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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송이들이 쩍쩍 벌어져 갑니다. 알밤 줍는 재미에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밤송이들이 쩍쩍 벌어져 갑니다. 알밤 줍는 재미에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 이승숙

장갑을 끼고 낫을 챙겨서 막 마당으로 나서는데 퍼뜩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 의식이 채 느끼기도 전에 내 온몸으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서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디딤돌 근처에 뱀이 있었다.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이 보였다.

"우왓, 뱀이닷!"
"여보, 뱀이다 뱀. 뱀이 개구리 먹고 있다."

너풀떼기 뱀 한 마리가 개구리를 물고 있었다. 개구리는 아무 저항도 없이 그냥 가만있기만 했다.

"뭐, 개구리는 안 됐지만 이거도 자연의 순리이고.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겠지. 그냥 보기만 할께 네 하던 일 계속 해라."

나는 혼잣말로 뱀에게 말을 걸며 살살 다가갔다. 밤 밭에 풀 베러 갈 생각은 접어 버리고 뱀이 개구리를 먹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와서 본격적으로 뱀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저는 그냥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저는 그냥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 이승숙

개구리는 제법 컸다. 뱀도 컸지만 개구리가 더 통통해 보였다.
'저렇게 큰 놈을 어떻게 삼킬까? 지 몸보다 더 굵은 개구리를 삼킬 수가 있을까?'

뱀은 몸을 이리 저리 비틀면서 개구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개구리를 한 입에 삼켜 나갔다.

그런데 저 쪽에서 또 뱀 한 마리가 기어오는 게 아닌가. 다리도 없는 놈이 어떻게 그리도 빠르게 이동을 하는지 지켜보는 사이 금방 내 근처까지 왔다. 가만있다가는 곤란하겠다 싶어서 가볍게 발을 굴러주었더니 뱀이 방향을 틀었다. 그 뱀은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뱀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뱀들도 먹이 뺏기를 하는 걸까? 나중에 온 놈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놈에게 시비를 거는 거 같이 보였다. 나중 놈이 먼저 놈의 몸에 자기 몸을 척 걸쳤다. 그러자 먼저 놈이 몸에 힘을 팍 주면서 타타닥 몸을 곤추세우는 듯 했다. 마치 '어딜 감히 넘봐? 이건 내 거야.' 그러는 거 같았다.

그러자 몸을 걸치면서 시비를 걸었던 놈이 슬며시 몸을 내리고는 금잔화 꽃밭으로 들어가 버렸다. 꽃 사이로 반들반들한 뱀눈만 보였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든데 두 마리씩이나 나타나다니... 가을이 되니까 이들도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든데 두 마리씩이나 나타나다니... 가을이 되니까 이들도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 이승숙

뱀은 개구리를 반 넘어 삼키다가 다시 뱉어냈다. 그리고 또 삼키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은 따갑게 내리쬐는데, 그 햇살을 받은 뱀의 몸은 동백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끌매끌해 보였다.

뱀은 내가 보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개구리를 삼키다가 잔디가 길게 자란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행동이 얼마나 재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큼 가 있었다. 나는 뱀이 마음 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다. 좀 있다 나와 보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예전 우리 어릴 때는 독사나 구렁이라야 뱀으로 쳐주었지 독 없는 꽃뱀은 뱀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머리가 삼각형인 뱀은 독사니까 무조건 피했지만 독이 없는 꽃뱀은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다. 소 먹이러 갔다가 뱀이라도 한 마리 만나면 남자 아이들은 그 뱀을 잡아서 장난을 쳤다.

그 때는 뱀을 만나면 무조건 죽였다. 돌로 쳐서 죽였다. 왜 그랬는지 뱀만 보면 다 죽였다. 그래도 그 때는 뱀이 많았다.

이제는 뱀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일 년 내내 가도 뱀 한 마리 못 보고 지나갈 때도 있다. 시골에 사는 나도 이런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뱀 한 마리가 이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보호색을 띠고 있어서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뱀 한 마리가 이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보호색을 띠고 있어서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 이승숙

뱀도 사람과 함께 이 땅에서 어울려 사는 동물인데 뱀을 무서워하고 피할 것까지 있을까 싶다. 사람과 뱀은 각자 사는 곳이 다르므로 부딪힐 일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뱀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다 든다. 그래서 나는 뱀에게도 말을 건다.

"야,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야. 여기 오면 어떻게 하냐? 빨리 가라."
그러면서 긴 막대로 슬슬 돌려주면 뱀은 자기 갈 길로 다시 돌아간다.

사람들은 모르는 그 무엇에 대해서 근원적인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존재를 알면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데 모르니까 공포심을 느낀단다. 뱀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무조건적인 공포감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나는 본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뱀은 무섭고 추악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뱀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더구나 그 뱀에게 애정을 가진다면 뱀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가서 한 번 만져보고 싶기까지 하는 동물이다.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미끈한 뱀의 몸을 나도 모르게 슬쩍 한 번 만져보고 싶기까지 했다.

가을이 되면 어른들은 애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야들아, 가을되면 뱀들이 독이 오른다. 가을에 뱀한테 물리면 고생 하니까 뱀 잡지 마라."
독사는 가을이 되면 독이 올라서 더 빳빳해지지만 독이 없는 뱀은 가을이 되어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 사는 근처에는 오지 마라 뱀아.
사람 사는 근처에는 오지 마라 뱀아. ⓒ 이승숙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선 먹이를 많이 먹어둬야 하는지 가을이 되니까 안 보이던 뱀들이 보였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마리씩이나 나타났다.

그 날 이후로 뱀은 우리 집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러 풀숲을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마당 한 쪽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곳에는 개구리들이 상주한다. 아마도 뱀은 그 개구리들을 보고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왔나 보다.

다시 뱀이 보이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반갑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야. 너네들이 사는 곳으로 가라."
그렇게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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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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