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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루운하
ⓒ 박세욱
[12일(토)] 오늘은 '제이다쿠'다.
달린 거리 89km. 니세코-오타루.


오늘은 오타루까지만 간다. 현재 나의 계획은 이렇다. 월요일 오전 중에 삿포로에 있는 대한민국 영사관을 찾아가서 여권을 갱신한다. 전에 도쿄 한국대사관에 전화했을 때 1주일이 걸린다는 말에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주말이라 가봐야 소용없기에 천천히 달려야 한다. 오타루와 삿포로는 불과 40km 떨어져 있어 여유만만이다.

오늘 달린 길은 매우 짜증나는 길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곳 없는 곳에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게다가 자동차 통행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갓길도 없는 외딴 도로 길가에 과일직판장이 있다. 과일을 먹으려고 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토비키리(찐 옥수수)를 하나 불쑥 내민다.

▲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재즈콘서트
ⓒ 박세욱
홋카이도의 토비키리, 정말 맛있었다. '찐 옥수수가 홋카이도라고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점심에 오타루 20km 앞 미치노에키(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에 도착했다. 곧장 빨래를 말리는데, 양쪽 바엔드(핸들 끝부분)에 하나씩 끼워놓은 양말이 신기한지 관광안내소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는다. 인터넷에 올리겠다면서. "저 핸들에 있는 양말은 빼야 하는데"란 생각이 스친다.

오타루에 도착했다. 오타루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영화의 대명사로 생각하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거리에 전통 복장을 한 인력거가 눈에 띈다.

▲ 기꺼이 모델이 되어 준 인력거를 끄는 청년
ⓒ 박세욱
운하 옆에서는 무료지만 결코 허접하지 않은 야외 재즈 콘서트가 열리는 중이었다. 주위에선 가족으로 보이는 단원들의 타악기 공연도 열렸다. 타악기 공연을 특히 좋아하는 나는 낯선 도시에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재즈공연을 보기 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오타루는 스시(초밥)가 맛있다고 한다.

오늘은 제이타쿠(고급스러운 생활)라고 중얼거렸으나 결국 비교적 싼 회전 초밥집에서 가장 싼 초밥 5접시만 먹었다. 600엔 남짓.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초밥으로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기에 큰 빵과 커피를 사서 재즈콘서트를 보면서 먹었다. 분위기에 취하고 싶다. 홋카이도에서만 파는 맥주를 한 캔 마시며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오늘은 제이타쿠다…'

해질 무렵 낭만 있는 분위기의 오타루 운하. 초밥과 맥주 한 캔. 그리고 재즈 콘서트. 맥주보다 콘서트에 취해 또 한 번 중얼거린다. '이런 게 여행이라는 거야.' 해가 진 후 근처 공원을 찾아, 오타루 항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13일(일)] 이제 진정한 노숙인이 되어간다
달린 거리 16km. 오타루


▲ 붐비는 어젯밤 공원
ⓒ 박세욱
새벽 4시 시끄러운 말소리에 일어나 텐트 문을 여니 내 텐트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텐트도 여럿 늘어나 있었다. 이런 매너 없는 라이더들! 남이 자고 있는 텐트 앞에서 그렇게 크게 떠들다니…. 그러나 한 가지 스스로 놀란 건 이들이 어젯밤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내 텐트 바로 앞에 침낭을 깔고 누웠어도 전혀 모르고 잤다는 것이다. 이제 진정한 노숙인이 되어간다. 웬만해선 모르고 잔다.

이곳 공원 화장실은 최악이라 다른 공원으로 이동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벤치에 누워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장애인 화장실에서 충전과 샤워를 해결했다. 오늘은 여유를 즐기며 오타루 주민이 되는 날이다.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어차피 갈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삿포로는 내일 가장 자전거를 타기 좋은 시간에 달려 대사관 문을 열 때 도착하게 되어 다.

[14일(월)]여권문제 해결! 미련 없는 삿포로.
달린 거리 82km. 오타루-하나마쓰 해변.


▲ 홋카이도 4대 라면 중 하나인 삿포로 미소라면
ⓒ 박세욱
어젯밤 또 맥주를 마셨다. 조금 과했나? 너무 여유를 부려 7시에 일어났다. 삿포로까지 남은 거리인 40여km를 한달음에 달렸다. 10시 반 영사관에 도착했다.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1주일이 걸린다는 답변을 들었다. 삿포로 영사관에 전화해서는 여권재발급비 6000엔에 3일은 걸릴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결국 840엔에 임시여권을 당일 발행받았다. 친절하게 신경 써주신 직원 분 덕택이다. 한편으론 대사관이 발급 시간을 일단 부풀려서 애기하는 것 같아 불쾌한 마음도 들었다. 기다리며 삿포로 시내를 돌아본다. 삿포로는 x,y 좌표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계획도시다. 하코다테에서 만난 삿포로 출신 자전거여행자가 알려준, 제대로 된 라면집을 찾아갔다.

▲ 알아볼수 없는 여권사진
ⓒ 박세욱
남3 서4 부근이라고 택시기사가 알려줬다. 홋카이도 4대 라면 중 하나인 삿포로의 미소(된장)라면. 안타깝게도 미소라면 맛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맛이 특별하다는 건 알겠으나 그 이상은 모르겠다.

여권을 찾아 입국관리소에 갔다. 입국관리소에서 한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장마 덕에 별 경험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을 당일 발급받음으로서 일본 최북단까지 갔다가 다시 삿포로로 되돌아온 뒤, 아사히카와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부담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오타루에서도 청춘18열차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JR 열차 시간표를 구해서 읽는 법을 배웠으며, 버스노선과 운임요금 등의 정보를 파악해 놓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무사히 해결되어 개운하다. 삿포로의 홋카이도 대학내부를 어슬렁거렸다.

학생식당이 싸다. 식당 때문에 이곳에서 머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삿포로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삿포로에서 하루를 머물지 않고 떠난다. 30km 정도를 더 달려서 하나마쓰 해변에 도착. 이곳에 공짜 라이다 하우스가 있기에 무작정 왔다.

▲ 나를 태워 준 라이다와 챠리다
ⓒ 박세욱
이미 몇 명의 라이더가 짐을 풀어놓은 상태. 한 라이더가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웠다. 그 속도감이 자전거와는 또 다른 설렘을 가져다준다. 이곳에서 오토바이 라이더들과 친구가 되었다.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자야 하는 상황이라(대부분 샤워를 못한 상황) 잠을 설치게 될까 걱정했으나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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