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처음으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여 잔치를 한다. 그 잔치 가운데에는 “세종대왕 납시오!”란 이름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던 의식 재현 행사와 어가 행렬이 있다. 이제 우리의 한글날은 이렇게 온 겨레의 잔치로 치르는데 이에 한글의 발전을 위한 지킴이가 된 단체나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한글을 홀대하고 훼방하는 단체나 기업, 사람들은 여전하다.
이에 오랫동안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발표해온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김경희·김수업·김정섭·이대로, 이하 모임)는 10월 4일 이른 11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2006년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발표했다.
모임은 올해의 으뜸지킴이로 대한민국 국회를 뽑았다. 국회(의장 김원기)는 지난해 12월 8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한글역사에 길이 빛날 큰일이고, 잘한 일이기에 2006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아 우리말 독립운동사에 기록하고자 한다고 모임은 말한다.
모임은 지난해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법안 심의를 게을리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와 국회방송의 ‘Talk & Law’란 영어 이름을 훼방꾼으로 뽑아 나무랐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는 그 뜻을 받아들여 국경일 제정 법안을 심의 통과시켜주었고, 방송 이름도 바로 ‘신률의 법률 이야기’로 바꾸었다며,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국회임을 보여주었다는 설명이다.
또 지킴이로 뽑힌 가운데에는 두산주류의 술 이름 ‘처음처럼’이 눈에 띈다.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상품 이름이 영문으로 바꾸고 있지만 두산주류는 소주 이름을 ‘처음처럼’이란 우리말로 지어 본보기가 되고 있음을 칭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름과 함께 상표 글씨도 아름다워 지킴이로 뽑았다고 한다.
그밖에 어떤 학술모임보다 앞장서서 전문 용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노력을 해온 ‘한국물리학회’, ‘차례’ 대신 ‘벼리’, ‘전화번호’는 ‘소리통’, ‘홈페이지’는 ‘누리방’, ‘인쇄소’는 ‘박음터’라고 쓰며, ‘글틀지기, 글모음지기, 글매김꾼, 꼴꼴지기’라는 우리말을 앞장서서 쓰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의원들 이름패를 모두 한글로 바꾼 서울 동대문구 의회도 우리말 지킴이들.
이들에 더하여 ‘우리은행’, 아파트 이름 ‘사랑으로’(부영), 주택공사의 국어검정시험,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식물학자 이유미 등도 뽑혔다.
모임은 으뜸 훼방꾼으로 교육부를 뽑았다. 교육부는 올해 초 발표한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에서 2008년부터 제주도 국제자유도시와 인천, 부산 경제특구 등의 초, 중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같은 교육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몰입교육‘을 시범으로 한다고 했다.
또 2008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어 조기교육을 확대할 생각으로 올해부터 시범학교 50곳을 뽑아 시행하겠다고 했으며, 앞으로 10년 동안 903억 원을 쏟아 넣는 ‘영어교육 혁신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온 국민이 우리말글 대신 영어열병을 앓도록 이끈 공로라고 모임은 설명했다.
훼방꾼으로 뽑힌 것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방송의 ‘가족愛발견’, ‘개그夜’, 한국방송의 ‘클릭! 세상事’, ‘러브人아시아’, ‘이슈NOW’ ‘파워우먼女’란 이름의 프로그램이다. 언어순화에 앞장서야할 방송사가 한자나 영어를 이상하게 조합하여 대중의 말글을 병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밖에 빚더미에 앉아있으면서도 수백억 원씩 들여서 영어마을을 만든 지방자치단체, 회사 이름은 'KTF', 광고문은 ‘Have a good time’이라는 영어를 쓴 ‘KTF', 회사 이름을 ‘서울지하철공사’ 대신 ‘서울메트로‘로 바꾸고 비상전화에 "SOS INFORMATION"을 쓴 ’서울메트로‘, 우리말글 대신 영어와 한자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자능력검정시험과 영어능력검정시험 등이 훼방꾼으로 뽑혔다.
또 문서나 펼침막을 한자로 쓰는 학술원, 국민 혈세를 허비하는 ‘영어마을’, 영어 공용어 추진하는 사람들, 영어 강의 추진하는 대학들도 더불어 뽑혔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이 모임의 김수업(우리말대학원 원장) 대표는 우리말 지킴이, 훼방꾼을 뽑는 의미가 담긴 인사말을 했다.
“당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인 통일신라는 한문을 읽지 못하거나, 중국 문화를 알지 못하면 등용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고려시대엔 더 확대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굳어버렸다. 지금도 우리말을 한자말이나 서양말에 시중을 드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우리말은 1300여 년 동안 짓밟히고 억눌렸다.
우리가 오늘도 지킴이, 훼방꾼을 뽑는 까닭은 이렇게 우리말이 짓밟히는 잘못됨을 바로잡고, 우리말을 살리는데 모두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모임 김경희(지식산업사 대표) 공동대표는 마무리 인사에서 “세계화란 이름으로 우리말글을 죽이는 세력이 날로 커진다. 또 정부는 영어를 못하면 마치 세상을 못살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가장 우수한 말을 글자로 만들었고 우리말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우리말글은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참말로, 대자보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