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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밤이면 달랐다. 거기서 늑대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두워지면 공동묘지는 원래의 공포를 되찾았다. 낮에는 휘영청 늘어진 아름다운 소나무가지들조차 달그림자가 만들어낼 때는 무시무시한 흉신이나 귀신으로 변하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밤에는 그곳을 찾아올라가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그곳에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동네 '머스마(사내애의 경상도 사투리)'들은 반드시 여름 한 철 내 그곳을 한 번씩은 갔다 와야 했다. 바로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가시나(여자아이의 경상도 사투리)가 되지 않기 위한.
공부를 애써 시키는 부모님도, 애써 하는 아이도 없는 그 마을에선 아침부터 올라간 아이들은 실컷 놀다 저녁 무렵이면 내려온다. 그리고선 밤이면 마을 한곳에 모인다. 그 순간 모두 긴장한다. 제비뽑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제비를 뽑은 아이들은 울상이 된다.
동네의 대빵인 골목대장은 낮에 놀 때 은밀하게 자기의 물건, 예를 들면 새총 같은 것을 어느 무덤 근처에 숨겨놓는다. 바로 그 물건을 제비뽑아 당첨된 아이에게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는 두 명이 한 조가 된다. 이 두 명에겐 그 무시무시한 공동묘지로 올라가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발뺌할 수가 없다. 가지 않겠다는 순간 그는 '가시나(=겁쟁이)'가 되고 동네 아이들에게 왕따가 된다. 그러니 요즘 들어 사회적 문젯거리인 '왕따'의 원조가 우리 동네였다고 해야 하나.
그때 우리 또래 사내애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저 새끼, 가시나다!' 하는 소리였다. 한 번 '가시나'로 찍히면 그 애는 영원히 우리 또래에서 왕따를 당했다. 즉 우리를 지배하던 골목대장이 '가시나'라고 판정하는 순간, 그는 머스마(용감한 사내)로서 생활은 끝났다.
그러니 선택된(?) 아이 둘은 어찌할 수 없이 공동묘지를 향한다. 비록 겁이 나 바지에 오줌을 지릴지언정 가시나가 되지 않기 위해 오른다. 겁이 날 때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 바로 노래다.
당시에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진짜 사나이'였다. 군가로 만들어진 이 노래가 어쩜 그때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딱 맞는 노래였던지….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올라갈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아마 서른 번도 더 불렸을 것이다.
음정 박자 무시해가며 오직 악을 써 가며 공동묘지를 향한다. 가끔 나타나는 반딧불이도 이때는 반갑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무섭다. 하필이면 이럴 땐 그 끊임없이 내지르던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그친다. 어두운 밤, 소리조차 없는 밤, 어디선가 들어온 가는 불빛에 비쳐 만들어내는 모든 사물의 그림자가 기괴하기까지 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여 목표물을 손에 넣고는 달음박질이다. 워낙 다닌 길이라 아무리 어둡더라도 길을 못 찾을 리 없다. 그러나 아래로 내달리다 보면 가속도가 붙고 마침내 한 명이 미끄러져 나뒹군다. 그러면 잠시 멈출 뿐.
발목 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달음박질뿐이다. 아마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산을 내리 달리는 경기가 있었다면, 우리 동네 아이들의 독무대였을 것이다. 비로소 마을에, 처음 출발했던 곳에 이르러서야 안도를 한다. 그러나 그 순간 내려오다가 자빠졌을 때 목표물을 빠뜨리고 오면 만사휴의(萬事休矣 :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감). 다음날 다시 올라가야 한다.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가며 이야기하다가 무덤가에서 만난 처녀귀신 이야기라도 지어내 덧붙여 이야기하다가 보면 저희끼리 "어마!", "어마!" 하는 소리가 연방 터진다. 이렇게 하여 여름 끝에 들려주는 조금 무서운 이야기의 1부는 끝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