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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중은행 창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연기

[사례] 이벤트 회사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는 문아무개씨는 미혼 여성이다. 180만원의 적은 월급이지만 나름대로 알뜰하게 지출하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직장 동료들끼리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나눈 덕에 적은 저축액이라도 쪼개서 가입해왔다.

주로 은행에 가서 직원이 권하는 상품을 나름대로 꼼꼼히 챙겨 가입한 문씨는 직장생활 이후 줄곧 은행을 통해서 돈을 관리해 왔다.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면 이런저런 부가 서비스도 기대할 수 있다는 재테크 상식을 활용해 온 것이다.

그런데 신입사원 한 명이 종금사에서 월급통장을 개설하고 그 통장을 통해 펀드를 가입했더니 인터넷 뱅킹 수수료도 면제받고 심지어 ATM기에서 현금 인출할 때도 은행업무시간이 지났는데도 수수료가 없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2년 넘게 한군데 은행을 열심히 이용했지만 문씨는 수수료 면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던 터라 어리둥절해졌다. 동시에 그동안 한번도 갖지 않은 의문이 들었다. 주거래 은행 이용으로 갖게 되는 혜택이 도대체 뭐고 그 혜택은 언제 받게 되는 거지?

오해의 출발 '은행직원이 알아서 해줬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의 금융거래를 은행을 통해서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은행이 지점수도 많고 각종 이용 편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금융거래가 잦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편리하기 때문이다.

거의 절대다수가 이용하는 은행은 금융시장에서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펀드 판매에서도 그 영향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펀드판매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펀드판매의 전통적인 창구였던 증권사를 밀어내고 최대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판매망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예적금에 비해 마진율이 높은 펀드판매는 직원들에게 높은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있다. 당연히 창구를 통해 금융상품 문의를 하는 고객에게 펀드를 적극적으로 권하게 된다. 이제는 대출과 함께 일명 '꺾기'를 하는 상품도 적금에서 보험으로, 보험에서 펀드로 옮겨가는 추세이기까지 하다.

결과적으로 펀드의 대중화와 함께 시작한 은행의 펀드판매는 펀드의 대중화를 더 빨리 정착시키는 데 한몫 단단히 한 것이다.

이렇게 펀드판매 하나만 봐도 실감할 수 있는 은행의 영향력은 단순히 수적인 우세 때문만은 아니다. 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하고 무조건적인 신뢰 또한 은행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은행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맡기는 신뢰에 상응하는 책임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금융서비스를 하고 있는 걸까?

돈을 모으는 첫번째 지름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원칙, 주거래은행의 이용 혜택을 따져보는 것을 통해 평가해보자.

① 서민이 '주거래고객'이 되려면 충성하라?

주거래 고객도 단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우대·우수·최우수·VIP 등 보통 3~4단계로 나눈다. 각 단계에 해당하는 거래 실적은 급여이체, 각종 자동이체, 인터넷뱅킹 이용, 카드이용 실적, 대출, 예적금 이용 및 잔액 등 각 항목에 점수를 매겨 평가한다.

점수를 주는 기준은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통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는 항목은 예적금 잔액이나 신용카드 이용실적, 대출 등이다. 더불어 한두 가지만 거래실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는 안 되고 모든 거래 항목이 최소 3개 이상이라는 단서가 붙기도 한다.

상담을 의뢰한 문씨의 경우 급여이체, 자동이체, 인터넷뱅킹 이용, 예적금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실적이 없고 신용카드 이용실적도 떨어진다.

예적금 이용실적도 은행에서 권장하는 기준에는 못 미친다. 적어도 이체수수료 전액 면제를 받으려면 보통예금통장 잔액이 3개월 평균 1000만 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돈을 보통예금통장에 묻어두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막연히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면 언젠가는 부가서비스가 있으려니 기대했는데 따져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문씨 소득 수준에서는 가능한 수준 이상의 충성을 요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거래고객 상위 등급에 올라서려면 불필요한 대출을 일으키거나 신용카드 이용실적을 늘리기 위해 지출을 늘리거나 이자도 거의 없는 통장에 잔액을 많이 남겨두어야 한다.

한 마디로 평범한 월급쟁이나 서민에겐 그림의 떡인 셈이다.

② '올인'해 봐야 수수료 몇백 원에 우대금리 0.1%+@

그렇게 어렵게 은행의 주거래 고객이 되면 어떤 혜택이 있는 것일까?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최하 단계에게 주는 서비스는 보통 수수료를 200~300원 깎아주거나 통장, 현금카드 재발급 수수료 면제, 수표 발행 수수료 면제 등의 비용 혜택이 하나 있다.

그리고 두번째 혜택은 예적금이나 대출금리를 0.1% 가량 우대해준다. 문씨의 경우 한달 꼬박 금융거래해 봐야 수수료 몇백 원과 우대금리 0.1% 혜택이 전부다.

보험사는 속을까봐 싫어하고 증권사는 왠지 돈많은 사람들만이 가는 곳이라 여겨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은행만 이용했던 문씨다. 허탈한 마음에 그동안 은행직원이 권해서 갖고있는 통장을 다 뒤져보았다. 연금저축은 보험사 상품이고 적금은 거의 같은 유형의 펀드에 올인해 있다. 알고보니 그 모든 상품이 그 은행의 그 시기 주력상품이었다.

얼마 전 입사한 신입사원은 월급통장 개설과 펀드 10만원 자동이체 하나로 인터넷뱅킹 이체 수수료 전액면제에 ATM기 은행 업무시간 이후 10시까지 수수료 면제혜택을 받고 있다. 더불어 그 월급통장은 하루만 맡겨도 연환산수익 4%라고 한다. 월급통장에도 이자가 붙을 수 있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리기만 했다.

③ 여러 금융기관과 거래하라

유독 까다로운 소비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한다. 똑똑하고 따지기 좋아하고 비교하고 정보력있는 소비자들이다.

그런데 금융부문만큼은 단순하다. 그냥 은행만 간다.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라는 재테크 전문가들의 말을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따져보지도 않고 믿고 금융거래를 올인하는 것이다.

그 사이 은행은 한 때 잔액 얼마 이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등의 디마켓팅전략까지 당당하게 내놓았다가 여론의 눈총으로 슬며시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금잔액에 따른 차등금리 적용, 특판예금 가입한도 상향 조정 등 돈 많은 사람들 위주의 마케팅 전략에 열심이다.

게다가 편의도 이제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오랜 차례를 기다려 잠깐 상담받고 정확한 상품정보조차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용 편의가 있는 것일까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눈을 돌려 다양한 금융기관을 활용해야 한다. 증권사, 종금사, 은행 다 다녀보고 까다로운 금융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비교하고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고 그도 모자라 추천만 받고 돌아와서 다른 정보를 통해 확인한 후 가입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어떤 부가서비스가 있는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도 묻고 요구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판단하에 여러 개 금융기관에 여러 개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 자꾸 까다롭게 경쟁력있는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 금융기관도 소비자 눈치 보고 서비스 개선에 더 많은 예산을 할애할 것이다. 까다로운 금융소비가 은행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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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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