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차관이 나눈 얘기다.
최재천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은 전략적 유연성과 상관 있는가? 없는가?
유명환 직접적인 상관이라기보다는 포괄적으로 보면 다 연관된다.
최재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전략적 유연성, GPR(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미군의 신속배치 개념과 상관되는가?
유명환 다 연관된 개념이다.
최재천 전략적 유연성과 GPR 인정, (주한 미군의)신속재배치와 동북아 기동군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실질적 변경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유명환 안보 환경이 많이 변했다.
최재천 지금까지 주한 미군은 대북 억지력으로 존재해왔다. 이제 동북아기동군으로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이 변경되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실질적 변경 아닌가?
유명환 지난번(올 1월) 한미(외교)장관급에서 주한미군이 한국의 의사에 관계없이 제3국에 관여되는 것은 안된다고 합의했다.
최재천 그것은 플로우 아웃(주한미군의 해외 출동)의 일정 부분을 제안했을 뿐이다. 플로우 아웃의 대부분과 기지 및 물자의 (한미)공동사용 등에는 현실적으로 변경이 있는 것 아닌가?
유명환 맞다.
최재천 지난 2년간 이것을 부정해오다 최근 들어 외교부가 어쩔 수 없이 전작권 문제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인정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성격 변화가 있고 용산기지 이전도 포괄적인 측면에서 상관이 있다고 물러선 것은 큰 다행이다. 그러나 사과가 없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그토록 중요한 개념을 국민들에게 숨겨왔고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변경이라는 용어도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요구해서 애매모호하게 바꿨다.
용산기지 이전 의미, 갑자기 태도 바꾼 정부
둘의 대화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지난 2003년 이래 용산기지 이전이 GPR·전략적 유연성과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전작권 관련 보수진영의 공세가 계속되고 이 문제가 갑자기 불거진 것에 대해 국민들이 의아해하니까 전작권 환수는 이전부터 추진됐던 용산기지이전, GPR 및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뜬금없는 일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 차관의 발언 직전까지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이 노태우 정부 때부터 국가적 자존심 차원에서 제기됐던 것이며, 우리가 먼저 옮기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기지 이전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변해왔다.
미국은 냉전이 해체된 뒤, 특히 대 테러 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해외 주둔 미군을 유연하게(전략적 유연성) 재편하는 작업을 해왔다. 가장 시험적 모델은 주한미군이었다. GPR에 따라 주한미군을 언제든지 해외로 출동하기 편하도록 공항이 있는 오산과 항구가 있는 평택으로 2008년까지 이전을 추진했다.
주한 미군 재배치는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 모든 비용을 한국이 대겠다고 합의해줬다. 한국 정부는 잠정적으로 이전 비용이 53억 달러라고 주장하지만 신빙성이 거의 없다. 1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근 정부가 용산기지 터 일부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것도 천문학적인 기지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난 17일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전작권을 2009년에 넘겨주겠다며 방위비 분담금의 공정한(equitable) 분담을 요구했다. 'equitable'이라는 용어는 50 대 50을 연상시킨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40%를 밑돈다고 불만을 터뜨려왔다.
지난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6804억원이다. 미국 요구대로 50% 선만 해도 당장 10%P의 증액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직접적 비용 외에도 카투사 제공 등 각종 간접 비용을 합치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이라는 관측이 많다.
주한미군이 동북아 기동군으로 변모하면서 한국은 '자주 국방'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60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쓸 계획이다. 전력 증강을 위해 들여오는 무기의 대부분은 미국제다.
방위비 분담금 줄일 때도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6월 20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 경제규모와 부담능력을 상회하며, 주한미군에 대한 각종 간접지원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의 한국 안보에 대한 기여도가 달라지고 우리 자체의 안보부담이 늘어난 만큼 방위비 분담금에서 상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까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낸 이유는 주한미군이 대북 억지력으로 존재했기 때문인데,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군대로 변모한 만큼 오히려 방위비 분담금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이 거꾸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주먹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행동이다.
한국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을 민족적 자존심과 연관시키면서 '자주' 장사를 했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 미군의 역할이 변하고 장기적으로 동북아 사령부가 구성되면 한국군은 미군의 군사적 분업 체계에 편입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국방비 부담이 급증하는데 이것을 '자주 국방'이라고 포장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자주' 장사에 편승해 자신들이 물어야 할 기지 이전 비용을 떠넘겼다. 한술 더 떠 이제는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까지 요구한다.
한·미 동맹이 위태로운 것은 보수 진영의 주장처럼 현 정부의 자주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한·미 양국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한국민을 속이는 데서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