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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놀이와 함께 줄불과 달걀불이 강 위로 흐른다.
뱃놀이와 함께 줄불과 달걀불이 강 위로 흐른다. ⓒ 이철원

사진 찍는 게 전투나 다름없다. 캄캄한 밤중, 피사체는 분간이 안 되고 행사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위치가 불꽃을 포섭하기에 가장 좋은지를 찾아서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촬영통제선에 가까스로 붙어 진군나팔처럼 크고 둥글게 생긴 렌즈의 수많은 셔터들 사이에서 똑딱이 수준의 디지털카메라에 삼각대를 펼치기가 남세스럽기까지 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펼쳐진 선유줄불놀이. 불이 줄을 타고 강을 건넌다. 강물에는 시를 즐기는 선비들의 배가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산꼭대기에서는 불덩이가 춤을 추며 암벽으로 떨어진다. 구경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밤 풍경이지만 아름다움을 렌즈 안에 담아내야 하는 나로서는 비장한 마음의 병사가 된다.

줄불에서 날리는 재가 옷이며 얼굴까지 굴뚝청소부로 만들어놓고, 매캐한 연기가 눈이며 코에 화생방훈련을 방불케 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풍경을 그물 치듯이 렌즈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만송정 솔밭언덕을 오르내리다 미끄러지기도 하고, 강물에 물고기 뛰듯 이리 저리 뛰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보다. 맞다. 아마추어가 아니면, 초보가 아니면 축제의 광경을 제대로 찍어댈 수 없는 게 바로 불놀이인지도 모르겠다.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기도 하는데 폭발의 위험성은 없다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기도 하는데 폭발의 위험성은 없다 ⓒ 이철원

8일 막을 내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 중 진행된 '선유줄불놀이'는 보름보다 달이 더 크고 둥글다는 음력 16일인 지난 7일 밤 안동 하회(河回)마을을 ㄹ자형으로 감싸며 흐르는 낙동강 상류 화천(花川)가에서 펼쳐졌다. 화천이란 이름도 마치 불꽃놀이을 위해 붙여진 이름 같다.

줄불이란 수백 개의 불꽃주머니에 하나씩 불을 붙여 만송정에서 강을 가로질러 부용대까지 송전선처럼 설치된 줄을 통해 보내어지는 것으로, 숯가루가 타면서 바람과 함께 불꽃을 내며 강 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이 장관이다. 불꽃주머니는 뽕나무뿌리와 소나무껍질을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에 담아서 매듭을 묶어 만든다.

줄불이 어느 정도 타오르면 선상시회가 시작된다.
줄불이 어느 정도 타오르면 선상시회가 시작된다. ⓒ 이철원

줄불이 어느 정도 강을 건너면 선상 시회가 시작된다. 경사가 느린 강물을 유유히 흐르는 배 위에는 선비, 양반, 관료와 기녀들이 타고 선비가 즉흥시를 읊으면 기녀는 시창이나 가야금을 타게 하였다. 이 때 수백 개의 달걀 불이 강물에 함께 띄워진다.

줄불이 부용대에 다다를 때쯤 낙화놀이가 이어된다. 배에 탄 선비에게 시를 한 수 청하는 의미에서 ‘낙화야’를 외치면 부용대 절벽 위에서 솔가지를 엮어 만든 거대한 불덩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예전에야 배에 탄 선비들이‘낙화야'를 외쳤겠지만 지금은 줄불놀이를 즐기러 모인 사람들이‘낙화야’를 외치는데 "이번에는 남자들만, 이번에는 아녀자들만, 이번에는 처녀총각들만" 하면서 사회자의 안내 멘트에 따라‘낙화야’를 외친다.

불이 부용대에 다다를 때쯤 낙화놀이가 시작된다.
불이 부용대에 다다를 때쯤 낙화놀이가 시작된다. ⓒ 이철원

결국 선유줄불놀이는 줄불놀이, 뱃놀이, 달걀불놀이, 낙화놀이의 4가지의 개별놀이가 조화를 이루는 것인데 줄불놀이, 달걀불놀이, 낙화놀이의 세 가지 놀이가 선상 시회를 위한 보조놀이로서 펼쳐지는 셈이다.

줄불을 압도하는 듯한 폭죽의 규모와 소리는 오히려 줄불놀이의 잔잔함과 대조된다.
줄불을 압도하는 듯한 폭죽의 규모와 소리는 오히려 줄불놀이의 잔잔함과 대조된다. ⓒ 이철원
“잠시 후 폭죽불꽃이 올라갑니다”하는 안내 멘트와 함께 또 다시 언덕으로 뛰어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사진기술이 없는 나로서는 폭죽불꽃은 제대로 찍기가 참으로 어렵다.

폭죽은 줄불놀이 순서와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요즘 불꽃놀이가 축제의 감초처럼 끝을 장식하다 보니 여기서도 등장한다. 줄불놀이가 끝나면 배 위에서 풍류를 즐기던 사람들은 강가로 나와 넓은 백사장에서 구경꾼들과 어울려 한 판 신명을 돋운다.

소리 없는 폭죽은 없을까? 가슴에 남아 있던 줄불놀이의 잔잔한 여운이며 우리 고유의 흥과 가락이 폭죽소리로 깨어진 듯한 느낌이다. 축제분위기 때문에 폭죽이 필요하다면 줄불놀이에 어울리는 방식의 불꽃놀이가 개발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울러, 구경꾼들도 참가하는 의미에서 이왕 띄우는 달걀 불에 개인의 소망 종이 같은 것을 넣어서 띄우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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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부일보 기자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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