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본 내에서 정치·외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이제 서서히 일본 내부의 법률적 성격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일본의 논점 PLUS> 최신 업데이트 판에 실린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의 기고문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오마이뉴스> 8월 4일자 기사 참조). 이 글에서 다카하시 교수는 주변국들이 비판하든 않든 간에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정교분리라는 일본 헌법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일본 불교계, 총리 야스쿠니 참배 적극 반대
그런데 이제는 일본 불교인들까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전일본불교회(전불)가 '수상 및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중지 요청'이라는 서한을 8월 4일 총리 관저에 제출한 것이다.
참고로, 전불이라는 단체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현재 일본에는 전통 불교 계통의 사원·교회·포교소 등이 약 7만 5천 개 정도 있다. 이 중에서 약 90% 이상이 전불 산하의 종파·단체에 소속돼 있다.
100여 년 전인 1900년에 종교에 대한 국가적 통제에 반발한 일본 불교인들이 세운 불교간화회가 대일본불교회 및 일본불교연합회를 거쳐 지난 1957년 재단법인 전일본불교회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전불은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불교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전불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제출한 서한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순수한 종교시설"이라고 규정한 뒤에,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일개 종교단체인 야스쿠니 신사에 수상 및 각료가 공식 참배하는 것은 어떠한 형식을 취하신다 해도, 헌법에서 정한 '신교(信敎)의 자유'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서 전불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헌법이 정한 신교의 자유 즉,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교분리의 원칙에도 위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전불은 또 "최고재판소는 야스쿠니 신사 등에 대한 공금 지출이 금액의 다과를 떠나 헌법위반이 된다고 하는 명확한 판결을 내렸습니다"라고 함으로써 총리의 참배가 최고재판소 판례에도 위반되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전불은 "전후 61년간 일본 국민이 지켜온 이러한 헌법 규정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불은 전몰자의 추도 방식과 관련하여, 국가가 특정 종교와 연계하여 추도를 주관하기보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여러 종교가 이를 주관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전불은 "귀하께서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또 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앞으로는 수상 및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공식 참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한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라고 끝맺었다.
후임 총리에 대한 사전 경고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한 이 같은 강력한 반대는 현임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메시지라기보다는 후임 총리가 될 사람에 대한 사전 경고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요청문과 관련하여 3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위 요청문에서 총리의 신사 참배를 절대적으로 반대한 게 아니라 '공식 참배'를 반대한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총리의 참배를 공식과 비공식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요청문 제출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유연한' 혹은 '애매모호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위 요청문에서는 헌법 위반의 가능성을 들어 총리의 신사 참배를 반대했지만, 일본 불교계가 이 같은 요청문을 총리에게 제출한 데에는 어느 정도는 종교적 이기주의도 작용했다는 점이다.
셋째, 일본 전통 불교계의 이 같은 움직임이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해 일본 문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국제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던 야스쿠니 문제가 이제 서서히 일본 내부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