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배를 모는 이영문 선생 뒤에 보이는 섬이 별학섬이다.
ⓒ 송성영
이웃사촌 정한섭씨로부터 어떤 모임에 함께 가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보통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또는 한미FTA 반대 집회와 관련돼 전화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뜻밖의 모임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태평농법을 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진다는데 회원이 아니라도 상관없다네요."
"그래요? 어디서요?"
"경남 사천인데, 섬 둘레가 600m에 불과하다나, 아주 작은 섬이래요. 거기서 해수욕도 할 수 있고, 낚시도 할 수 있데요, 근데 모임이 바로 내일이라서…."

무경운, 무농약, 무제초로 수질오염과 토양오염을 방지하고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있는 환경 친화적 농법이라는 태평농법. 태평농법은 이미 책으로 접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태평농법에서 무경운이라는 말은 완전히 경운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물리적인 경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토양을 인위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가급적 그대로 둔 상태에서 전작물(Pre-corp)의 부산물 등을 활용한 유기물을 공급하고, 화학물질의 공급을 최대한 억제하면, 땅 속의 미생물과 지렁이 등 토양 생물들이 자연적으로 땅을 부드럽게 하는 생물학적 경운을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내게 태평농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경운하지 않고, 자연을 쥐어 짜 거름을 만들어 쓰지 않아도 되고 그 많은 풀들을 일일이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자재를 거의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맨손으로 농사지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섬에 들어가는 배를 대주고 해수욕과 낚시까지 즐길 수 있고 태평농법에 관련된 강연을 듣고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는데 회비가 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은 공짜라고 합니다. 적게 벌어먹고 살아가는 우리 가족들에게는 딱 맞는 모임이었습니다.

▲ 태평농법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40여명이 찾아왔다.
ⓒ 송성영
'아주 작은 섬', 별학섬은 비토리 선착장에서 불과 300여m, 육지에서 엎드리면 이마빡이 닿을 만큼 아주 가까운 섬이었고 그 크기 또한 아주 작은, 그야말로 섬 둘레가 600m에 불과한 코딱지만 한 섬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비롯한 태평농법 모임 참석자들을 섬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온 사람은 '태평농법'이라는 책을 냈을 뿐만 아니라 '태평농법'이라는 용어를 맨 처음 사용했다는 이영문(53) 선생이었습니다. 빼빼한 체구에 온통 까맣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 영락없는 농투성이의 얼굴이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이영문 선생의 빼빼한 체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두 끼, 아침을 거르고 점심 저녁만 먹고 잠을 아주 적게 잔다고 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뭍과 엄청 가까운 별학섬이지만 해수욕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굴 껍질이 널려 있었고 때마침 장마 끝이라 육지에서 흘러온 흙탕물인지 뻘물인지, 바닷물이 탁했습니다.

아내를 감시조로 세워 아이들을 수심 얕은 바닷가에 풀어놓고, 정한섭씨 꽁무니를 따라 1시부터 시작된다는 태평농법 강연장에 끼어들었습니다. 이영문 선생의 강연을 들기 위해 물 건너 제주도에서부터 저 멀리 경기도 연천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어림잡아 50여명. 불행하게도 이번 장마 피해 때문에 참석 예정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 밭을 갈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고, 풀조차 뽑지 않는 태평농법 실험 밭
ⓒ 송성영
'태평농법 관심자'들은 오랜 시간동안 계속된 이영문 선생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태평농법에 관련된 강연은 저녁을 먹고 다시 시작해서 늦은 밤, 자정이 가깝도록 계속됐습니다.

낮에는 자연생태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밤에는 태평농법이란 무엇이며 태평농법을 이용한 벼농사와 밭농사에 관한 강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초보 농사꾼들에게는 아주 유익한 강연이었습니다.

특히 마늘과 상추, 감자와 콩, 양파와 시금치, 고구마와 참깨, 무와 배추 식으로 두 가지 작물을 동시에 섞어 심으면 풀도 잡아줄 수 있고 작물들끼리 호환성이 있기 때문에 풍작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땅에 많은 작물을 갈아먹어야 하는 나로서는 귀가 솔깃한 얘기였습니다.

또한 전(前) 작물을 수확하기 전에 이어서 파종 또는 정식하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농사 지어봐야 알겠지만 이 정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섬에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 흔히 볼수 없는 토종고추. 별학섬에서는 토종고추와 같은 토종 작물들을 실험 재배 하고 있다.
ⓒ 송성영
다음날 새벽, 물때에 맞춰 정 선생과 나는 텐트에서 아이들 몰래 빠져 나왔습니다. 바닷가에서 잡은 홍합을 미끼삼아 밀물에 낚싯대를 펼쳤지만 거의 공치다 시피 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곧바로 강연이 시작됐는데 이번에는 황금만큼이나 비싸다는 권농화와 아마, 올리브 등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특별한 작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강연 중간에 있던 휴식시간을 이용해 섬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영문 선생은 섬의 반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태평농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선생을 위해 매입해 줬다고 합니다. 섬의 반쪽이라고 하지만 2500평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2500평의 농지에 고추, 콩, 수수, 기장, 오이, 토마토, 고구마, 호박 등의 온갖 토종 밭작물을 비롯해 그 이름도 낯선 온갖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자라는 작물들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작물들이 풀숲에 뒤덮여 있거나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습니다.

'생산량이 형편없다면 태평농법이고 뭐고 뭔 필요가 있겠는가? 태평농법 농작물이건 친환경 농작물이건 자연에 제물로 받치고자 하는 농사가 아니질 않는가, 모두가 다 인간이 먹고 살자는 일이 아닌가?'

▲ 벼 재배법 설명하는 이영문 선생
ⓒ 송성영
어느 작물하나 제대로 건질만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럴 바에 농사를 뭐 하러 짓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들은 죄다 실험 작물들이라고 합니다. 회원들 중에서 태평농법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이(이영문 선생의 지도아래 '고방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실험 하는 작물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태평농법에 대한 몇 가지 의문과 궁금증이 남아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섬을 빠져 나가고 우리일행은 마지막까지 남았습니다. 나는 한가해진 틈을 타 취재를 핑계 삼아 슬그머니 이영문 선생에게 접근했습니다.

"현재 얼마나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물었더니 그는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농사는 농사가 아닙니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던져놓고 그동안 지어왔던 4만 평의 농지를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작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대를 나온 두 아들 역시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부업으로 말입니다. 그만큼 일손이 거의 가지 않으면서 수확량조차 관행농법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농법이 바로 태평농법이라는 것이지요.

자손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농사는 농사가 아니다
이영문 선생과의 일문일답

▲ '태평농법'의 창시자 이영문 선생
- 이 섬에는 언제부터 들어와 생활했나?
"섬에서 지낸지 6년 됐다. 이곳에서 며칠씩 머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아침에 들어와 저녁에 나간다. 지리산 하동에 집이 있다. 그곳까지 40분 거리를 거의 매일같이 출퇴근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토종'을 옛날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불렀듯이 '돌종'이라고 부른다. 이 섬에 온 것은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사라져 가는 우리의 돌종을 보존·육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다. 거기다가 우리의 토양에 맞지 않는다는 올리브, 리치, 롱간 등의 이국산 작물들을 실험 재배하고, 사프란이란 이름으로 외국서 고가에 수입해야 하는 본래 우리 꽃이었던 번홍화를 자생시키는 연구를 해 오고 있다."

- 한때 경실련에서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경실련에 농업개혁위원회가 생겼을 때 상임위원으로 있었다. 7~8년 전 얘기다."

- 화학인산비료를 비판하다가 일본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던데.
"198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토양은 화강암인데 우리나라에선 거기에 맞지 않는 화학인산비료를 생산했다. 인산비료는 일본 토양에 필요한데, 무지한 사람들이 일본 비료를 공급해 우리토양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토양들은 화학인산 과다 축척으로 죽어 있다. 내가 그 말을 했더니 당시 정부관계자들은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비료 생산 업체들로부터는 협박전화까지 받았다. 그래서 잠시 일본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농업을 비판하려면 어떤 대안을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나는 농업 정책을 비판할 때 아무런 대책도 대안도 없이 비판만 일삼은 정치꾼들처럼 무조건 비판 하지 않는다. 내게는 태평농법이라는 대안이 있다."

- 어떻게 해서 태평농법을 시작했나?
"영농 기계화, 농업 선진화란 기치 아래 도입된 외국산 농기계가 일으키는 잦은 고장과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농법에 관심을 쏟다가 태평농법을 시작했다. 수 천 년 간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선조들이 발전시켜온 전통 농사법에 맞고, 우리 토양에 맞는, 우리 농기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에서 시작했다. 우리 토양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어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농사법을 찾게 되었고 선조들의 전통 농사법에 담긴 지혜를 현실에 접목시킬 수도 있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태평농법인 것이다."

- 다른 친환경농법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태평농법은 친 자연농법이라는 점에서 유기농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먼저 자연에 대한 사람의 간섭이 덜하다. 친환경 자연농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대부분 자연을 착취해서 농사짓는다. 부엽토 등을 긁어다 쓰고 자연에서 많은 농자재들을 만들어 낸다. 거기다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태평농법은 자재가 거의 필요치 않고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든다. 자재나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인건비나 자재비를 절감할 수 있다."

- 태평농법에서도 풀을 제거하기 위해 침투 이행성이라는 제초제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태평농법을 시도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침투 이행성 제초제는 농약 잔류량이 남지 않는 안전한 것이다. 풀을 제거하기 위해 이행성 제초제를 치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에 풀을 제거하는 것은 내 밭의 작물이 주인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년생 야생초들이 주인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작물이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태평농법은 얼핏 보기에 아주 쉬운 농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만큼 아주 위험한 농법이 아닌가 싶다. 어제 강연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면 태평농법으로 밭농사를 지으려면 씨앗 선택이며 함께 심어야 할 작물이며, 시기를 잘 맞춰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지만, 그냥 우거진 풀밭에 씨만 뿌리면 되는 것이 태평농법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렇다. 태평농법을 야생초 무성한 버려진 땅에 씨만 뿌리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 생태를 알지 못하면 태평농법을 실행하기 어렵다. 자연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태평농법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자연 생태부터 이해하라고 한다. 강연도 그렇게 하고 있다.

- 태평농법의 밭작물들이 밭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걸리나?
"작물들이 그 땅의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통 빠르면 2,3년이고, 늦으면 5년 정도 걸린다."

- 태평농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전국에 몇 가구나 되나?
"태평농을 전업으로 삼는 가구는 20여 농가 쯤 되고 부업 삼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은 대략 40여 가구쯤 된다. 이것은 주변에 알고 지내는 회원들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태평농법을 활용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 작물들을 재배하고 연구하는 연구사들이 있던데?
"그동안 혼자 하다가 고방연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올해부터 연구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사들은 모두 10명인데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섬에 찾아와 자신들이 심어 놓은 작물들을 돌보고 있다."

- 태평농법 회원들은 얼마나 되나?
"태평농법 회원들은 모두 600여명 정도 되지만 한 달에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회원은 150여명에 불과하다. 연구원이라고는 하지만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 돈 만원을 내고 보트를 타고 거기다 야영 장소에 음료수며 떡까지 제공받았다. 거기다 귀한 강연까지 들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려면 여러모로 힘들 텐데, 지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가?
"아무도 없다. 30년 동안 농사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보지만 나는 그걸 팔지 않는다. 태평농법이 한국농업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그냥 제공해 주고 있다. 태평농법이 외국산 농산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이루지 못하면 후대에서라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태평농법을 전수 시키고 싶은데 교육시설이 없다. 지금처럼 섬에서 교육하기에는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 비나 눈이 오면 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지원해 줘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영문은 누구?
195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중퇴 두 번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땅과 자연에서 배웠다. 처음 우리 땅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농사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척박한 농업환경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로 나타났고 그 노력으로 태평농법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책 소개글에서 옮김) 저서로는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가 있다. / 송성영

덧붙이는 글 | 태평농법(www.taepyeong.co.kr)에 가면 태평농업에 관련된 간단하면서도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