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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들의 집단 사표와 원장의 성희롱 의혹으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천안문화원.
ⓒ 윤평호
지난 4일 여직원 등의 고소로 촉발된 권연옥(72) 천안문화원장의 성희롱 의혹을 둘러싸고 당사자들간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단체인 '천안 여성의 전화'는 "성희롱이 확실하다"며 고소인의 검찰조사를 지원하는 등 천안문화원장의 성희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고소인 이모씨 "손 만지고 어깨 치는 것 예사"

권 원장을 성희롱 혐의로 지난 4일 대전지검 천안지청(천안지청)에 고소한 사람은 3명. 모두 여성들로 1명은 천안문화원에서 수년째 요리강습을 한 강아무개씨와 4일 천안문화원에 사표를 제출한 이아무개씨와 양아무개씨도 고소장을 함께 제출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며 지난주부터 이들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 13일 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이씨와 전화인터뷰가 성사됐다. 이씨는 천안문화원에 근무한 지 올해로 22년째.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을 제외하고 직원 중에서 근속 연수가 가장 많다.

답답하다고 첫 마디를 연 이씨는 "(권 원장이) 손목을 만진다거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은 예사였다"며 "아침에 체한 거 같다고 하니까 (원장이) 손을 따주었는데, '내 손이 닿으면 낫는다'며 배에 손을 얹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함께 고소장을 제출한 다른 2명의 피해 경험도 털어놨다. "양씨는 원장실 응접탁자 밑에 놓인 음료수를 원장이 의자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꺼내라고 지시해서 음료수를 꺼낼 때 원장의 다리에 얼굴이 닿을 정도가 되어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 "강씨도 언어뿐만 아니라 신체 성희롱을 당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권 원장의 업무 스타일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내 말이 법'이라는 듯 직원들 의견은 묵살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

문화원장과 갈등의 골이 깊은 이정우 사무국장과 사전 교감을 갖고 사표 제출이나 원장 고소를 결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에 대해선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문화원에 출입하는 사람의 70∼80%가 여성인 상황에서 부도덕한 사람에 의해 더 이상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 고소를 결정했다"며 "덕망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문화원장에 선임돼 하루빨리 문화원이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권연옥 천안문화원장 "검찰 수사에서 다 밝혀질 것"

권연옥 천안문화원장은 15일 전화통화에서 "가타부타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권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질 것이다. (고소인 주장에) 일일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지난 8일 인터뷰에서 이미 성희롱 의혹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권 원장은 "손을 만지거나 어깨를 주물렀으면 그 당시 문제제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내 나이가 몇이고, 32년간 대학교수로 봉직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권 원장은 천안문화원 직원이 아닌 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강씨에 대해 "20여 년째 요리강습을 하며 그릇 팔고 있는 사람으로 먼저 과도한 친근감을 표시해 의도적으로 멀리 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업무스타일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직원들이 안고 있었다"고 못박았다. 이어 권 원장은 "그동안 문화원장은 있으나 마나 한 한 자리였다"며 "바른 소리를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전임 원장은 아무 소리 안 했는데, 왜 뭐라고 하느냐'며 직원들이 반발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권 원장은 "횡령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있어서는 안 될 직원들의 부정을 파악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검찰조사 뒤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소인 2명, 천안노동청에 '성희롱예방교육 미실시' 진정

천안문화원장의 성희롱 논란은 여성단체와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천안노동청)으로 확산하고 있다.

▲ 반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천안문화원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천안문화원 개원 5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비.
ⓒ 윤평호
천안문화원장을 성희롱 혐의로 천안지청에 고소한 3명 중 문화원 직원이었던 2명은 지난 13일 천안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을 첨부한 진정서에서 이들은 "문화원이 성희롱예방교육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천안노동청 관계자는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을 1년에 1회 이상 실시하지 않으면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근로자 10인 미만의 사업장은 홍보물 게시나 배포로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대신할 수 있다"며 "처리기한인 25일 이내에 진정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 여성의 전화'도 문화원 직원이었던 여성 2명의 천안노동청 진정서 제출을 도왔다. 이들을 상담한 노은숙 천안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2명의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법인 관리의 최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성희롱의 당사자라는 점에 분개한다"고 말했다.

노 소장은 다음 주에는 상담일지를 정리해 천안지청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앞으로 이들의 지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문화원 사태, 예술계 불똥 튀나?
지역예술인들 입지 다툼 조짐... 흥타령축제 진행 차질 없어

직원들 집단사표와 문화원장의 성희롱 고소 건으로 표면화된 천안문화원 사태가 지역예술계에도 파문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히 이번 사태에도 천안문화원이 주관단체를 맡고 있는 흥타령축제 진행은 큰 지장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으로 개원 52년 천안문화원이 봉착한 최대 위기를 두고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책임론이 거론되며 술렁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20여 년 넘게 천안문화원에 근무하며 사실상 업무를 총괄, 권력화된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런 입장의 예술인들은 문화원장 구명 서명운동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또 다른 예술인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사상 유례없는 직원들의 집단 사표와 성희롱 고소 건이 발생, 문화원 명예가 실추된 것은 최고책임자인 원장의 탓이 크다"며 자진 사퇴 등 결단을 주문하고 있다.

지역예술인 모두 천안문화원의 빠른 정상화와 원만한 사태해결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입지 다툼의 양상도 잠복해 있다.

예술인단체 모 인사는 "문화원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일부 예술인들이 오히려 이해관계 따라 휩쓸리는 모습도 감지돼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예술계의 한 원로는 "예술인의 갈등을 편 가르기나 입지다툼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해석하고 싶다"며 "결국 모든 예술인들이 품위를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애초 원장과 사무국장의 동반사퇴를 주장하며 '원장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11일 법원에 제기하겠다고 밝힌 문화원 일부 이사들은 가처분 신청 제출을 미루고 지난 16일 모처에서 만나 사태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이에 앞서 천안문화원 이사 14명은 연명해서 원장에게 이사회 개최 요구서를 발송했다.

이에 권연옥 천안문화원장은 검찰에 고소된 사실과 천안시에 감사를 요청한 점을 들어 이사회 개최 요구를 거부했다.

천안문화원장의 감사요구를 접수한 천안시는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며 흥타령축제가 임박한 상황에서 감사가 적절하지 않아 추후 검토하겠다"는 통보를 즉각 회신했다.

천안시 감사담당관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끝난 뒤 감사가 진행돼도 문화원은 별도 법인인 탓에 감사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천안문화원 이사진이나 예술인들과 무관하게 지역사회 일부에서는 천안문화원의 총체적인 혁신을 위해 지역의 단체나 인사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의 모 인사는 "당사자들간 다툼으로는 천안문화원 정상화가 요원하다"며 "지역주민의 문화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천안시 흥타령축제 기획팀 관계자는 "흥타령축제에서 천안문화원의 역할은 절차적 수준"이라며 "축제준비와 진행에 차질은 없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00호에도 게재.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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