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 ⓒ 문학사상사
대학에 갓 진학했는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가? 연애가 하고 싶은가? 무언가 읽을거리를 찾고 있는가? 이러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추천한다.

20대에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젊은이의 필독서라고 늘 말하고 다니는 <상실의 시대>는 새삼 그 내용을 들추어 볼 필요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인기있고 유명해서 이미 많은 매체에서 이 작품을 수도 없이 분석하고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이 작품을 또 이야기하는 이유는 작품 속의 한 캐릭터 때문이다. 바로 미도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상실의 시대> 역시 조금은 건조하고 메마른 감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인공은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하고 그와 연결된 다른 인물들 역시 주인공처럼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딛고서 모두들 혼자 살아간다.

특히 주인공 와타나베는 혼자서 사는 법을 마스터한 듯하다. 음악과 책을 좋아해서 하루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요리 또한 수준급이다. 청소, 빨래를 즐기고 한없이 쌓여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깎아내리는데 익숙하다. 이러한 모습이 매력적인 걸까? 늘 혼자 지내지만 이성과의 관계는 꾸준히 유지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심각해지는 경우는 없다.

이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와타나베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 바로 미도리다. 물론 와타나베가 처음 마음을 빼앗겼던 사람은 나오코다. 그러나 나오코는 더 이상 와타나베가 열정을 쏟는 인물이 아니다. 나오코 역시 무엇을 상실해 버렸고 그 결과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동정하고 끌어안으며 보듬는다.

이러한 와타나베의 마음을 뒤흔든 미도리. 초록색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신록이 완연한 계절에 둘은 만난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와타나베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도리.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갖춘 두 캐릭터는 상대방을 통해 자신이 나아가야할 이상적인 모습을 본다.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주변의 공기마저 생동감 있게 만드는 인물. 바로 미도리다.

미도리의 나날.
미도리의 나날. ⓒ 대원씨아이
같은 이름의 미도리가 등장하는 또 다른 책이 있다. 바로 <미도리의 나날>. 비록 이름은 초록색이 아니라 아름다운 새[美鳥]로 조금 다르지만 소리는 똑같다. 미도리. <미도리의 나날>에서의 미도리도 초록색을 은근히 좋아한다. 머리도 초록색이고 눈도 초록색이다.

그렇다. <미도리의 나날>은 만화책이자 애니메이션이다. 이 미도리는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와 많이 다르다. 주인공인 세이지를 짝사랑하지만 말 한마디 못한다. 세이지 역시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는 완전히 반대다. 학교에서는 싸움꾼이고 늘 소란하고 지루한 걸 참지 못한다. 그러나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미도리는 점점 적극적이고 활달해지며 세이지는 고분고분하고 침착해진다.

이렇게 두 작품의 두 미도리는 비록 상반된 상황이긴 하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인물을 만나 부족한 서로를 채워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미도리의 나날>에서 미도리가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두 미도리는 점점 닮아간다. 두 미도리는 <상실의 시대>의 표현을 빌자면 ‘봄날의 곰’만큼 사랑스럽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랑스런 미도리.

두 작품을 읽고 나면 그 어떤 인물보다 미도리가 인상에 남는다. 나도 언젠가는 봄날의 곰처럼 사랑스러운 미도리를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둘 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아직은 덥고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끈적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선선한 가을이다. 낙엽이 지는 계절에 옆에 있는 나까지도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처럼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줄 미도리를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 잡지 캠퍼스 헤럴드와 오마이뉴스, 네이버 블로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200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