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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이'다. 사의(?衣)라고도 하는 이것은 이제 농업박물관에나 모셔져 있다. 비옷, 우장, 우의가 이제 그 쓰임새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볏짚이나 밀짚, 보릿대 따위로 만들어 비가 아무리 내리쳐도 꼭 해야 할 농사일을 미룰 수 없기에 때론 허리에 차고 어깨 위에 덮어쓰고 비를 동무 삼아 해질녘까지 하루를 꼬박 채웠다.
비온다고 논밭 '지심'이 자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소가 비오는 날이라고 풀 먹기를 멈추지 않으매 꼴 베기를 멈출 수 없었으니 거추장스럽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그러다가 작대기로 몇 대 얻어터지고 밥을 굶어야 할 지 모르잖은가.
처음엔 약간 무거운 느낌이지만 일을 하다보면 이내 한 몸이 되어 찬비를 맞아 종아리는 시려도 등짝에선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초여름보다 늦여름과 초가을로 갈수록 쓰임이 더 많았던 도롱이, 되롱이가 그립다. 코흘리개 우린 노끈을 엮어 운동회 때 아프리카 추장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마저 집집마다 서너 개 있지 않았으니 어릴 적 우린 요소부대자루를 양끝과 가운데를 도려내고 어깨 밀어 넣고 고개 빼서 물먹은 벙거지, 밀짚모자나 미루나무 대팻밥 껍질로 만든 모자를 쓰고 서둘러 집을 나서기도 했다.
도롱이 하나 만들어 볼까?
지푸라기, 밀짚, 보릿대 다 좋지만 역시 도롱이는 띠풀(茅草)이 최고다. 띠는 뗏장을 떼서 쓰는 잔디와 비슷하면서도 억새와는 차이가 있다. 억새는 갈대와 같이 꼿꼿하게 서고 가운데 심이 있어 바스락거리면서도 두껍기 때문에 이 용도에는 일단 자격상실이다.
띠는 '삐비'나 '필기'라고 하는 양지바른 묘동에 자라는데 어릴 적 우린 이른 봄 배동이 불러오면 하얀 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무던히도 뽑아 껌 대신 씹어서 삼키곤 했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뿌리를 캐서 한번 씹어보라. 달착지근한 맛이 끝내준다. 여기에 코피 질질 흘리는 아이들에게 이 뿌리를 삶아서 물로 마시게 하면 몰라보게 달라진다.
전쟁 때마다 이불은 여름엔 비를 맞으면 몇 배나 무거워지고 겨울엔 습기를 조금이라도 머금으면 꽁꽁 얼어붙어 전염병과 동사(凍死)의 원인이었다. 띠는 짚과 비교가 되지 않게 물기는 절대 스며들지 않고 밑으로만 흐르게 하는데 탁월하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철 낙엽이 질 무렵 이 또한 엽록소를 다 덜어내고 연한 갈색 또는 불그스름한 빛깔로 바뀌고는 너울너울 누워있는 기다란 풀을 발견하게 된다. 너울진 풀을 가지런히 베어서는 말릴 필요도 없이 갈라놓은 대마 삼껍질에 물을 축여서 가늘게 새끼를 꼰다.
서너 가닥 놓고 한 줌 한 줌 떼어서 바짝 밀착시켜서 가는 끝이 거꾸로 아래로 향하도록 엮어나간다. 몸매와 맵시도 생각하여 허리춤을 재보고는 마무리를 한다. 배때기 끈 하나 도톰하게 연결하고 낫 끝으로 밭아서 고르게 펴면 비바람, 눈보라에도 끄떡없는 명품 우의 완성이라.
얼마나 가벼운가. 풀 한 포기가 이토록 소중한 때가 있었다. 이 하나면 물기가 스며드는 일이 없고 썩지도 않는다.
나풀대지도 않아 몸에 착 달라붙으니 농부네 게으름만 탓할 지다. 30년도 너끈하니 공기 소통하나 되지 않은 비닐우의 웬 말이냐. 올 가을 귀향하면 띠 좀 꼭 베어두련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 바로가기를 만들며 고향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올 가을 귀향을 목표로 시골생활을 준비하고 있으며 고향 추억과 맛, 멋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