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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의 심장. 속이 꽉찬 녀석의 엔진룸을 보고 있노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백구의 심장. 속이 꽉찬 녀석의 엔진룸을 보고 있노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 오창학
허나 그들이 어찌 알랴. 한 사내의 로망을. 88년식 프라이드를 몰던 98년 언저리. 무쏘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 길에서 그 놈을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한참을 넋 놓고 따라가던 한 사내의 동경을…. 하여 근 10여년이 지난 즈음 먼 길을 동행할 동반자를 선택함에 그녀석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아파트 앞의 백구. 적재할 대략의 짐들.
아파트 앞의 백구. 적재할 대략의 짐들. ⓒ 오창학
더구나 적재함이 분리되어 있는 화물이어서 짐 싣는 양이 많고 예비연료의 적재로 인한 냄새가 차내로 흘러들지 않기에 장거리 운행에 최적의 차라 생각했다.(다만 2열좌석의 등받이가 거의 직벽에 가까우므로 뒷좌석에 앉는 사람은 장시간의 착석이 고통스럽겠지만)

2006.1월 경기도 앵자산 눈길. 순정상태 그대로 참 바쁘게 돌아다녔다. 앵자산 오르는 길에 눈길에 미끄러지며
2006.1월 경기도 앵자산 눈길. 순정상태 그대로 참 바쁘게 돌아다녔다. 앵자산 오르는 길에 눈길에 미끄러지며 ⓒ 오창학
때마침 무쏘를 응용한 픽업인 '무쏘 스포츠'가 화물차 적재함 기준 논란으로 단종을 예고한 즈음이어서 연내에 차량을 준비하기로 했고, 떠나기 전 차와 적응할 시간을 1년으로 잡았기에 8월에 준비했다. 그리곤 참 분주하게 국내의 오지와 *오프로드를 찾아 쏘다녔다.

화성 형도의 채석장을 기어 오르는 백구
화성 형도의 채석장을 기어 오르는 백구 ⓒ 오창학

한탄강에서.
한탄강에서. ⓒ 오창학
2005년 9월. 막대한 허가비용(중국 내 외국자동차 운행 허가)과 사막 구간에서의 안전상 이유로(내몽고 고비사막과 돈황에서 하미까지의 막하연적 사막을 무보급 횡단할 계획이므로 단독주행시 차량고장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동행할 차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륜구동의 차주이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고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거기에 사서 고생하겠다는 모험심을 겸비한 사람과 인연이 닿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다 에릭님을 만났다. 실크로드 여행을 찾아 내가 운영자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카페에서. 외국어 학원의 원장으로 이번 여행을 위해 2000년 6월식 무쏘를 장만하고 전격 합류. 생전 처음 사륜구동을 접하는 양반이 전후륜 락커를 장착하고 모래뻘과 돌산을 오르내리며 수련의 세월을 함께했다.

사자평에 선 백구와 파라곤
사자평에 선 백구와 파라곤 ⓒ 오창학

골탕을 빠져 나오는 파라곤. 파라곤엔 전후륜 에어 락커가 장착되어 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만이라도 땅에 닿아 있다면 진행이 가능하다.
골탕을 빠져 나오는 파라곤. 파라곤엔 전후륜 에어 락커가 장착되어 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만이라도 땅에 닿아 있다면 진행이 가능하다. ⓒ 오창학
2006년 3월. 돌쇠(필자), 마님(필자의 아내), 에릭님, 그리고 그의 친구 자포님 등 4인과 사륜구동 2대로 이루어진 팀 구성. 이후 준비과정에서 중국에 연구교수로 6개월 간 파견 중이시던 황인덕 교수님, 에릭님의 후배 나리님이 전격 합류해 6인으로 구성된 '2006 실크로드 역사 탐험대'를 발족시켰다. 어렵사리 시도하는 긴 여행이 단순한 '기행'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 속에 남겨진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자는 거창한, 그러면서도 가슴 뿌듯한 주제와 함께.

내몽고 마지막 여정지에서의 한 장면.
내몽고 마지막 여정지에서의 한 장면. ⓒ 오창학
선조의 흔적이 배인 역사의 길을 더듬는 한 무리 *카라반이 된 것이다. 비록 낙타 대신 자동차를 타고 해와 별 대신 GPS로 방향을 잡겠지만 마음만은 1300여 년 전 순례자가 되어 고선지와 혜초도 만나고 한락연의 흔적도 찾아보게 되리다.

대전 유성나들목 만남의 광장에서의 출정식. 돌쇠(필자), 자포, 에릭. 나리는 인천에서 합류키로 한 탓에 또 사진에서 누락.  이들 4인이 선발로 선편을 통해 톈진가는 천인호에 동행한 무리. 교수님은 톈진에서 합류. 마님(필자의 아내)는 방학 일정상 시안(서안)에서 비행기로 합류.
대전 유성나들목 만남의 광장에서의 출정식. 돌쇠(필자), 자포, 에릭. 나리는 인천에서 합류키로 한 탓에 또 사진에서 누락. 이들 4인이 선발로 선편을 통해 톈진가는 천인호에 동행한 무리. 교수님은 톈진에서 합류. 마님(필자의 아내)는 방학 일정상 시안(서안)에서 비행기로 합류. ⓒ 오창학
겨우 25시간이지만 나름대로 긴(?) 항해를 마치고 배는 톈진 당고 외항에 이르렀다. 들고나는 선박이 빈번한 관계로 정박 허가를 받기 위해 또 선내에서 3시간을 더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뭐 어떠랴 지난 1년 반의 기다림도 견뎌냈거늘 그깟 3시간쯤이야.

톈진 당고항 외항에 들어서며.
톈진 당고항 외항에 들어서며. ⓒ 오창학
하선 방송을 기다리며 자못 설레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중국에서의 통관은 잘 될까? 사고 없이 운행할 수 있을까? 38일 뒤엔 예정대로 이 장소에 돌아올 수 있을까?

밤 11시. 드디어 하선. 식품류는 통관이 어려운 품목인고로 차량 적재품목에서 빼내어 배에 들고 탄 탓에 한 가득이 된 짐들을 동여 메며 내 마음 한 자락도 챙겼다. 기원전부터 동서 문명교류의 역사적 장이었던 실크로드 상에서 한반도와 연관성을 찾고 한민족이 동서문화교류사의 주변인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자는 거창한 우리 의도보다 더 빛나는 자동차 대륙여행의 꿈이 담긴 부푼 마음을.

여행 차량 선정을 위한 조언

장기간 여행을 위한, 그리고 비포장과 산악지역, 사막 등 험준한 자연을 극복해야할 자동차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요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사륜구동(네 바퀴 굴림)일 것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현재 중국의 실크로드 구간의 대부분은 포장도로화 되어 있습니다. 포장도로가 아니라면 비포장으로나마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동차 여행’이라는 주제를 잡고 길을 떠난다면 승용차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길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륜구동(두 바퀴 굴림) SUV는? 지상고가 높다는 점에서 승용차보다는 낫겠지만 ‘도진개진’입니다. ‘갈 수 있는 길’만 찾아 ‘길’로만 다닐 나섰다 해도 중국 서부구간의 도로가 온통 공사 중이거니와 지형이 다른 곳 같지 않아 운전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필자가 이동한 동일구간 일주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고자 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기 위해 스스로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라면 사륜구동은 필수이고 4H뿐 아니라 4L기능이 가능한 차량을 선택해야 합니다. 통과하는 노선에 사막지역이나 험준한 산악지형이 있다면 에어락커나 LSD 등의 부가 장치가 되어 있다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2. 짐과 장비의 적재 공간이 넉넉할 것

수십 일 간 사용할 의류와 생필품, 소모품, 자동차 공구, 예비 부품, 비상식량, 취사도구, 야영장비, 촬영도구, 물, 예비연료(필수품은 아니고 여행의 성격에 따라 필요) 등을 적재할 것을 생각한다면 짐의 수납성이 용이하고 적재공간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짐들을 감당할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요.

3. 출력에 여유가 있을 것

효율적 여행을 위해서라면 경비 문제 때문에 1차량 3인 이상이 탑승할 것이고 그 세 사람이 수십일 간 먹고 쓸 짐과 운행과 야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싣노라면 2번에서 언급했듯 차량의 적재중량이 매우 증가하게 됩니다. 더구나 산맥 지대를 넘거나 긴 언덕을 무시로 오르내리는 처지라면 최소 12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차가 적당하겠습니다.

4. 해외에서 부품공급이 용이한 차량일 것

중국에도 국산 사륜구동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는 보기 귀하고 주종을 이루는 것이 테라칸 구형 싼타페 등의 현대차입니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중국 내에서 국산 차량의 부품 수급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5. 연식이 짧은 차일 것

차량의 고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장이 안 날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최선의 답은 '싱싱한 엔진'과 '젊은 차체'를 가진 녀석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소한 차량의 고장도 정비소를 찾기 어렵거나 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선 여행을 망치는 치명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고장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준비하기 보다는 연식이 깨끗한 차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대개 4년 이내의 차량이 '깨끗한 차'에 속하고 6년 내외의 차량도 떠나기 전 완벽한 손질을 한다면 기준 안에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완벽한 손질’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6. 차량의 연료

겨울철을 택하거나 극지를 가는 차량이라면 당연히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엔진 차량을 피하고, 설사 사용하더라도 어는점이 높은 경유를 공급할 방법을 모색해야겠지만 그 외의 계절이나 사막지역이라면 경유와 휘발유 어느 연료를 사용하는 차든 무방합니다. 또 중국은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거의 동일하거나 지역에 따라 오히려 경유가 비싼 경우도 있으므로 굳이 경유차를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국산 사륜구동은 대개 경유차로 출시되므로 그냥 가져갈 뿐이지요.

7. 그 외 부가적 기능 고려

차량에 루프텐트, 실외 적재함(루프렉) 장착, 윈치, 트레일러 등 여러 가지 부가적 기능을 추가하고 싶을 때 차량이 그에 합당한가를 살피는 것도 필요합니다. 참고로 쌍용 계열의 차가 아니면 차동기어에 락커 설치는 불가능하며 LSD의 장착만 가능합니다.

이상의 요건을 종합해보면 국내 차종으로는 대략 다음의 차량이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갤로퍼 7인승, 테라칸, 렉스턴, 무쏘, 무쏘 스포츠. 카이런, 액티언 스포츠, 소렌토(적재공간이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하면 산타페, 뉴산타페, 윈스톰 같은 근간의 도시형 SUV들도 해당 차종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스포티지나 투싼은 승용형․도시형 사륜은 지상고와 짐 수납에 너무 여유가 없어서 부적절하고, 액티언은 출력 넘치고 지상고도 여유가 있지만 4L이 안 되는데다 적재공간이 고작 아이스박스 하나 들어갈 공간도 나오질 않으니 장거리 험지 여행용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막이라도 길을 따라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야영장비나 부가장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상기 열거한 차종들도 괜찮은 동행자가 될 듯싶습니다.

구형코란도 롱바디(9인승)도 투어링 차량으로서는 외관이 미려하고 적재 편의성도 좋으며, 험로 주파성도 좋으나… 76마력 엔진은 제 몸 하나 끌기도 버거우며 13년이 넘은 늙은 심장은 언제 멈출지 몰라 걱정이고, 트랜스미션도 심심찮게 말썽을 부리는 기종이어서 해외 원정용으로는 부적격입니다.

팀을 이루어 여행을 떠날 경우라면 부품의 호환성을 고려하여 동종의 차종으로 차량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최소한 휠과 타이어만이라도 같은 규격으로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 오창학

덧붙이는 글 | *오프로드: 이 용어를 저 개인적으로 개념규정하여 '비포장길=포장이 되지 않은 길'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길은 길이되 길 같지 않은 길'. 즉 '특별한 수단과 비범한 기술이 뒷받침 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길이 되는 험지'로 정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라반(Carvan): (사막의) 대상(隊商), (순례자등의) 여행자단, (집시등의) 포장마차, 이주민의 마차대열

이 여행기는 주2~3회씩 게재하여 약 45회의 분량으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연재의 취지가 자동차를 이용한 장거리 대륙여행의 체험을 공유와 실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의 공개에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혹 궁금하신 점이나 기사에 공개되길 원하시는 내용이 있다면 쪽지나 댓글로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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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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