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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블루마운틴. 이 곳에서 5번째 우프 호스트 가족을 만났다.
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블루마운틴. 이 곳에서 5번째 우프 호스트 가족을 만났다. ⓒ 김하영
호주 시드니에서 기차로 2시간 걸리는 곳에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산이 있는데 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웅대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전부터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인데, 마침 그곳에도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 호스트들이 꽤 살고 있어서 나와 언니는 이곳에서 다섯 번째 우프 호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재혼 7년차 부부, 존과 베키

존(가명·55세)과 베키(가명·38세)는 결혼 7년차 재혼부부이다. 존은 전부인과의 사이에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모두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하여 같이 살지 않았다. 베키는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마틴(가명·19세)과 어넷(가명·14세)이 있는데, 모두 그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존과 베키 사이에는 케빈(가명)이라고 하는 6살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총 석 달 동안 지내며 십대 자녀를 둔 호주 재혼 가정의 일상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국의 그것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어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보통 우퍼(Wwoofer: 우프를 하는 사람)들은 호스트 집의 빈방에서 지내게 마련인데 이 집에는 방이 4개 있었다. 하나는 부부 방이었고 나머지 세 개는 각 자녀들의 방이었다. 그런데 베키의 자녀인 마틴과 어넷은 집에 없었다.

베키가 설명하기를 자신의 전남편이 여기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데 딸이 이번 주는 거기서 지내고 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오니 그때까지는 딸 방을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또 아들은 여자친구가 있어서 여자친구 집에서 한 주, 엄마 집에서 한 주, 아빠 집에서 한 주를 돌아가며 지내는데, 지금은 여자친구네 집에서 지내고 있고 다다음 주에는 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방도 써도 되는데, 아들이 돌아오면 우리가 머무를 방이 없으니 떠나야 한다고 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전남편이 그렇게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딸이 엄마 집에서 한 주, 아빠 집에서 한 주, 이렇게 산다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특히나 아들인 마틴은 여자친구 부모네 집에서 살고 있다니! 아니 그럼, 그 집 부모는 자기 딸의 남자친구와 한 집에 사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인가.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20년 넘게 밥 먹고 TV 보고 학교 다닌 나로서는 잘 이해 안 되는 풍경이었다.

이 전 우프 호스트였던 레즈비언 커플에게서 받은 컬쳐 쇼크(Culture Shock; 문화충격)가 가시기도 전에 재혼가정에서 새로운 컬쳐 쇼크를 받게 된 것이다.

앗! 전남편이 여긴 웬 일?

문화적 충격은 곧 현실화됐다. 며칠 뒤 월요일이 되자 정말로 베키의 딸인 어넷이 엄마 집으로 돌아왔다. 매주 월요일 방과 후에는 엄마 집에서 아빠 집으로, 혹은 아빠 집에서 엄마 집으로 옮기는 거다. 당연히 사람따라 짐도 옮겨야 하므로 어넷 뒤에는 베키의 전남편인 팀(가명·47세)이 딸의 짐 가방과 첼로 가방(어넷은 첼로를 배운다)을 들고 같이 들어왔다.

그렇다. 전남편이 전부인 집에 들어와서 딸의 방까지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와 나는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멍하게 쳐다봤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 아닌가!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고 왠지 그와는 친하게 지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왜냐면 나는 베키와 친한데 팀은 베키의 전남편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베키는 당연히 전남편인 팀과 사이가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팀에게 인사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는 우리가 한국사람인 것도 한 번에 맞추는 등 먼저 말을 걸어와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호주 이혼 가정 자녀의 일상(?)

그리고 어넷과 팀은 엄마 집에서 지내는 기간이 아니어도 가끔은 필요한 자기 물건을 가지러 오거나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에이드리안은 누나와 형에게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매일 같이 놀아 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어넷과 팀은 엄마 집에서 지내는 기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종종 오거나 같이 식사를 하고 가곤 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한 마틴은 좀 더 자유롭기 때문에 아빠 집에서 자고 낮에는 엄마 집의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끝나면 여자친구 집으로 가는 식의 생활을 했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는 어느 한군데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생활인 것 같았지만, 역시나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지 그네들은 자연스러웠다.

이런 모습들을 계속 보다 보니 조금은 적응되기도 했는데, 한번은 밤 11시에 팀이 딸을 바래다주었다. 팀은 아들 마틴에 대해 베키와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집 거실에 앉아 애완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 이야기하고 간 모습 또한 충격적이었다. 베키의 현재 남편인 존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머지않아 베키와 함께 내가 받은 '컬쳐 쇼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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