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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림당(東林黨)은 처음 이부(吏部) 문선랑(文選郞)이었던 고헌성(顧憲成)이 만력(萬曆) 시기에 파직을 당하고 강소(江蘇) 무석현(無錫縣)에 돌아가 전일본(錢一本) 등과 함께 동림서원(東林書院)에서 강의한 것에 유래한다.

당시 시정(時政)을 논의하고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에 대한 것도 논하게 됨에 따라 자연 나라를 위하는 사심 없는 토론장이 되기도 했는데, 몇몇 조신(朝臣)들 중에 호응하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후 손비양(孫丕揚), 추원표(雛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이 계속 강학(講學)을 열어 이어 나가니, 이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라의 정책이나 권신(權臣) 등을 비판하게 되자 결국 득세한 조신들과 부닥치게 된 것이다.

본래 조정(朝廷)에는 제(齊), 초(楚), 절(浙), 선(宣), 곤(崑)이라 이름 붙은 5당(五黨)이 서로 분열하여 당파싸움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재야에 있는 동림당의 언론(言論)이 민초들의 호응을 얻어 여론을 조성하는 힘을 가지게 되자 조정 안의 5당은 모두 동림당을 공동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세간에서는 동림당과 반대되는 파를 모두 싸잡아 비동림파라 불렀다. 환관 위충현이 당금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자 비동림파는 일제히 위충현에게 의지하고자 했다. 결국 대학사(大學士)까지 위충현의 눈에 들고자 아첨하게 되고, 위충현이 동창(東廠)까지 관리하게 되면서 폐해가 심해지게 되었다.

양련(楊漣)이 위충현의 죄 24조목을 들어 상소하자 제신(諸臣) 칠십여 명이 그 뒤를 이었지만 황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로 인해 위충현을 탄핵한 양련을 비롯한 당시 충정을 가진 대학유들이 위충현을 무고했다는 이유로 하옥 당하게 됐다. 그 뒤 위충현에 의해 은밀히 살해당하는 일까지 자행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위충현은 이 일을 계기로 이를 갈며 중원에 산재한 동림당의 근원인 서원(書院)을 정리하고 동림당인(東林黨人)의 명단을 발표하여 아예 씨를 말리려 든 것이 천계(天啓) 오년(五年)의 일.

지금으로부터 일년도 채 지나지 않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이러한 일개 환관의 앙갚음으로 빚어진 옥사(獄事)는 대명의 기운을 쇠하게 하고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10.
운중보(雲中堡)는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오밀조밀한 풍광을 따라 얼마를 가자 곧 전면에는 오십여 개의 전각들이 그림처럼 지어져 있는 운중보를 볼 수 있었다. 주위가 모두 가파른 언덕을 이루고 있었음에 반해 운중보가 있는 곳은 비교적 낮은 경사가 이어지고, 그 뒤쪽으로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것이 마치 금계포란지처(金鷄抱卵之處)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운중보(雲中堡)는 상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서호의 절경처럼 오밀조밀한 멋과 그윽한 느낌이 들게 했지만, 운중보 내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의 수에 비한다면 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착장의 바로 앞이 운중보의 정문이었다.

그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뒤로 점차로 넓어지는 역삼각형의 계단이 보였다. 족히 삼십여 장은 될 정도로 빼곡하게 쌓은 계단은 각 문파가 자신의 문파 이름을 써넣어 층계를 하나씩 쌓아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백팔제(百八梯)였다.

정문에서부터 시작된 도열은 그 백팔제 양옆으로 갈라져 쭉 늘어져 있었는데, 도열한 인물들의 나이는 이십대 청년부터 이제 겨우 채 열 살이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석상처럼 서있는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신태감 일행을 맞이한 인물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무복(武服) 차림의 제법 덩치가 있는 사내였다. 은근하게 상대를 위축시키는 위엄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오관이 뚜렷하고 칼날 같은 검미가 귀밑까지 뻗쳐 있어 전형적인 사내다움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바로 그가 이 곳 운중보주의 다섯 제자 중 대제자인 잠룡검(潛龍劍) 장문위(蔣文偉)다. 그 옆에 서있는 세 남녀가 나란히 서 정중하게 예를 취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인중지룡(人中之龍), 용봉지재(龍鳳之才)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잠룡 장대협이시구만. 반갑네."

신태감이라 할지라도 운중보의 대제자에게는 함부로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대는 하고 있었지만 신태감 역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이리로 드시지요. 사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문위가 손을 내밀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신태감 일행이 뒤를 따랐다. 그들의 뒤를 지켜보던 세 남녀는 찰라간 알 수 없는 눈빛을 띄웠지만 남들이 알아보기도 전에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신태감의 바로 뒤에 배에서 내린 일행은 성질 급한 풍철한 일행이었다. 사실 배에 타고 있는 인물들과의 배분으로 본다면 가장 늦게 내려야 할 풍철한의 일행이었지만 성질 급한 풍철한이 움직이는 데야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더구나 일행이라야 고작 풍철한과 철금강 반효, 그리고 설중행 셋뿐이었다.

그들 일행이 배에서 내리는 것을 바라보던 세 남녀 중 장문위 다음에 서 있던 삽 십대 초반의 잘생긴 인물이 포권을 취했다.

"옥기룡(玉奇龍)이 풍대협을 뵈오이다."

운중보주의 둘째 제자. 선풍검(旋風劍)이란 외호를 가진 그는 중원에서도 첫 손에 꼽는 미남자였다. 마치 섬세하게 조각을 해놓은 듯한 완벽한 얼굴을 가진 사내였다. 잘생긴 사내들은 많아도 이 인물과 비교될 인물은 없었다. 전설 속의 송옥(宋玉)이나 반안(潘安)이라면 아마 이 사내와 비견될 터였다.

"정말 잘 생겼군."

풍철한 같은 인물도 옥기룡의 모습에 감탄을 터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짓궂게 철금강 반효를 바라보았다. 반효는 잘생긴 사내의 코를 짓뭉개준다고 소문이 도는 터였다.

반효는 모르는 척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칫 그의 말에 맞장구라도 쳐준다면 분명 이 자리에서 무슨 사고라도 터질 것이었다.

"과찬의 말씀을…, 헌데 이거 어찌해야 할지…. 죄송하오만 풍대협은 소제가 모시기로 되어 있지 않아…."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에는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서 있었다. 여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옥기룡이 사내로서 비교할 인물이 없을 정도로 잘생긴 인물이라면 그와 쌍벽을 이룰만한 미모를 여인이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여인의 나이가 이십대 중반을 넘긴 것 같아 청초한 미는 어느덧 가시고, 무르익은 듯한 농염함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천박함이 아닌 화려한 염태(艶態)여서 그녀의 미모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나머지 한 청년도 아주 잘생긴 인물이었다. 아니 잘생겼다기보다는 곱게 생겼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보통의 체격에 마른 듯 했지만 언뜻 보기에는 매우 유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 청년의 외모가 남자다움보다는 겁이 많아 금방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은 크고 둥근 눈과 오밀조밀하게 이목구비가 조화되어 오히려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외모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일남일녀의 사제들 역시 그들을 맞기로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풍철한 일행을 맞이할 골치 덩어리 셋째사제가 아직까지 이곳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풍철한의 옆에 있는 설중행을 보았다. 헐렁한 옷차림에 머리도 단정하지 않아 이마를 가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기이하게도 어디선가 본 듯 하였다.

"저 분은…?"

일행이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풍철한이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 다섯 번째 형제가 될지 말지 하는 놈이지."

그 말에 옥기룡은 아주 흥미로운 듯 다시 설중행을 바라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풍철한을 어찌 평가하던 사람을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들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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