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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여긴 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어!

아누는 짐리림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별 이상이 없음을 보고서는 다시 끈을 잡아당겼다. 아누의 태도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짐리림은 손목에 묶인 끈을 풀기위해 마구 팔을 휘저어 버렸다.

-왜 이러는가! 뭔가 자네 옆에 다가오고 있어!
-시끄러워!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기어오긴 뭐가 기어온다고 그래? 그래봐야 그까짓 게 날 물기라도 하겠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짐리림은 땅을 짚은 손에 뭔가 서늘한 기운이 다가와 꼼지락대는 것을 느끼고서는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놀란 짐리림이 벌떡 일어나 마구 달려 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아누가 묶인 손으로 인해 짐리림에게 끌려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봐 짐리림! 그만 서!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장난이었다고!
-여길 떠날 거야! 탐사선으로 돌아갈 거야! 내 눈! 내 눈!

아누는 짐리림을 진정시켜 걸음을 멈추게 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기막히게도 짐리림이 무작정 달려가는 곳은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는 허허벌판이어서 아누는 한참을 짐리림에게 끌려 다녀야만 했다. 매캐한 가이다의 대기가 짐리림의 호흡기를 거칠게 자극하기 시작했을 때 짐리림은 겨우 멈춰 서서 그대로 땅바닥에 눕고 말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해...... 지겨운 탐사 따위는 이제 지쳤어.

아누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추적기를 점검해 보았다. 다행히 쫓고 있는 ‘사이도’의 위치와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아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짐리림. 자네 눈은 어차피 탐사선을 되찾으면 시력 보조기로 회복할 수 있어. 그때까지 좀 참으면 안 되겠나?
-너는......

짐리림은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허리가 거꾸로 접히도록 기침을 심하게 해대었다. 아누는 급히 배낭을 뒤져 응급 치료기를 꺼내고서는 짐리림의 몸에 가져다 대었고 그제야 짐리림은 기침을 멈출 수가 있었다.

-너는...... 우리 하쉬의 파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은 거냐?

아누는 그 질문에 금방 대답하지 않고 응급 치료기를 다시 배낭에 넣으며 짐리림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짐리림이 걸친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눈알은 허옇게 백태가 낀 채 초점이 없었다. 얼굴에는 더러워 보이는 것들이 묻어 있어 아누는 짐리림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지만 아누의 손끝이 닿자마자 짐리림은 그 손길을 훡 하고 뿌리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쓸데없는 망상은 버리고 탐사선으로 돌아가자. 이 행성은 하쉬의 생명들에게 내린 축복이다. 이러한 행성 하나를 찾기 위해 머나먼 우주 속으로 얼마나 많은 하쉬의 생명들이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는가......

-그래, 자네 말은 충분히 들었어.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듣게. 우리가 아는 한 이 우주에서 비슷한 환경 하에서 살고 있는 생명은 단 두 종류이고 그들이 사는 곳은 각각 하쉬와 가이다지.

짐리림은 아누가 지겨운 얘기를 또 한다는 표현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웅크렸다. 그럼에도 아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단 두 생명체의 조우는 소중한 것이야. 그렇기에 나는 그들과의 화해와 공존을 택해야 한다고 믿는 걸세. 어느 한쪽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하는 믿음은 둘 모두를 파멸할 뿐이야.

-구역질나는 소리. 그래봐야 너도 하쉬의 생명체지. 이대로 가면 모두가 사라질 뿐이야.

짐리림의 웅얼거림과 더불어 밝은 빛이 모든 것을 휘감았고 7만 년 전에서 현실로 돌아온 남현수는 다시 한번 깨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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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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