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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이게 왜 이런 거지?”

뜻밖이다 싶을 정도로 당황한 마르둑의 목소리가 남현수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남현수의 시야에는 아직도 아누와 짐리림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은 채 마르둑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남현수는 그대로 무엇에겐가 정신을 홀리고 말았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남현수는 멍한 표정으로 입술을 들썩이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거렸다. 그 바람에 마르둑의 언어 번역기는 그 말을 쉽게 인지할 수 없었다.

“좀 더 확실히 말씀해 보세요.”

마르둑은 남현수의 표정을 관찰하며 조금 긴장했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행여 사이코메트리 증폭기가 남현수의 뇌를 잘 못 자극해 이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남현수는 더욱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고 마르둑은 잠시 사이코메트리 증폭기의 조작기를 손에 든 상태에서 잠시 진행을 정지시키고 남현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언어 번역기를 가져다 대었다.

“......당신들의 행성 ‘하쉬’에게는 어떤 파멸이 닥쳐옵니까?”

마르둑은 남현수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지금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물어보는 ‘무엇’이 남현수가 가진 평소의 자아가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다른 의식의 지배를 받아서 하는 질문인지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현수의 자아가 하는 질문이라면 대답해 줄 수도 있지만 다른 의식이 묻는 질문이라면 마르둑은 굳이 대답을 해주기가 꺼림칙했다.

“그 질문에 대답해 주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마르둑은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과연 남현수인지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남현수는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더니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난 남현수다.”

마르둑은 그 대답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남현수의 몸에 빙의되어 있었고, 남현수의 진짜 의식은 아직도 7만 년 전의 이야기에 건너가 있었다.

“지금 하는 얘기에서는 어떤 파멸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야겠죠.”

마르둑의 불확실한 대답에 남현수의 몸 안에 있는 그 무엇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마르둑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러서려 할 때 ‘그 무엇’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따위 존재가 감히! 그래, 넌 내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군.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따위 케케묵은 이야기로 하소연하면 뭘 어쩔 수 있다는 건가?”

마르둑은 ‘그 무엇’의 신경질적인 태도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 무엇’을 달래는 투로 즉시 답해주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지 않겠습니까? 난 당신을 이해하지만 지구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당신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단 이 일이 끝난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그러면서 마르둑의 손은 슬며시 사이코메트리 증폭기의 다른 설정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 무엇’은 벌컥 화를 내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군! 너희들이 여기 발붙일 건덕지는 조금도 없어! 이 따위로 나를 기만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당장 그만 둬!”

‘그 무엇’의 격앙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마르둑은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뭘 어쩌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인간과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네 놈이 여기 온 후부터 줄곧 보고 있었다. 처량한 신세가 된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무엇’은 마르둑을 빈정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희들의 진실 된 의도를 모르겠다는 겁니까? 자, 지금은 대화중이니 잠시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닥쳐! 이 건방진 놈!”

순간 기기에서 ‘삐-’하는 소리가 울렸고 남현수의 몸 안에 있는 ‘그 무엇’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마르둑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기기의 설정을 조정하며 중얼거렸다.

“결코 기만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얘기를 진행해 봅시다.”

덧붙이는 글 | 61회 부터 '새로운 만남'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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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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