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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나 예전이나 한국 TV 드라마 속에 비춰지는 이혼 가정은 부부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해체를 보여준다.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양육을 담당하게 되면 양육을 담당하는 쪽은 대게 자식들에게 다른 쪽 부모를 비난하며 만나지 못하게 강요한다. 설사 기회가 되어 만나더라도 어쩌다 몇 시간 혹은 하루이다. 실제로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이 후로, 다시는 엄마 혹은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사람찾기 TV프로그램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호주에서 우프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십대 자녀가 있는 재혼 가정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한국사회와는 많이 다른 호주사회의 재혼 가정의 모습을 보고 위와 같은 문제의 대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주
베키의 집에서 아주 행복하게 2주를 보낸 언니와 나는 그 집에서 더 머물고 싶다고 베키에게 말했지만 아들이 집에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해서 다음 거처를 찾아야했다. 베키는 원래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우리에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언니와 나는 우프 일 외에도 이런저런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에이드리안과도 잘 놀아주었기 때문에 베키는 우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다음날, 베키가 하는 말이, 전 남편인 팀한테 혹시 우리를 1주일만 데리고 있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좋다고 했다고 한다. 딸이 이번 주는 자기하고 있을 차례라 팀은 빈방이 생기는 셈이니 우리가 머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 후에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오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 집에도 우퍼가 필요한 일이 많다고 했다.
그것이 독특한(?) 제안이라고 느낀 것은 흔쾌히 '땡큐'라고 답한 뒤였다. 제안을 한 베키 뿐 아니라, 그녀의 현재 남편인 존도 마치 우리에게 그들의 참한 이웃을 소개시켜 주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리라. 전 남편이라는 단어가 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베키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팀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베키와 존은 팀이 좋은 사람이라고 대단한 과학자라고 했다. 아주 많이 우유부단하고 경제력이 낮다는 게 단점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전 남편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다니, 놀라웠다.
그 참에 나는 그동안 내가 베키의 집에서 받은 컬쳐 쇼크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한국의 이혼한 부부들은 서로를 극도로 싫어해서 서로 다시는 보기 싫어하고 심지어는 자식들에게도 상대편 흉을 보면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보통 부모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거나 선택당해서 같이 사는 데, 같이 살지 않는 나머지 한 쪽 부모와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와는 다르게, 베키의 가정은 이런 한국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라 우리가 무척이나 놀랐다고 말해주었다.
특히나 전 남편인 팀이 이렇게 가까운 동네에 산다는 것과 베키의 집도 방문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베키가 하는 말이 호주나 유럽도 불과 2,30년 전에는 한국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고 자신과 팀은 이혼은 했지만, 사이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서로 친분을 유지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혼 할 때, 서로의 험담은 아이들에게 절대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지금은 팀과 친구로 지낸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홀로 지내는 전 남편 초대하기도
또, 자신이 가족과 여행을 갈 때면 자신의 개를 팀에게 며칠 맡기기도 한다고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막 파트너와 헤어져 홀로 된 팀을 낮에 와인파티에 초대했단다.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에 전 남편을 초대해 식혜와 송편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한국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직접 이런 비슷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하루는 베키 생일이었는데 팀이 딸과 들러서 생일 카드를 주었고 베키는 팀에게 생일 케이크를 한 조각 주더라. 우리의 눈에는 도저히 전 남편과 전 부인의 사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평화적인(?) 모습이었다. 그저 마냥 친한 이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모든 이혼부부가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예가 존과 존의 전 부인인데, 물론 그들 사이에도 자녀가 있으니 왕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존이나 베키와는 별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존의 전 부인도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가 있으면 존에게 개를 맡기곤 했는데, 베키와 존의 집에 와도 그냥 개만 맡기고 갔다고 한다.
팀이 전부인인 베키 뿐만 아니라 존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에이드리안과도 잘 지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존의 전 부인이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는 존과 베키의 집 정원에 묻어주기를 원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나는 또, 아이들이 매주 집을 옮기는 것은 그들에게 좀 혼란스럽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는데, 베키는 아이들이 내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빠 집으로 갈 수 있고 또 반대로 아빠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집으로 올 수 있다며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더욱이 이렇게 매주 양쪽 집을 오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했다. 부모가 매일 싸우기만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고 또, 아이들이 양쪽 부모와 매주 돌아가며 살 수 있는 것이 공평하지 않느냐고 했다.
사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문제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실천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베키의 말대로 이런 모습이 가장 합리적인 것만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아이들은 그만큼 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모습을 단순히 '쿨한 호주인들'이라고 말하고 지나치기에는 참 아까운 것 같다. 갈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부족해서 결혼 대비 이혼율이 세계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는 한국사회에 이런 호주 이혼 가정의 모습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과 동시에 엄마, 아빠 어느 한쪽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많은 친척들과도 인연을 끊게 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불가피하게 이혼을 해야 한다면 그에 앞서 앞으로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게 '호주 이혼 가정 자녀 체험'
베키는 말한 대로 월요일에 우리를 팀의 집에 데려다 주고 어넷을 데려갔다. 역시나 그 집에도 마틴과 어넷의 방이 있었다. 두 개의 방, 두 개의 침대, 두 대의 컴퓨터, 두 개의 옷장. 모든 걸 두 개씩 가지고 있는 어넷과 마틴. 그들의 공간은 양쪽 집 모두에 공평하게 있었다. 그들은 엄마 집에서 지내면서도 아빠 집으로 뭘 가지러 오거나 점심을 먹고 갔다. 언니와 나도 베이비시터가 되어 에이드리안을 보살피는 일을 하기 위해 베키의 집에 다녀가곤 했다.
팀은 베키 만큼이나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팀의 집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다시 베키에게 돌아갔다가 다시 팀에게 돌아가 1주를 더 살았다. 이쯤 되니 마치 그들의 자녀가 된 기분이었다. 가히 '호주 이혼 가정 자녀 체험'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한 주는 베키가 해주는 맛있는 것을 먹고 다른 한 주는 팀이 해주는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다소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 베키 집에는 교육상 TV가 없는데 팀의 집에서는 밤늦게까지 TV를 봤다. 베키 집에서는 아침과 점심은 각자 만들어 각자 먹는데, 팀의 집에서는 식탁에 앉아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많이 하며 먹었다. 그래서 베키의 집에 있을 때 팀의 집이 그리웠고 팀의 집에 있을 때 베키의 집이 그리웠다.
가끔 베키와 팀이 상대방의 흉을 나에게 볼 때가 있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금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지만, 서로의 단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나는 그런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마치 내 부모가 서로의 흉을 자식인 나한테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실, 다 맞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주에는 서로 자신의 집에 있어도 되다고 했는데, 나는 양쪽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마침 팀의 집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일이 쉬워졌다. 그들과 헤어지고 두 달을 다른 곳에서 우프를 하다가 다시 돌아갔는데 역시나 빈방을 쫓아 양쪽 집을 다시 오갔다. 이것 참 한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경험 아닌가.
그들과는 정이 많이 들어 지금도 이메일을 주고받는 데, 왠지 나의 애정을 똑같이 분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이메일 쓰는 횟수를 똑같이 맞추고 있다. 어넷과 마틴도 나와 같은 고민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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