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가 KAL858기 폭파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김현희씨를 활용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한 후 그를 구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오충일)'는 KAL858기 중간조사 결과발표를 통해 "안기부는 김현희를 검찰에 기소하기 전인 1988년 11월 외무부·문공부·검찰 등 관계기관과 사법처리 방안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위는 "안기부가 김현희를 KAL기 폭파 만행의 산 증인으로서의 활용가치 등을 고려해 살려서 활용한다는 원칙 하에 실형 확정과 동시에 구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당시 안기부는 이를 위해 법원을 설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위는 "김현희에게 1심 사형 판정이 내려진 이후 '사형 확정에 대한 사면은 통치권 부담'이라는 이유로 안기부가 2심에서 무기 이하의 형을 선고토록 법원을 설득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KAL기 유족회를 설득해 김현희에 대한 탄원서 작성을 유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모두 김현희에게 사형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이어 불과 보름 뒤 김현희는 특별사면으로 형을 면제받았다.
"대북 경각심 고취해 대선사업환경을 유리하게"
당시 전두환 정권은 KAL기 폭파 사건을 노태우 후보 당선에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점도 확인됐다.
진실위는 "1987년 12월 당시 안기부가 작성한 '무지개 공작(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 문건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무지개 공작'을 담은 문건에는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능한 '대선사업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한다"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또 "당시 전문을 통해 김현희를 늦어도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 15일까지 압송해 오기 위해 안기부와 외무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발표했다. 군사정부가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일어난 KAL기 폭파 사건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게 진실위의 조사 결과다.
하지만 진실위는 안기부가 KAL기 폭파를 사전 인지했다거나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은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일본이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폭파범으로 지목된 김현희와 김승일의 '출신 의혹'에 대해서도 진실위는 "김현희 진술과 확인된 여러 내용을 종합할 때 북한 출신이었음은 사실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진실위는 지난 5월 7일부터 10일간 수색작업을 벌여 미얀마 퉁파라(Taung-Pa-La)섬 앞 바다 해저에 KAL기 동체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이 매몰돼 있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중 탐사능력 부족으로 정밀 확인에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진실위는 "미얀마 지역 우기가 끝나는대로 2차 출장조사를 통해 정밀 탐사를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