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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민족의 분단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이론들이 많다. 그중에는 우리 민족을 북쪽의 예맥족 계통과 남쪽의 한족(韓族) 계통으로 양분하는 이론이 있다. 이러한 이론은 우리가 은연중에 지금의 남북 분단을 당연시하도록 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왜 그런 이론을 유포한 것일까?

먼저, 누가 이 이론을 최초로 유포한 것일까? 그는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라는 일본 학자다. 그가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보인 시기가 언제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31년에 <탈해 전설 - 동해 용신의 신앙>이란 논문을, 1933년에 <고대 조선에 있어서 왕의 출현 신화와 의례에 관하여>란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 한국 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제 패방(1945년) 후에도 한국 신화에 대한 정력적인 연구로 이름을 날렸다. 1949년에는 <곡령 의례와 신화>를 내놓았으며, 그 후에도 <조선의 니나메>, <고사기와 조선>, <영등신 소고>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본서기 조선 관계기사 고증>과 <삼국유사 고증>도 그의 저서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통해 그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한국 신화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그가 어떻게 이 이론을 정립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시나 아키히데의 이론 구성 방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1972년 일본 도쿄에서 발행된 <일선 신화전설의 연구>(日鮮神話傳說の硏究>라는 책에서, 우리 민족의 근간을 북쪽의 예맥족(남퉁구스계)과 남쪽의 한족(韓族)으로 구분하였다.

그가 이러한 민족 이분론(二分論)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증거로 제시한 것은 한국 신화의 지역적 분포였다. 그는 1971년 역시 도쿄에서 발행된 <신화와 문화사>(神話と文化史)라는 책에서 한국의 남부와 북부는 서로 다른 성격의 신화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국의 북부 지방에는 수조신화(獸祖神話)와 감응신화(感應神話)가, 남부 지방에는 남방 해양 계통의 난생 신화가 분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의 남북이 서로 다른 신화 계통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 남북은 종족적으로도 서로 다른 계통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여기서, 수조신화라는 것은 동물을 종족의 시원(始原)으로 하는 신화이며, 감응신화라는 것은 예컨대 햇빛 등을 통한 하늘과의 감응을 통해 시조가 출생하였다고 하는 신화다.

그리고 미시나의 연구는 한국 학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최길성은 1978년에 출판된 <한국 무속의 연구>라는 책에서, 미시나의 태도를 그대로 수용하여, 한국의 샤머니즘은 남북이 각각 그 기원을 달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의 역사학계에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고구려 문화를 대동강 이남의 삼한(三韓)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요동문화로 인식하는 학설도 그러한 경향과 무관치 않다.

그럼, 한국의 남북이 서로 다른 계통의 신화를 가졌다고 하는 미시나의 주장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 점을 검토하기 위해, 2002년 6월 한국구비문학회 발행 <구비문학연구> 제14집에 실린 영남대학교 김화경 교수의 논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고주몽 신화의 다음 부분에 대해 해설을 붙였다.

“금와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녀를) 방안에 가두었더니, 그녀에게 햇빛이 비치었다. 그녀가 몸을 피하면 햇빛이 또 따라와 비치었다. 이로 인해 태기가 있어 알 한 개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 만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고주몽의 어머니이며 해모수의 부인인 유화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주몽 탄생신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는 “햇빛이 또 따라와 비치었다”라는 부분과 “알 한 개”라는 부분이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감응신화와 난생신화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일본 학자 미시나는 난생신화를 남방 해양 계통의 문화적 산물로 보았지만, 김화경 교수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그에 따르면, 난생신화는 만주 동북 지방에 살던 고아시아족(Paleo-Asiatics)의 문화적 전통이라는 것이다.

김화경 교수의 주장은 이러하다. 고주몽 신화에 난생신화 요소가 들어간 것은, 부여족이 동진(東進)하면서 코리약족(Koryak) 같은 고아시아족과의 문화적 접촉을 통해 난생 신화 모티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추정이다.

그럼, 김 교수는 자신의 추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근거를 제시하였을까? 그는 그 근거로 손진기 저 <동북민족원류>와 J. 미첼 저 <세계의 신화>(Myth of the World)라는 자료를 제시하였다.

손진기에 따르면, 본래 만주 동북지방에 살던 길리약족(Gilyak)과 코리약족 같은 고아시아족들이 일부는 퉁구스족이나 몽고계 종족들에게 동화되었고 나머지는 아시아의 극동 북쪽 귀퉁이로 밀려났다고 한다. 이 점은 부여족과 고아시아족의 문화적 접촉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그리고 미첼에 따르면, 그 코리약족에는 난생 신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 점은 난생신화가 북방 계통의 산물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김 교수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면, 만주 동북 지방의 코리약족에게 난생 신화가 있었으며, 이 난생신화가 부여의 동진 과정에서 우리 민족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생신화를 남방 해양 계통의 산물로 보는 미시나 아키히데의 견해는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간의 신화적 차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을 남북 두 계통으로 양분하는 입장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의 난생신화가 남방 해양 계통의 것이라는 일본측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만주 동북 지방의 고아시아족들도 난생신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본측에서 그런 이론을 유포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포의 장본인인 미시나 아키히데 교수가 이미 1930년대부터 한국 신화 관련 논문을 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의 한국 지배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미시나가 한국 신화를 활발하게 연구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화경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미시나의 한국 신화 연구는 분할 통치를 지향했던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화와 민족 계통을 남과 북으로 양분함으로써 계층간·지역간 갈등을 조장하여 한반도를 쉽게 통치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하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분단은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주장은 일제의 한국 지배 과정에서 나온 허위의 이론에 기초를 두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향후 통일을 성취하려면, 일제가 과거에 만들어 낸 허위의 이론들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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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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