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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같으면 이보다 칡꽃이 다섯 배는 더 피었을 텐데 워낙 지독한 장마 때문에 많이 상했다
작년 같으면 이보다 칡꽃이 다섯 배는 더 피었을 텐데 워낙 지독한 장마 때문에 많이 상했다 ⓒ 정판수
나 어릴 때는 칠기(우리 사는 동네에선 칡을 그렇게 불렀다)를 캐러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도 칡덩굴이 무성했고, 칠기도 엄청나게 많았다. 다만 캘 만한 도구가 적당치 않았을 뿐. 그래도 하루 종일 산을 헤매다 돌아오면 제법 보퉁이가 불룩했다.

칡은 가루칠기와 물칠기로 나뉜다. 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아이들은 질긴 물칠기보다 파삭파삭한 가루칠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많이 먹고 나면 후유증이 남는다. 즉 악성변비로 이어진다.

우리말의 관습적 표현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칡과 송기(소나무 껍질의 연한 부분)를 먹으면서 생긴 후유증에서 나왔다. 보릿고개에 먹을 게 없어 칡과 송기를 먹다보니 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그 변을 억지로 누려다보니 똥구멍이 찢어질 수밖에.

그 칡이 이제는 건강을 위한 약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칡으로 칡차를 만들거나 농축액을 만들거나 칡술을 담아 마신다. 그리고 칡꽃은 잘 말린 뒤 차로 만든다. 겨울에는 칡차를 보리차처럼 끓여 마시고, 농축액은 비닐봉지에 담아놓으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고, 칡술은 여름엔 얼음을 타서 마시면 좋다. 또 칡꽃차는 만들어놓기만 하면 계절과 상관없이 끓이면 된다.

오늘 아침 뒷산에 올랐다. 길모퉁이마다 칡넝쿨이다. 이곳도 확실히 작년보다 칡꽃이 적게 피었다. 칡넝쿨은 그대로지만. 사실 난 칡넝쿨을 싫어한다. 워낙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칡과 칡꽃은 좋아한다. 봄에 캔 칡은 그냥 먹기보다는 칡술로 담아먹거나 농축액으로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칡꽃은 따서 칡꽃차를 만들어 마신다.

이들 모두는 숙취에 좋다. 숙취에 좋다는 건 간에 좋다는 얘기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에 눈에 띌 때마다 이들을 주워 모은다. 그래서 우리 집엔 칡술도, 칡농축액도, 칡꽃차도 다 있다.

칡꽃은 보라색이라 하나 언뜻 보면 붉은 꽃으로 보인다
칡꽃은 보라색이라 하나 언뜻 보면 붉은 꽃으로 보인다 ⓒ 정판수
칡꽃차(한자로는 葛花茶)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칡꽃차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말린 후 덖어내느냐, 쪄낸 후 말리느냐.

첫 번째 방법은 칡꽃을 따서 그늘지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한 사흘 말린 뒤, 가마솥(다른 솥도 가능함)에서 가볍게 덖어낸다.

둘째 방법은 따온 칡꽃이 시들기 전 가마솥에 겅그레를 높이 하여 3~4분 찐 뒤, 그늘에서 한 사흘 정도 말리면 된다.

그런데 칡꽃 향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칡꽃차를 마시면 좀 실망할지 모른다. 칡꽃의 진한 향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맛도 그리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칡꽃차는 차로서보다 약으로 더 알려져 있다. 숙취 해소에는 칡차보다 더 좋기에.

장마로 인해 잃어버린 칡꽃 향기를 만끽하려고 호흡을 잠깐 멈추었다가 깊이 빨아들였다. 칡꽃의 향기가 세포 마디마디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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