서의 시민참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앞으로의 과정도 눈여겨볼만하다.

제9조(시정정책토론 청구제)
①시민은 시의 중요한 정책사업에 대하여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이의 타당성에 대한 토론을 시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하는 경우 연서하여야하는 시민의 수는 200인 이상이어야 한다.
③시장은 토론이 청구된 주요 정책사업에 대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개월 이내에 토론 청구에 응해야 한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시정정책토론 청구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시에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회를 200명이 서명하면 얼마든지 성사시킬 수 있다. 이런 제도들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라는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제도이며, 시의 정책방향을 시민과 함께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은 하나의 사건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는 '참여의 원칙'이 상당히 반영된 모델케이스다. 이런 훌륭한 조례의 내용이 껍데기로 남아 있느냐, 아니면 살아 움직이느냐는 이 제도를 운용할 주체들의 참여, 또는 인식의 정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행정부나 개별 시민들의 의지만 있다면 이 제도를 십분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일 경우, 박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조례가 제정된 지 2년여가 된 시점에서 조례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등 세부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시민참여는 물론,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중앙의 정책이나 상위의 법령이 채우지 못하는 시민참여의 빈 틈을 지역에서부터 일반화시켰다는 점에서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지방자치제도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들이 청주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고 발전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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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현 기자는 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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