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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커---억---!”

추적자 중의 수뇌인 그 자는 머리에서 백지처럼 모든 기억과 생각을 하얗게 지우면서도 끝까지 경악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너… 너…였군……!”

무슨 뜻이었을까? 하지만 너무나 궁금하고 의혹스러워 죽기 억울했지만 그 말을 끝으로 흑의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의 미간(眉間)에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일직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곳에서는 선혈이 조금씩 배어 나와 방울방울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쫓기던 사내는 탈진해 있었다. 쫓는 자들 모두를 처리했지만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눈에 띠는 대로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 크기의 돌을 집어들어 죽은 세 인물의 머리통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흔적이 남아 있으면 안 되었다. 죽은 자들에게 남은 흔적은 무림에 많은 오해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자칫 자신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게 분명했다.

퍼퍽--퍽---!

죽은 인물의 머리통이 부서지고 뇌수가 흘렀다. 얼굴 전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지고 있었다. 아무리 원수가 졌다한들 죽은 시체에 돌질을 가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얼굴을 짓뭉개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마지막 인물의 얼굴을 두 번 정도 돌로 내리쳤을 때 광기가 어린 그의 행동을 보고 장내에 도착한 광검은 그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이 자식…, 나보다 더 미친 놈 아냐?”

회의를 입은 자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는 이미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실제 다친 곳은 별로 없었지만, 그의 피 인지 아니면 죽은 자들의 피 인지 모르지만, 검붉은 피는 그의 회의를 적시고 이미 말라가고 있었다.

“누… 누구요?”

몸을 굴려 사지를 쫙 벌리고 돌아누운 그의 입술은 하얗게 메말라 터져 있었다. 오랫동안 곡기나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저리 될 터였다. 이미 몽롱한 눈도 사실 나타난 인물의 형상을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는 네놈은 누군데?”

대답은 없었다. 이미 혼절한 사람이 대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광검은 혼절한 사내를 기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수뇌인 세 명의 추적자는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아니 보통 인물이 아닐 정도가 아니라 정말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이토록 짧은 시간에 죽일 수 있었던 자가 왜 그 동안 그토록 쫓기었던 것일까?

“이 자식… 병기도 없이 돌로 사람 머리를 쳐서 죽이는 무식한 놈이오?”

뒤늦게 도착한 사내가 물었다.

“봤냐?”

광검의 뜬금 없는 질문에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뭘 말이오? 이 자식이 돌로 죽은 놈 머리를 짓이기는 것?”

되 질문에 광검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본 것이 확실한지, 아니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햇빛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던 그것을 뒤늦게 도착한 아우가 보았을 리 없었다.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말해보았자 입만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순간 그의 왼쪽 소매에서 쏘아 나오던 흰 빛.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마지막 상대는 미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정말 그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놈이 누구지?’

광검은 혼절한 사내의 양 소매를 만져 보았다. 무언가 잡혔다. 그는 혼절한 사내의 소매를 걷어 보았다. 소매 속 맨살 위에 팔꿈치까지 소가죽을 대어 두른 듯한데, 거기에는 손잡이 없는 짧은 소도가 각각 한 개씩 붙어 있었다. 본래 손잡이가 있는 것을 손잡이를 떼어버리고, 그 뒤에 가는 은사를 묶어 놓아 발출하고 다시 회수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도의 존재를 모르는 상대라면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될 터였다.

‘내가 본 것이 이것이었을까? 과연… 그럴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자 사내가 퉁명스럽게 그의 상념을 깨웠다.

“형님… 안 갈 거요? 이제 볼 것 다 보았지 않소?”

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광검이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광검이 웃으면 불길한 일이 터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내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하지 않을 광검이 아니다.

“들어.”
“뭘?”
“이 자식 말이야.”

혼절해 있는 사내를 가리키자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 자식을 데려가 뭐에 써먹으려고? 더구나 지금 우리가 어디 가는 지나 아오?”

“아우…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 형제를 보고 무어라 부르고 있냐?”

광검이 갑작스럽게 얼굴에 장난기를 걷고 말하는 것을 보자 사내는 점점 불안해 왔다. 광검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 꼭 귀찮은 일을 맡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수없이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허울 좋게 강호사협(江湖四俠)… 형님이 가끔 사고 치고 나면 뒤에서 강호사괴(江湖四怪)라고도 합디다.”

그 놈이 그 놈이었다. 광검은 중원을 떠돌면서 죽이 맞는 인물들을 모아 의형제를 맺었는데, 그들 역시 광검 만큼이나 괴팍한 인물들이었다. 하기야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미친놈들이야 미친놈들끼리 어울리는 것이지만, 사실 광검과 한나절만 어울리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될 판이었으니 같이 의형제를 맺은 인간들이야 대충 알만했다.

사실 지금 광검과 동행하는 자도 사고치는 것으로는 광검 못지 않은 인물로 철금강(鐵金剛)으로 불리는 반효(班哮)였다. 그는 권(拳)에 뛰어난 자로 자칫 반지르르한 얼굴을 가진 자들을 만나면 상판떼기를 짓뭉개 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뒷말은 빼고…, 그래도 협(俠) 자가 들어가는데 정신을 잃고 있는 이 자를 내버려 둘 수 있냐? 이러다 늑대 밥되기 십상이지. 험….”

제법 옳은 소리한다고 표정은 지었지만, 그게 반효에게 먹힐 리 없었다.

“그렇게 정 협사가 되고 싶으면 형님이나 되시오. 이 우제(愚弟)는 사양하겠소.”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나이가 드니 통 힘을 쓸 수 있어야지. 양심상 그냥 갈 수는 없고…, 이 자식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볼까?”

반효의 마음을 안 때문이었다. 사실 이 귀찮은 일도 반효의 친구란 놈이 반효에게 부탁하고, 그것을 거절 못한 이놈이 직접 전달을 하는 바람에 핑계도 댈 수 없어 가고 있는 판이었다. 그러니 광검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고, 반효는 자꾸 지체되는 것에 마음이 급할 수밖에.

아예 광검이 바닥에 주저앉으려 하자 반효가 투덜거렸다.

“아… 알겠소. 빌어먹을…, 내가 업고 가리다.”

혼절한 사내를 반효가 업어들자 그제야 광검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따라 나섰다.

“자식… 진작 그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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