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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 미국이 지금의 북미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북한, 특히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퍼스낼리티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향후 어떤 카드를 구사할 것인가를 예측하려면, 북한의 대미 항전을 지휘하고 있는 김정일의 내면 구조에 대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 지도부는 김정일의 퍼스낼리티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이 구사하는 해법은 오히려 김정일의 투지만 불러일으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돌발 행동에 번번이 허를 찔리곤 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상대방 지도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초전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기를 꺾었던 것처럼, 미국이 지금의 대결에서도 승리하려면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기를 반드시 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행동은 오히려 상대방 지도자의 자신감과 의지를 강화시켜 주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북 카드는 외교·경제적 압박을 통해 북을 더욱 더 고립시키고 또 북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북한 지도부의 공포감을 증대시켜 결국에는 백기 투항을 받아 내겠다는 것이 미국 지도부의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결코 북한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을 통해 북한을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않는 한, 미국이 피를 흘리지 않고 김정일의 항복을 받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의 대북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무서워하는 나라 혹은 지도자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미국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사생결단까지 각오하는 나라나 지도자에게는 지금의 위협이나 압박이 결코 통할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이 대북 카드를 선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요소는, 김정일이 선천적으로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북한이라는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부모와 스승이 있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한 개인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그 개인의 부모와 스승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점은 김정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의 경우에는 약간의 특수성이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각각 다른 사람을 부모와 스승으로 두고 있지만, 김정일의 경우에는 김일성이라는 한 사람을 부모 겸 스승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김정일에게도 학교 스승이 있겠지만, 그의 역사관·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김일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일이라는 한 인물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퍼스낼리티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미국을 무서워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파악하려면, 그의 부모 겸 스승인 김일성이 미국을 무서워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벌인 것과 관련하여 수많은 분석이 있지만, 여기서는 한국전쟁 당시의 김일성이 상당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에 대해 매우 혹은 너무 용감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균적인 담력과 용기를 가진 정치 지도자라면, 1950년 시점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전쟁을 벌일 결심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반도 정세는 한민족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반도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반도 분단은 한민족 내부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양대 세계 최강은 한반도 분단을 바탕으로 자신들끼리의 대결을 완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사실상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정치 지도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남침을 결행하는 무모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남침은 단순히 남한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5년 전에 세계 최강에 등극한 ‘싱싱한’ 챔피언을 상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침은 단순히 한반도 질서를 바꾸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범위의 냉전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이고 ‘현명한’ 지도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벌여 한반도 질서를 바꾸어 보겠다’는 무모한 발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句踐)의 고사에 나오는 것처럼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훗날을 도모하기만 해도, 후세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지도자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싱싱한’ 세계 최강 미국이 노쇠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김일성은 국력을 키워 훗날을 도모하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한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지 2년도 채 안 된 상태에서 그는 미국을 향해 전쟁을 개시했다. 그는 ‘훗날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이대로 미국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 절정에 오르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김일성의 이러한 행동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상식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의 도전이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든지 미국을 몰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미국을 몰아내지 못한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그만한 ‘성적’을 거둔 것만으로도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김일성의 도전은 엄밀히 말하면 객관적인 역사적 조건을 ‘무시’한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성공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실제로 그런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으며, 비록 미국을 몰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패전했다고 할 수도 없다. 작은 신생국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무승부(휴전)를 거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의 미국에 대한 이런 과감한 태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반외세 항일투쟁의 경험, 30대의 젊은 나이, 역사적 과제에 대한 신념, 북쪽 사람들의 지역적 기질, 대원군 시절의 대미 승리 경험에 대한 인식 그리고 약간 무모하고 오만한 개인적 특성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의미 있는 것은, 객관적인 승산이 없는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정말로 전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이는 김일성이 승패 여부보다는 신념을 더 중시한 인물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보다는 ‘해야 하는 일인가 아닌가’를 더 우선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김일성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바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라는 점이다. 지금 미국을 상대로 김정일이 표출하고 있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은, 순전히 김정일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 측면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은 ‘오만한 반외세주의자’ 김일성은 이미 1994년에 죽었지만, 그의 자식이자 제자인 김정일이 지금 단순히 살아 있기만 한 게 아니라 ‘김일성의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미국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김정일은 단지 미사일 발사 위협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미국을 상대로 큰일을 벌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사자성어는 술꾼 아버지와 술꾼 아들을 가리킬 때에만 사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1950년에 김일성이 무모한 도전을 벌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김정일도 얼마든지 무모한 도전을 벌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지금의 대결에서 북한을 굴복시키고자 한다면,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단지 미국과의 평화만 원하는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로 더 큰일을 벌일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반드시 판단 요소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자신감과 저항의지를 갖고 있는 인물을 상대로 지금처럼 외교적 압박이나 경제적 제재만을 가한다면, 이는 도리어 김정일의 투지만 불태워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미국이 그런 인물의 투지를 무력화시키려면, 김정일의 희망사항을 들어줌으로써 그의 투지를 녹여 버리든가 아니면 김정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군사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의 투지를 눌러 버리든가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퍼스낼리티의 소유자를 제압하려면,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든가 아니면 군사적으로 완전히 압도하든가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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