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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들과 함께 사는 된장아주머니 댁
유기견들과 함께 사는 된장아주머니 댁 ⓒ 정판수

교통사고로 한쪽 발을 잃고 세 발로 생활하는 점순이입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뒷다리가 없습니다.
교통사고로 한쪽 발을 잃고 세 발로 생활하는 점순이입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뒷다리가 없습니다. ⓒ 정판수
최근 달내마을에도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은 옛날 집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옛날 집이라 해도 대부분은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내부를 현대식 구조로 고쳤지요. 우리 마을에 옛날 그대로 있는 집이 두 채 있는데 그 중 한 채가 오늘 소개하려는 된장아주머니 댁입니다.

된장아주머니란 호칭이 붙게 된 까닭은 전통 방식으로 된장을 만들어 팔기에 붙여졌지요. 원래 달내마을에선 여인네를 부를 때는 출신지를 딴 택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산음댁’, ‘구어댁’, ‘원당댁’, ‘한국댁’, ‘수국댁’, ‘의성댁’, ‘성산댁’, ‘토산댁’, ‘내선댁’, ‘기정댁’, ‘수동댁’ 등입니다.

된장 아주머니는 울산에서 살다가 오 년 전 혼자 몸으로 달내마을로 이사 왔는데 이곳 물이 된장 맛을 내는데 아주 좋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수입이 적어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오늘 이 아주머니를 거론하는 건 된장을 소개하려 하거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음을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주머니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처음 지어진 집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방 두 개에 하나는 창고로 쓰니 지낼 방은 달랑 하나여서 좁고도 대단히 불편하지요. 그런데 그 집의 식구는 모두 여섯입니다. 아니 얼마 전 셋이 더 불어났으니 아홉이 산다고 해야지요.

방 하나에 아홉이 살다니! 눈치 빠른 이는 짐작했겠지만 아주머니 말고는 여덟이 모두 '개'입니다. 그리고 그 개들(다섯 마리)은 버림받은 개들, 즉 유기견(遺棄犬)이지요. 발 하나가 잘려 나간 녀석, 늘 제 자리만 빙빙 돌고 있는 녀석, 언제나 뭐라고 쫑알대는 녀석 등.

우리 집에도 개가 다섯 마리(강산이의 새끼 세 마리 포함)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개에 기울이는 정성에 비하면 우리 부부의 정성은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먹고 남은 걸 개에게 주지만 아주머니는 먼저 개에게 주고 자기는 다음이니까요.

이뿐 아닙니다. 생활의 모든 게 개들 중심이지요. 그래서 그 집 개들은 비록 원래 주인에게 버림받았지만 이제는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하게 삽니다. 우리 집이 아주머니 집보다 크고 넉넉하지만 개들만 보면 우리 집 태백이와 강산이보다 그 집 개들이 훨씬 더 행복해 보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는 아직 개를 가족의 위치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내게는 개는 개일 뿐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이지요. 좀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아주머니에게 있어서 개는 개가 아니라 한 가족입니다. 처음 우리는 그 모습이 솔직히 이상했지요. 어떻게 사람과 개를 같은 비중으로 대우할 수 있는가 하고.

우린 처음으로 개를 키우기 때문에 개에 대해 잘 모르고,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사랑이 부족하지요. 이번에 우리 집 강산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 줄 몰라 아주머니를 불렀습니다. 새끼의 탯줄을 잘라주며 하나하나 정성껏 받아내는 모습이 마치 텔레비전에서 본 산파가 애기를 받아내는 걸 연상케 했어요.

그리고 ‘묵돌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강산이가 새끼를 낳은 후 갑자기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 할 때도 역시 아주머니가 해결해줬지요. 이뿐 아닙니다. 지금도 하루에 네댓 번은 꼭 우리 집에 들릅니다. 새벽녘에도 한밤중에도 들러 어미인 강산이가 제대로 먹었는가, 새끼가 제대로 있는가를 확인하지요. 주인인 우리보다 더 열성적입니다.

우리 강산이보다 그 집의 점순이가 며칠 먼저 새끼를 낳았습니다. 점순이는 교통사고로 한쪽 발이 잘려 전 주인에게 버림받아 내버려진 개입니다. 그 개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면 그냥 고개가 수그러질 뿐이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얼마만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된장아주머니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점순이와 새끼 세 마리입니다. 점순이는 비록 오른쪽 뒷발을 잃었지만 좋은 주인도 만나고, 새끼도 낳았으니 행복할 겁니다.
점순이와 새끼 세 마리입니다. 점순이는 비록 오른쪽 뒷발을 잃었지만 좋은 주인도 만나고, 새끼도 낳았으니 행복할 겁니다. ⓒ 정판수

덧붙이는 글 | 다른 유기견 네 마리는 찍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어찌나 경계하는지 접근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자신의 얼굴은 내비치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찍지 않았습니다.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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