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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끼고 낫을 챙겨서 막 마당으로 나서는데 퍼뜩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 의식이 채 느끼기도 전에 내 온몸으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서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디딤돌 근처에 뱀이 있었다.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이 보였다.
"우왓, 뱀이닷!"
"여보, 뱀이다 뱀. 뱀이 개구리 먹고 있다."
너풀떼기 뱀 한 마리가 개구리를 물고 있었다. 개구리는 아무 저항도 없이 그냥 가만있기만 했다.
"뭐, 개구리는 안 됐지만 이거도 자연의 순리이고.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겠지. 그냥 보기만 할께 네 하던 일 계속 해라."
나는 혼잣말로 뱀에게 말을 걸며 살살 다가갔다. 밤 밭에 풀 베러 갈 생각은 접어 버리고 뱀이 개구리를 먹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와서 본격적으로 뱀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구리는 제법 컸다. 뱀도 컸지만 개구리가 더 통통해 보였다.
'저렇게 큰 놈을 어떻게 삼킬까? 지 몸보다 더 굵은 개구리를 삼킬 수가 있을까?'
뱀은 몸을 이리 저리 비틀면서 개구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개구리를 한 입에 삼켜 나갔다.
그런데 저 쪽에서 또 뱀 한 마리가 기어오는 게 아닌가. 다리도 없는 놈이 어떻게 그리도 빠르게 이동을 하는지 지켜보는 사이 금방 내 근처까지 왔다. 가만있다가는 곤란하겠다 싶어서 가볍게 발을 굴러주었더니 뱀이 방향을 틀었다. 그 뱀은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뱀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뱀들도 먹이 뺏기를 하는 걸까? 나중에 온 놈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놈에게 시비를 거는 거 같이 보였다. 나중 놈이 먼저 놈의 몸에 자기 몸을 척 걸쳤다. 그러자 먼저 놈이 몸에 힘을 팍 주면서 타타닥 몸을 곤추세우는 듯 했다. 마치 '어딜 감히 넘봐? 이건 내 거야.' 그러는 거 같았다.
그러자 몸을 걸치면서 시비를 걸었던 놈이 슬며시 몸을 내리고는 금잔화 꽃밭으로 들어가 버렸다. 꽃 사이로 반들반들한 뱀눈만 보였다.
뱀은 개구리를 반 넘어 삼키다가 다시 뱉어냈다. 그리고 또 삼키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은 따갑게 내리쬐는데, 그 햇살을 받은 뱀의 몸은 동백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끌매끌해 보였다.
뱀은 내가 보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개구리를 삼키다가 잔디가 길게 자란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행동이 얼마나 재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큼 가 있었다. 나는 뱀이 마음 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다. 좀 있다 나와 보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예전 우리 어릴 때는 독사나 구렁이라야 뱀으로 쳐주었지 독 없는 꽃뱀은 뱀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머리가 삼각형인 뱀은 독사니까 무조건 피했지만 독이 없는 꽃뱀은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다. 소 먹이러 갔다가 뱀이라도 한 마리 만나면 남자 아이들은 그 뱀을 잡아서 장난을 쳤다.
그 때는 뱀을 만나면 무조건 죽였다. 돌로 쳐서 죽였다. 왜 그랬는지 뱀만 보면 다 죽였다. 그래도 그 때는 뱀이 많았다.
이제는 뱀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일 년 내내 가도 뱀 한 마리 못 보고 지나갈 때도 있다. 시골에 사는 나도 이런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뱀도 사람과 함께 이 땅에서 어울려 사는 동물인데 뱀을 무서워하고 피할 것까지 있을까 싶다. 사람과 뱀은 각자 사는 곳이 다르므로 부딪힐 일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뱀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다 든다. 그래서 나는 뱀에게도 말을 건다.
"야,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야. 여기 오면 어떻게 하냐? 빨리 가라."
그러면서 긴 막대로 슬슬 돌려주면 뱀은 자기 갈 길로 다시 돌아간다.
사람들은 모르는 그 무엇에 대해서 근원적인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존재를 알면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데 모르니까 공포심을 느낀단다. 뱀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무조건적인 공포감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나는 본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뱀은 무섭고 추악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뱀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더구나 그 뱀에게 애정을 가진다면 뱀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가서 한 번 만져보고 싶기까지 하는 동물이다.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미끈한 뱀의 몸을 나도 모르게 슬쩍 한 번 만져보고 싶기까지 했다.
가을이 되면 어른들은 애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야들아, 가을되면 뱀들이 독이 오른다. 가을에 뱀한테 물리면 고생 하니까 뱀 잡지 마라."
독사는 가을이 되면 독이 올라서 더 빳빳해지지만 독이 없는 뱀은 가을이 되어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선 먹이를 많이 먹어둬야 하는지 가을이 되니까 안 보이던 뱀들이 보였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마리씩이나 나타났다.
그 날 이후로 뱀은 우리 집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러 풀숲을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마당 한 쪽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곳에는 개구리들이 상주한다. 아마도 뱀은 그 개구리들을 보고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왔나 보다.
다시 뱀이 보이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반갑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야. 너네들이 사는 곳으로 가라."
그렇게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