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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국력 차이는 현저하다. 미국은 세계 최강이고 북한은 그에 대한 도전자라고는 하지만, 북한은 세계적 범위에서의 도전자가 아니라 그저 동북아라는 일개 지역에서의 도전자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의 국력이 북한의 국력을 훨씬 능가하지만, 양국이 지금의 제2차 핵대결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 무기'를 보면 뭔가 뒤바뀐 게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7월 5일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북한이 전면에 내세운 주 무기는 군사적 대응 카드다. 그에 비해 미국의 주 무기는 여전히 외교적·경제적 대응 카드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에게 경제적 대응 카드를 버릴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미국은 그런 북한에게 군사적 대응 카드를 버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훨씬 더 강력한 국가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대응 양상은 상당히 흥미롭고 이색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군사적 대응 카드는 약소국이 아닌 강대국이 구사하는 수단이다. 강대국 대 약소국의 대결에서 약소국이 군사적 대응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북미관계에서는 약소국인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위협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강대국인 미국은 그런 북한에게 군사적 카드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외교적 대응 카드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군사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하여 국제사회의 동정심을 구할 때에 사용되기도 하는 카드다. 물론 강대국도 외교적 카드를 활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경제적 대응 카드는 군사적 카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주로 구사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라는 경제적 카드를 구사하는 것은 최강국 미국의 위상을 별로 침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미국이 외교적 압박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딘가 미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약소국이 군사적 카드를 꺼내들면 강대국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군사적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과의 군사 대결을 회피하고 외교적 대응이라는 다소 엉뚱한 수단을 취한다는 것은 분명 강대국의 위상에 걸맞는 행동이 아닐 것이다.

상대국의 정규전 전략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게릴라전 등을 포함한 저강도 분쟁 전략으로 맞서는 이른 바 '비대칭형 전략'이라는 것도 있지만, 지금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그런 비대칭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비대칭형 전략은 정규전에 대해 비정규전으로 맞서는 것이지만, 정규전이나 비정규전은 모두 군사적 대응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상호 동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취하는 대응 방법은 북의 군사적 카드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범주인 외교적 카드이기 때문에 이를 비대칭형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8자회담을 통한 대북 압박이라는 새로운 외교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것이 북한을 효율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8개국이 모여 북한을 상대로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의 철회를 촉구하거나 혹은 대북 경제제재의 확대·강화에 합의한다 해도, 그런 제재들이 북한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국제사회에서 수없이 핵 포기를 촉구했지만, 북한은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껏 미국 등이 북한의 경제를 압박했지만, 북한은 그런 대로 헤쳐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8자·10자·100자로 늘려간다 해도 그것이 북한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지금 미국이 구사하는 외교적·경제적 카드는 북한을 효율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미국이 정말로 북한을 굴복시키고자 한다면, 북한의 군사적 카드를 압도할 만한 훨씬 더 강한 군사적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군사적 카드를 사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었다면, 미국은 진작 그런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6자회담이 시작된 지 3년이 넘었고 또 그동안에 북한이 한 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군사적 카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상은 미국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약소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 강대국은 그에 맞서 훨씬 더 강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미국은 몇 년이 지나도록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군사 최강인 미국이 외교적 해결에 매달리고 약소국인 북한이 도리어 군사적 카드를 내세우는 것은, 북한과 미국이 다음과 같이 상반된 입장에 처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첫째, 북한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했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최악의 상황도 불사하겠다는 비장의 각오를 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북한은 전의에 불타고 있지만, 미국은 어느 정도 겁먹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이러한 상황에서 후자가 전자를 꺾은 예는 거의 없었다. 국력의 강약을 떠나서, 준비가 부실하고 거기에다가 겁까지 먹고 있는 나라가 국제 대결에서 승리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점들을 볼 때, 미국이 이번 대결에서 최소한 패배만이라도 면하고자 한다면, 북한 지도부를 압도할 만한 훨씬 더 강한 군사적 카드를 꺼내들거나 아니면 대북 금융제재를 해제한 후에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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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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