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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최근 대선후보 경선논의를 내년으로 미루기로 합의를 봤다. 사진은 지난 6월 16일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박근혜 대표 이임식에 참석한 이명박 서울시장과 강재섭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최근 대선후보 경선논의를 내년으로 미루기로 합의를 봤다. 사진은 지난 6월 16일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박근혜 대표 이임식에 참석한 이명박 서울시장과 강재섭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만나 합의를 봤다. 대선후보 경선논의를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유는 충분하다.

강재섭 대표 스스로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대선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선기구를 빨리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맞다. 굳이 앞서 나가 견제구를 맞을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전 시장도 한 마디 했다. "내년에 가서 (경선논의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대선주자들은 외곽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고 했다. 현실적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지지도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호각세를 유지하지만 당원지지도에선 밀린다. 대리전으로 치러진 지난 당 대표 경선결과가 입증하는 바다. 당심을 돌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유는 충분하지만 결과는 보증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합의는 반쪽짜리다.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빠져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강재섭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의 후광 아래 놓인 사람이다. 손학규 전 지사는 민생대장정에 여념이 없다.

반쪽짜리 합의라고 지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합의는 공식부문에 한정된 합의다. 당 공식 단위에서의 백화제방은 막을 수 있겠지만 야생초가 움트는 것까지 막을 재간이 없다.

공식부문 합의는 결국 반쪽짜리 합의

이런 경우가 있다. 김무성 의원은 거듭해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안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형성되었을 때 리더가 주도해 한나라당의 기득권을 버리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중도보수 세력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경선논의를 하지 말자는 판에 경선 후를 논의하자고 한다. 김무성 의원의 이런 주장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대선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한나라당 울타리를 넘어 정치권 전체의 백가쟁명을 야기한다.

눈 여겨 볼 대목이 있다.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통합 시점을 한나라당에 강력한 리더십이 형성되었을 때로 꼽았다. 돌려 말하면, 지금은 리더십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강재섭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합의가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두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경선논의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합의의 바탕에는, 올해에는 화력을 한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이명박 전 시장 말마따나 "민생도 어렵고 정기국회도 열리는 상황"이다. 화력을 한곳에 집중하려면 당 지도력이 확고히 서야 한다.

하지만 현상은 정반대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어제(14일) "당에 구심점이 없어 헛바퀴 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방호 의원은 지난 12일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전략전술도 없는" 당 지도부를 맹비난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 문제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이고 안이하게 대처"했으며, 바다이야기 파문에 대한 대응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명박 전 시장 계열로 분류되는 사람이고, 이방호 의원은 이재오 최고위원이 원내대표를 할 때 짝을 이뤄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두 사람의 비판은 당 지도력과 구심력 구축을 촉구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하지만 실내용은 당 지도력에 대한 도전이다. 무기는 원칙론이다. 이게 문제다.

구조의 노예가 된 강재섭 대표의 지도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 이재오 최고위원등 당지도부가 14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 이재오 최고위원등 당지도부가 14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비주류의 힘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입장은 원칙적이고 목소리는 강경하게 마련이다. 비주류의 도전이 약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를 좌우하는 건 주류의 힘이다. 주류가 힘이 있으면 비주류의 도전이 윤활유가 되지만 힘이 없으면 유사 석유가 된다.

강재섭 대표에겐 힘이 없다. 그의 거처는 대선주자 틈바구니다. 관리자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선논의를 유보시킴으로써 활동공간을 최대한 넓히려 해도 경선을 앞둔 기세싸움까지 제어할 수는 없다. 게다가 김무성 의원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했다. 당내에, 대선주자 간에 구구한 추측과 유무형의 견제가 판치는 길을 열어버렸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한나라당의 지도력 문제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열 번 백 번 합의를 끌어낸다 해도 대선주자들이 "외곽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다.

언론과 여론은 힘없는 지도부보다 힘 있는 대선주자에 주목하게 마련이다. 힘없는 지도부가 이리저리 휘둘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하면 할수록, 그래서 정국 대응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당 외곽에 포진한 대선주자들의 발언 폭은 넓어지고 수위는 올라간다.

차라리 대선주자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고 경선논의를 빨리 시작하는 게 한 방책일 수 있으나 이러면 너무 과열된다. 과열이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도부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한나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딜레마다. 유력 대선주자를 다수 보유한 한나라당의 부자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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