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 23명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한미FTA 협상을 일방 추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상대다.
소장에 서명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13명, 민주노동당 9명 전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 등이다. 여당 의원이 절반 넘게 포진해 있다.
언론은 당청 갈등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앞장 서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에 반기를 들었으니 그렇게 해석할 만도 하다.
시기적으로도 미묘한 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때에, 특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14일)을 앞둔 시점에, 한미FTA 3차 본협상이 진행중인 때에 여당 의원들이 '배후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 나간 분석이다. 갈등의 한 축인 당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청와대와 집단적으로 대립할 만큼 전열이 정비돼 있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한미FTA에 대한 당론을 갖고 있지 않다. 안 정했는지, 못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없다. 간헐적으로 내놓는 의견이란 게, 협상을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뭘 알아야 입장을 정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앉지도 서지도 않은, 기마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입장이 난처해지는 곳은 열린우리당 지도부다. 당론이 없으니까 13명 의원의 '결행'을 당의 이름으로 저지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느냐고 힐난할 수도 없다. 그럼 당의 위신이 깎인다. 그렇다고 뒷짐 지자니 청와대의 눈치가 따갑다.
사정이 이렇다면 열린우리당은 백가지 꽃이 만발하고 백가지 소리가 뒤섞이는 난장이 되기 십상이다. 당청 갈등 이전에 당내 갈등이 빚어진다.
역으로 짚자. 13명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결행'은 결과적으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기마 자세를 풀지 않는 당의 입장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당 지도부, 앉지도 서지도 않은 기마 자세로 일관
조건도 갖춰지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진행되는 한미FTA 3차 본협상이 끝나면 한미 양국의 대립점이 보다 선연해질 것이고, 일단 지켜보자는 당의 입장은 코너에 몰릴 것이다.
이때가 변곡점이 될 것이다. 당청이 갈등을 빚을지, 일체가 될지는 이 시점에 최종 정리될 것이다.
시점이 중요하다. 당내 갈등이 정리되는 시점이 정기 국회 이후가 되면 한미FTA는 정계개편 논란과 맞물려 돌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FTA는 정책 분야에서 뛰쳐나와 정치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된다.
전개양상은 속단할 수 없다. 한미FTA가 정책 사안에서 정치 사안이 되는 순간 규정 요소는 다양해진다. 정책 자체에 대한 찬반 차원을 벗어나서 편들기와 반칙이 난무하는 레슬링 더블매치 양상이 될 수도 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한 가지 사실을 환기하자. 권한쟁의심판 청구 소장에 서명한 23명의 의원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은 단 한명도 없다. 다른 신문이 이 소식을 1면 주요 뉴스로 처리했는데도 보수 언론은 단신으로 구겼다. 왜 그랬을까?
답을 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