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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험으로 한반도 정세는 긴장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월 15일 유엔안보리는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대북결의안을 채택하였고, 북한은 이를 자국을 고립시키려는 술책으로 규정,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대표적 분석이 '대미 협상용'이란 설명이다. 즉,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을 약화시키고, 6자회담을 비롯한 대미협상과정에서 자국의 협상력을 제고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분명히 북한의 자충수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반응으로 볼 때 북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미 부시 정권 등장 이후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오히려 "악의 축" 북한의 위협을 정당화함으로써 대미관계에 있어서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미국이 야심차게 추구하는 미사일방어체제(MD)와 미일동맹강화에 있어서도 매우 좋은 명분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벼랑끝 외교전술을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것일까? 북한은 정말로 비용, 이득을 계산하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행위자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인가?

만약 북한을 비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한다면 북한 벼랑끝 외교에 대한 더 이상의 분석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93-94년 1차 북핵위기, 98년 대포동 미사일 위기, 그리고 2003년 2차 북핵위기 과정에서 드러나듯, 벼랑끝 외교중에도 북한이 주변국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북한외교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북한의 벼랑끝 외교의 속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벼랑끝 외교로 인해 가장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주변국은 누구인가'에 우선 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국가가 바로 북한이 벼랑끝 외교로 무언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첫 번째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은 미국이외에 북한 벼랑끝 외교의 또다른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경제발전을 위해 주변국제환경의 안정을 매우 중요한 외교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중 한반도 안정은 핵심적 사안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반복되는 벼랑끝 외교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중국은 전통적 완충지대인 북한을 포기할 수도 없다. 특히 중국위협론에 맞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일동맹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

북한지도부가 합리적이라면 이러한 중국의 딜레마를 모를리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벼랑끝 외교가 중국의 딜레마를 극대화시킬 수 있고, 결국 벼랑끝 외교의 포기조건으로 중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에게 미국과의 수교는 체제안정을 위한 최고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벼랑끝 외교를 포기하고 보다 유연한 자세로 대미협상에 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그 과정이 매우 불확실하며, 또한 그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핵포기 등은 오히려 정권의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반면 중국과의 견고한 동맹관계의 유지는 비록 차선의 선택일지라도 체제안정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미국이 대이라크 공격을 감행해도 대북공격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넘어 중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체제안정을 위해 불확실한 최선(미국과의 수교)보다 확실한 차선(중국의 지지 확보)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북한 벼랑끝 외교의 또다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면 북한 벼랑끝 외교의 주상대는 중국이며 미국은 사실 조연에 불과하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분석은 1993년 3월 12일 NPT탈퇴, 1998년 8월31일 대포동 미사일 발사, 2003년 1월 10일 NPT 탈퇴로 개시된 세차례의 북한 벼랑끝 외교를 적절히 설명한다.

우선 각 상황직전에 북중 동맹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원인은 주로 중국이 북한의 적국(미국, 한국)이라 할 수 있는 상대와의 관계 개선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연쇄정상회담(1997년 10월 27일, 1998년 6월 27일)을 통한 중·미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형성, 그리고 2001년 9·11 이후 대테러 문제에 대한 중·미간 긴밀한 공조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러한 북한 벼랑끝 외교는 결국 중국의 북한달래기와 맞물리면서 종결되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예를 들어, 최고 지도부의 북한방문(1993년 7월 27일 후진타오 정치국 상무위원 방북)과 북한지도부의 방중(1994년 6월 7일 최광 총참모장) 등을 이용해 북·중 동맹관계를 재확인한다거나, 1999년~2000년 고위급 상호방문을 통해 한·중수교이후 소원해진 북중관계를 재정상하였다.

또한, 2003년 8월부터 개최된 6자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두차례의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2004년 4월 19~20일/2005년 10월 28~30일)을 통해 대북 경제지원 및 우호협력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미사일 발사에서 나타난 북한의 의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9월 4차 6자회담의 타결로 인해 북·미간 관계개선의 전기가 마련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11월 초 5차 6자회담부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문제로 인해 북미양국은 또다시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이미 9월 중순 북한의 대규모 달러위폐 및 돈세탁을 문제삼아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압력을 행사, 북한계좌를 동결시키기에 이르렀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이 북한의 주 외환거래은행이란 측면에서 이러한 조치는 북한에게 매우 심각한 타격이었다. 금융제재 해제를 6자회담 재개의 선결조건로 내세우거나 올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을 방문해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해 중국지도부와 협의하였다는 사실 등은 북한의 압박감을 반증한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중국정부의 관리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관련 중국외교당국자는 6자회담의 재개문제는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 4일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또다시 벼랑끝 전술을 꺼내들었다. 사실, 7월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을 고도로 의식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7월 11일이 1961년 7월 11일 체결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의 45주년이라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때를 맞추어 중국측 고위급 대표단의 방북은 예정되어 있었으며, 북한은 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란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북대표단에 6자회담 중국측 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중국대표단은 북한지도부와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였다. 협의결과에 대해 상반된 보도가 나오고 있으나, 중국의 북한 달래기는 이전 사례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은 듯 보인다.

비록 중국이 7월 15일 유엔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에 찬성하였지만, 애초 무력사용까지도 포함하는 미국 및 일본의 결의안을 거부하고 완화된 대북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은 기존의 입장과 일관된 것이다.

북한 벼랑끝 외교의 속내가 이렇다면 한국은 향후 어떠한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불행히도 문제해결을 위한 한국만의 특별한 카드는 없어 보인다. 즉,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북한은 반복적인 벼랑끝 외교를 통해 중국을 충실한 동맹국으로 붙잡아 두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현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문제해결 방안은 결국 북미 양국의 관계개선을 측면 지원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나 북한을 합리적 협상당사자가 아니라 제압해야할 악의 축으로 인식하는 부시정권에 대해 한국의 노력은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결국 2008년 말 미 대선에서 보다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한반도의 생존에 관련된 문제인데 다른 나라의 정치변화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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