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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서 지난달 초 펴낸 <한미FTA 국민보고서>를 두고 때아닌 색깔논쟁이 일고 있다.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는 각각 지난달 31일자 '범국본 한미FTA 반대 노골적 이념공세', '미제국에 공화국주권 양도해주려는 것'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반미민중혁명론적 시각에서 한미FTA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한미FTA 국민보고서>의 공동 집필자인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반박 기고문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 <한미FTA 국민보고서>에 대해 "반미·반제국주의적 표현을 담아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최근 발간한 <한미FTA 국민보고서>(이하 '국민보고서')가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긴 하나 보다. 그동안 '국민보고서' 출간 이후 코멘트 한 번 없었던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신문은 물론 <한국경제>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광고'(?)를 대행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경제>는 특별히 필자를 거명하면서 국민보고서의 주장을 '철저히 반미민중혁명론적 시각에서 한미FTA를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기사를 보고서야 필자는 <한국경제>라는 신문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

이 신문 역시 나를 처음 다루어주었을 테니 그리 억울할 것도 없을 테지만 첫 대면치고는 기분이 서로 썩 좋지 않았음에는 분명하다.

판에 박은 듯한 '국민보고서' 비판

'국민보고서'를 반미적 시각에 경도된 좌경서적으로 보수신문들이 규정하고 나온 시점은 대개 인터넷판 기준 7월 31일과 8월 1일로 묘하게도 일치한다. 우연이길 바랄뿐이지만 문제는 기사내용도 판에 박은 듯 똑같다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각 신문의 기사들은 국민보고서의 전체 필자 27명 가운데 단 3명에 집중돼 있다. 게다가 728쪽에 달하는 전체 책 내용 가운데 10%도 채 안되는 70쪽을 읽고 기사를 썼다. 평소 이들 신문의 기사 쓰는 방식, 이를테면 천기를 누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조선일보>는 평소와는 달리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긴 하다. 역시 이 분야의 대가다운 태도인지 아니면 현재 국민들 사이에 조성된 압도적인 한미FTA 반대 여론에 부담을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국민보고서와 범국본을 한데 엮어 색깔론, 곧 이데올로기 문제로 비화시켜 보겠다는 저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쯤 되면 한미FTA를 둘러싼 정부와 국민, 혹은 사회운동 간의 공방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들 신문이 국민보고서에 대해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던 날, 또 다른 경제지인 <서울경제>는 여론조사 결과 하나를 전했다. 이 신문이 지난 1일 창간46주년을 맞아 발표한 한미FTA 관련 한국의 40대와 50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앞에 거론한 신문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사실 이 여론조사 내용은 왜 보수신문들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며 색깔론 외에 여타의 주장을 펼칠 수 없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미FTA 반대 여론이 50%로 찬성 46.3%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 6월 7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반대의견이 29.2%에 불과했지만 7월 6일 조사(코리아리서치)에서는 42.6%로 늘었고, 이번 조사에서는 50.0%로 반대의견이 우세하게 됐다. 한달 남짓한 기간에 반대의견이 20.8%포인트나 상승한 것이다.

한달 새 20여포인트나 늘어난 FTA 반대여론

▲ 정부의 홍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한미FTA 반대 여론은 갈 수록 늘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압도적인 국민여론의 변화 추이를 정부는 여론의 왜곡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놀라운 화술을 빌리자면 여론의 왜곡된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범국본을 포함한 한미FTA 저지운동 진영은 국민 반대 여론의 70% 이상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를테면 '한미FTA 바로 알기 시민학교' 운영 등 배전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민여론의 70%가 반대해도 정부가 협정 체결을 강행할 것임이 현재로서는 명백하다. 그 대표적 징후를 노 대통령의 '4대 선결조건을 미국에게 내주었다'가 아니라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을 수용하겠다"는 언어 마술로부터 읽어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한국 경제에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단지 '표현'의 문제로 슬쩍 바꿔치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쇠고기·스크린쿼터·약값·자동차배기량'으로 요약되는 4대 선결조건 수용은 사실상 협상의 절반 이상을 끝내고 들어 간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어떤 굴욕적 협상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아니 정확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각서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한미FTA 협상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할 것인가는 고사하고 한미FTA 그 자체가 현 정권의 목표가 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위 여론조사에서 자그만치 74.9%가 '정부가 협상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끝으로 신문기사들이 한결 같이 내 글의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고 있기에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명백히 그 글에서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리고 같은 글에서 명백히 적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공화국으로 이해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적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영어 표기 또한 'Republic of Korea'가 아닌가?

모 신문의 수준 낮은 사설은 단지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친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촌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대단히 불순한 의도다. 필자는 북한의 주장 내지 그러한 체제에 비판적이며 북한을 공화국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공화국'에 색깔론 들먹이는 보수신문들

요컨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필자는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를 공화국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역사로 이해한다. 이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대로 3·1운동, 임시정부, 4·19 시민혁명을 승인하는 것이며, 여기에 5·18 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세계사에 유래 없는 민주주의의 보고로 간주하고 있는 필자의 정치적 관점에서 연유한다.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북한보다 더 북한적인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한미FTA를 찬성하면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다는 단순논법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대단히 창피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논쟁이 없다. 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사실 개념계보학적 입장에서도 우파 담론이지 좌파 담론이 아니다. 일례로 프랑스의 집권 우익정당이 공화국 연합이 아닌가?

이는 다른 말로 '공화국=민족주권'으로 등치되는 정치적 문제 설정이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서 정치적 우파의 관심사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반증하는 셈이다. 이러한 정황을 잘 알기에 필자는 '공화국'이 아니라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이론적 장치를 차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는 정말이지 약간의 개념 있는 우익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논란을 통해 스스로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진정 반성해야 할 집단이 누구인지는 명백해졌다.

바라건대 한미FTA 논란을 기화로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현실과 또 무엇보다 한국 헌법의 정치학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하고 진지한 학문적 논쟁이 있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이지 색깔론은 정말 아니다. 보수신문들이 국민보고서에서 단 세편의 글을 읽고 행간에 담겨진 수많은 내용은 망각한 채 '공화국'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을 놓고 '친북반미'라고 아우성 칠 일이 아니다.

보수신문들이 아우성 칠 때 필자는 그러한 개념을 쓰기 위해 구한말의 <독립신문>을 포함한 수백 권의 책을 일독했다. 정중히 부탁하건대 제발 선수들이 나와 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최형익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 부단장,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교수학술공대위 정책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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