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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 본 보에는 한 가지 아주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네. 절대 발생할 수 없고 발생해서도 안 될 가슴 미어지는 이 사건은 노부로 하여금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게 만들었다네. 더구나 이제는 아이들에게 본 보를 맡기고 친구들과 자연을 벗 삼아 이리저리 다녀볼까 하는 노부의 생각을 여지없이 결단 나게 했다네."
말을 하는 도중 다섯 제자들의 눈빛이 미세하나마 흔들렸다. '아이들에게 본 보를 맡기고' 라는 말은 이번 회갑연을 기화로 후계를 정한다는 말이었다. 운중보의 후계자는 곧 천하제일인의 권좌에 오르는 일이다. 중원 무림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다섯 명의 제자 중 하나에게로 돌아갈 터였다.
"자네들도 알고 있다시피 노부에게는 절친한 네 명의 친구가 있네. 서로에게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친구들이지. 한 사람은 평생 노부와 같이하면서 이곳의 궂은일을 마다않고 같이 지냈고, 다른 세 사람은 오랜만에 모두 모이기로 하였지. 헌데 우리 다섯이 모이기도 전에 한 사람이 죽었네."
고요했다.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가 말한 다섯 명의 친구는 바로 동정오우라 일컬어지는 중원 최고의 고수들을 가리킴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죽다니... 그들의 무공수위로 보아 병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고, 삶이란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직 나이로 보아 노환으로 죽었다고 보기에도 맞지 않았다.
"살해당했네. 그것도 본 보 자신의 거처에서…."
그제야 풍철한 일행은 누가 죽었는지 알았다. 동정오우의 한 사람이며, 언제나 이인자(二人者)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기꺼이 친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던 인물. 운중보가 세워지고 보주가 보의 일 뿐 아니라 무림의 일에도 관심을 줄이자 친구인 그가 뒤에서 세세하게 모든 일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철담(鐵錟) 하후진(夏候振).
운중보의 위명이 보주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면 그 위명이 이십여 년이 넘도록 전 중원무림인의 가슴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한 사람은 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창(槍)도 아니고 도(刀)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철담이란 이름의 기형병기를 사용하는 인물이었다.
세 마디로 분리되어 단봉(短棒)을 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을 끼워 놓으면 언뜻 보기에 창이 되지만 그 끝은 창과 달리 한자 정도의 예리한 도가 꽂혀 있어 찌르는 창의 효용 뿐 아니라 베는 도의 효용까지도 겸비한 무기였다. 일생을 통해 젊어서 유일하게 단 한 번 패배를 맛보았지만 그 뒤로 다시는 패한 적이 없다는 인물이 바로 철담 하후진이었다.
세간의 호사가들은 만약 운중보주와 일대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면 철담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하는 터였다. 그런 인물이 운중보 내에서, 그것도 자신의 거처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이 현 중원에 존재하고 있는가? 있다면 오직 운중보주일 터였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준 사람이었다. 자신이 없었다면 일인자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친구였다. 운중보주가 그를 죽일 이유는 절대 없었다.
"이 사건은 너무 미묘하고 괴이쩍어서 노부는 본 보의 인원을 동원해도 흉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네. 그래서 노부는 외부의 누군가에게 이 일의 조사를 부탁하고자 했고, 그 완벽한 적임자가 바로 함곡과 광검, 자네 둘이라고 판단했다네."
이제야 풍철한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은 운중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사람들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고 귀찮은 사건을 만드는 인물로 알려졌지,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조그만 일은 오히려 크게,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그였다. 따라서 보주가 광검을 지목한 것은 최악의 선택이랄 수 있었다.
"귀찮아하고 있는지는 아네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노부는 반드시 자네들이 흉수를 밝혀 주리라 믿네. 한 가지 덧붙이면 오일(五日) 안에 이 일을 매듭지었으면 하네."
"오일…?"
풍철한은 탄식하듯 뇌까렸다. 오일이 지나면 보주의 회갑연이 열릴 터였다. 그 이전에 흉수를 잡아 달라는 의미였다. 풍철한은 급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운중보주 앞이라 해도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소리였고,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말이었다.
"보주께서 소생을 택하신 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올시다. 소생은 덤벙거리고 사건을 만들기는 좋아하지만 해결하는 데는 아주 무디거든요. 흉수를 잡으시려 한다면 소생 말고 다른 유능한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누가 잘못 들으면 비꼬거나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는 의미로 들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가 배짱이 있더라도 보주의 면전에서 그런 뜻으로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렇지 않네. 중원 천지에 사람은 많지만 자네야 말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이네. 자네는 노부를 모를지 몰라도 노부는 자네를 잘 알고 있네. 자네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못한 특이한 능력이 있네. 바로 직감(直感)이지. 직감은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곧 바로 추론을 할 수 있게 하고, 상황에 따른 합리적인 근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네."
그는 말을 하며 풍철한을 보고 있었다. 풍철한은 기이한 느낌에 그 시선을 마주 바라볼 수 없었다. 자신의 속을 파헤치는 듯한 저 기이한 시선은 마치 독심술을 익힌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했다.
더구나 그는 내심 섬뜩했다. 자신에게는 분명 직감이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직감과 다른 것이어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알지 못할 환영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 환영이 모든 실제 일어난 것과 일치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 직감을 스스로 믿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자신의 특유한 능력에 대해 농담처럼 말을 던진 적은 있어도 심각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형제들도 가끔 그가 보이는 능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발에 쥐 잡은 격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런 것이 또한 풍철한에게 어울릴만한 일이었다. 헌데 운중보주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미심쩍어 하는 능력을 타인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섬뜩한 일이었다.
"그러한 직감이 발휘된다면 그 뒤에 추론을 하고 그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데 있어 함곡 이상의 능력을 가진 인물은 없지. 이것이 두 사람을 귀찮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네."
확실히 보기보다 더욱 철저하고 치밀한 인물일지 몰랐다. 서호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전 중원을 좌지우지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사인(死因)은 밝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함곡선생이 입을 열었다. 오일이란 기간. 그것이 주는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풍철한 역시 이 일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고, 보주는 왜 두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오일 내에 흉수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곳에 와 있는 그들에게 어떠한 불행이 닥칠지 몰랐다. 상대는 이 중원 무림인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일은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나았다.
"그것이 본 보 내부의 인물이 아닌 자네들로 하여금 조사를 시키고 흉수를 잡아내게 하는 이유네. 가보면 노부의 심정을 알 것이네."
보주는 오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훑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려는 버릇인 것처럼 보였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괴로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한 가지…."
보주는 느릿하게 말을 끌다가 손을 저었다.
"그 일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지. 일단은 자네들이 현장을 보는 것이 중요할게야."
말과 함께 그는 소매 안에서 조그만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검 집에 칠채보석이 박혀 있었고, 검 자루 끝에 눈알만한 용안주(龍眼珠)가 박혀있어 매우 화려하고 귀중한 물건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좌중의 인물들의 얼굴에 경악의 기색이 스쳤다.
용봉쌍비(龍鳳雙匕) 또는 운중쌍비(雲中雙匕)라 불리는 이것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본래 운중보주가 젊었을 때 사용했다는 병기였는데 지금은 운중보의 보주 신물(信物)로 통하고 있었다. 소림의 녹옥불장(綠玉佛仗)이나 개방의 취옥장(醉玉仗)과 같은 의미였다. 그리고 이것은 운중보의 후계자에게 전달될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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