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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의 숲길입니다.
ⓒ 김강임
더위에 몸을 식히는 일은 일시적이지만, 마음을 식히는 일은 영원하리. 처서가 지났는데도 무더위가 식을 줄 모른다. 특히 올해는 음력 7월에 윤달이 끼어 있다. 때문에 늦더위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이럴 때 마음을 식히는 곳이 바로 숲 속 기행. 숲속기행하면 소나무 숲, 삼나무 숲, 대나무 숲 등 여러 곳이 있다. 그러나 몇 백 년 된 비자나무 숲은 드물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구좌읍에 비자림이 있다. 여느 숲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무리를 이루어 숲을 이룬다. 하지만 이 숲은 세계에서도 드문 비자나무 숲으로 손꼽히고 있어 제주에 여행 온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려 숲의 정기를 받아가는 곳이다.

▲ 비자림 입구에 들어서니, 비자나무에 비자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 김강임
서산에 지는 해가 눈부신 8월 26일 오후,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을까? 비자나무 숲 속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2800여 그루가 넘는 비자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300년에서 800년이나 되는 나이를 가진 연륜. 사람도 그러하듯이 나무도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직함을 엿볼 수 있다.

고목은 더 많은 숲과 더 많은 그늘을 제공하듯이, 비자림 역시 마찬가지다. 숲으로 들어선 길목 비자나무에는 벌써 비자가 씨앗을 키워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비자나무 열매. 비자는 예전에 구충제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 초록이 여름더위를 빼앗아 가는 듯 힙니다.
ⓒ 김강임
숲의 입구에는 마지막 여름의 진미를 보여주듯 초록이 절정을 이룬다. 숲에서 보는 초록에 마음까지 싱그러워지는 기분. 여름내 더위에 시달렸던 마음을 초록 위에 훌훌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 이렇듯 비자림은 일상의 탈출과 해방을 안겨주고 있었다.

비자림 숲길은 다른 숲길과는 다르다. 다른 숲길은 흙길 일수도 있지만, 비자림 숲길은 모든 코스가 스코리아 즉, 화산쇄설물(화산폭발에 의해 생긴 작은 암편)인 붉은 송이가 깔려있다. 때문에 잘게 부숴 진 붉은 송이를 밟으며 숲길을 걸어보면 다른 숲길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을 느낀다.

▲ 빼곡히 들어선 나무는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 김강임
바삭바삭 나는 소리는 나뭇잎 밟는 소리인가? 발 마사지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스코리아 길. 특히 숲길 옆에는 제주특유의 돌담을 쌓아 자연과의 하나 됨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산책로 주변은 두 팔을 벌리고도 안지 못할 비자나무가 끝없이 무리를 이룬다. 나무마다 모두가 이름표를 달고 있다.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어 있다보니 몇 백 년 된 나무는 관청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셈이다.

▲ 콩짜개난과 온갖 양치식물들이 서식합니다.
ⓒ 김강임
고목에서 뿌리를 내린 가지는 바람 잘 날 없겠지만, 그 나뭇가지에는 콩짜개난들의 서식처가 되기도 한다. 나무는 숲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공생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몸통이 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대신 작고 약한 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해 준다. 강자와 약자가 상생하는 숲. 비자림의 마지막 8월은 이렇듯 녹음을 품어냈다.

▲ 바위틈에서 고개를 든 맥문동이 인사를 나눕니다.
ⓒ 김강임
산소가 넘쳐흐를 것만 같은 숲 속에서는 어느새 새들의 노랫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청초한 보랏빛 맥문동이 돌 틈에서 얼굴을 내민다. 숲 아래 땅에서는 여백 없이 자라나는 키 작은 식물들이 또 다른 화음을 만드는 비자림. 숲은 사계절 여름이 없다.

▲ 돌무덤을 지나며 구도자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 김강임
숲 속에 쌓아놓은 돌무덤을 지나며 마음을 돌탑을 쌓아보는 순간,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은 상쾌한 숲 속 공기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 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자가 쾌재를 부리는 세상이라지만, 자연 속에 들어가 보면 가난뱅이도 부자가 되는 비결이 있다. 그 이유는 숲 속에서는 열 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 관리번호 0681.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새천년 비자나무 입니다.
ⓒ 김강임
키 14m, 가슴둘레 6m, 나이 813세. 비자림에서 최고령의 나무는 새천년나무. 지난 2000년 1월1일, 관청으로부터 새천년 비자나무로 이름을 부여받은 비자나무는 많은 사람들의 수호신인양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나무로써 인정받고 있다.

▲ 하늘을 덮은 비자열매가 숲속에 가득합니다.
ⓒ 김강임
새천년 비자나무를 한바퀴 돌아오면 어느새 여름은 저만치 물러가고 초록향기는 가슴까지 파고든다. 스코리아를 밟으며 비자림 숲으로 떠나보자. 숲은 열 받은 마음까지 식히는 피로회복제를 펑펑 쏟아 내리라.

세계적인 비자나무 숲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지정보호하고 있으며, 44만8165㎡의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해 자생하고 있다. 옛부터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여 졌고,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데 사용되어 왔다.

또한 비자림은 나도풍란, 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식물의 자생지이다. 비자림 주변에는 아름다운 기생화산인 월랑봉,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등이 있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숲 기행지로는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제주시(12번 국도-동회선 일주도로)→구좌읍 평대(1112번 지방도-우회전) →비자림. 제주시(16번 국도-동부산간도로)→송당리(1112번 지방도-좌회전)→비자림으로 1시간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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