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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용어 바로쓰기>
<역사용어 바로쓰기> ⓒ 역사비평사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나 태도는 저마다 달라진다. 또한 용어의 정립은 역사를 바라보는 일정한 관점의 확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용어를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개념을 공고히 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가 엮은 <역사용어 바로쓰기>는 그간의 분분했던, 익숙하지만 잘못되었던, 그럴듯하면서도 한계를 지니고 있던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역사용어들을 되짚고 있다.

'한말, 개항기, 개화기, 애국계몽기'(이윤상의 글)부터 보자. 비슷한 시기를 두고 이토록 가리키는 용어가 분분하다. 맞다 틀리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근거로 그 용어를 쓰고 있느냐 또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그 시기를 단적이고 포괄적으로 말해줄 수 있느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하게 맞아떨어지는 용어는 없는 듯하다.

다만 어떤 용어 어떤 지칭이 다른 용어들에 비해 좀더 적절하다고 학계에서 현재적 시점에서 인정하는 용어가 있을 따름이다.

한국 근대사의 앞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한말''구한말''개항기''개화기''애국계몽기' 등은 모두 크고 작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중략) 당분간은 각각의 학문 분야별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용어가 사용될 수밖에 없겠지만,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좀더 적절한 용어가 없는지 찾아 나가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백성, 평민, 민중'(정창렬의 글)을 보자. 글의 흐름을 짚어보면 '백성→평민→민중'의 역사적 인식적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백성'의 단계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통치행위의 객체적인 대상일 뿐"(41~42쪽)이며 '평민'의 단계는 "스스로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회의 담당주체로 의식하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46~47쪽)고 말한다.

글쓴이는 '민중'의 개념을 주로 '동학사상과 농민전쟁'에 비중을 두되 '개화사상과 개화운동''위정척사사상과 의병운동'을 아우르는 바탕 위에서 1930년대 '계급적 유대'를 보이는 사회 변화를 종합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서 1945년까지로 국한하여 이 시기의 민을 백성의 단계, 평민의 단계, 민중의 단계로 살펴본 바) 이제 한국 민중은 인간으로서의 해방, 계급으로서의 해방, 민족으로서의 해방을 통일하여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식과 운동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중략) 이러한 민중의 존재 양상은 오늘날에는 또다시 오늘날의 조건에 규정되어 상당한 변모를 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않은가 생각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류시현의 글)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것일까? 서구에서 가져온 말이지만 우리가 사용한 의미는 서구에서 사용한 의미와는 다소간 차이가 있는 듯하다. 글쓴이의 말을 옮기자면 원론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범주는 다른 것이라고 하며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원론적 이념 구별보다는 민족운동 차원에서 이를 활용하고자 했다고 한다.

대략 서구의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양자를 소유 방식의 차이로 구별했다. (중략) 혹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중략) 식민지 조선의 민족운동 진영에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당이란 명칭이 얼마 후 공산당이란 명칭으로 일반화될 정도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은 별다른 차별성을 지니지 못했다. (중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은 식민지적 상황을 벗어나 해방을 추구했던 지식인의 관심 속에서 본격적으로 수용되었고, 사회주의 이론은 실제 민족운동에 적용되었다.

'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문화민족주의'(박찬승의 글)는 각각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선 '민족'과 '민족주의'는 1907년경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민족'은 '동포'보다 내적인 평등과 단결을 더 강조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대립어로 주로 사용되는 가운데 민족의 실체에 대한 추구(민족의 고유성과 특수성에 대한 확인 작업)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국 근대 민족의 탄생은 3·1운동이라는 결실을 이루었고 경제적 자립운동의 일환이었던 물산장려운동이 좌절되자 민족주의 진영은 자치운동(완전 독립에서 일보 후퇴하여 내정 독립만을 의미하는 자치권을 얻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 여부를 둘러싸고 이를 지지하는 쪽(민족주의 우파='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의 줄임)과 반대하는 쪽(민족주의 좌파='부르주아민족주의 좌파'의 줄임)으로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민족주의란 본래 정치사상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자유주의와도 결합될 수 있고 사회주의와도 결합될 수 있었다. (중략) 따라서 식민지시기 한국의 민족주의를 분류할 때 자유주의와 결합된 민족주의는 '부르주아민족주의'로, 사회주의와 결합된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로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본다.

같은 사물이나 사건일지라도 보는 이에게 각기 다르게 비칠 수 있고 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고 다양하게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상의 말대로 "그것(용어)을 사용하는 연구자의 이념적 지향과 역사에 대한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용어를 정립하는 작업은 단순히 학술적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역사를 바라보는 이 시대 사람들의 눈이 되고 생각이 되어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각별하다.

덧붙이는 글 | * 엮은이: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 펴낸날: 2006년 8월 21일 / 펴낸곳: 역사비평사 / 책값: 1만 2000원


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역사비평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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