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참 재미있네. 이렇게 재미있는 영어를 진즉에 공부해보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네 엄마도 한문공부를 시작했는데, 엄마아빠가 이 나이에 영어, 한문 공부를 해서 어디에 써먹자고 공부하겠니?
하지만 배워서 꼭 써먹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는 그 자체가 좋지 않니?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살아있는 동안은 늘 공부하는 것을 명심하여라."
7년 전인 1999년 1월 9일. 눈이 유독 많이 내리던 그날 친정에 전화하자 아버지의 목소리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께서 칠순이 되던 해였다.
영어공부를 시작한지 보름쯤, 아버지는 그동안 배운 단어들을 알려주면서 영어공부 자랑에 끝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문공부를 하신다는 친정엄마. 영어·한문 공책도 사서 쓰기도 열심히 한다고 하셨다.
가까이 살면 공부하기 쉽게 알려드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두 분이서 나란히 공부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내 지독한 책 사랑, 아버지께 배웠다
올해 76(1931년생)세인 친정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이다. 6·25 전쟁 전, 공산당에 맞서 싸우기로 명성 높았던 백호대(백두산호랑이) 게릴라였다. 1950년 11월, 아버지는 당시 북한에서 공산당에 맞섰던 사람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역사에도 기록된 그 첫배에 몸을 싣고 월남했다.
그후, 특공대였던 아버지는 7년간의 군 생활 끝에 제대했지만, 혈혈단신의 몸으로 가진 기반이 없다보니 고생이 무척 심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농사철이 아닌 겨울에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한 달 넘도록 머물면서 막노동을 하시곤 했다. 봇짐을 메고 '나이롱 양말'이나 숯장사 등을 하면서 며칠만에 한번 씩 집에 오실 때도 많았다.
난 아버지가 돌아오실 날을 언제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먹을 것도 많이 사오셨지만, 그와 함께 항상 새로운 책들을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져 온 책들은 주로 동·식물 도감이나 지도책, 역사책도 있었고 관광지 홍보 책자도 있었다. '읽을 것'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아버지는 관광을 가면 가장 두꺼운 관광책자를 사와 닳도록 읽으셨다
열 살 남짓 때의 기억이다. 아버지가 가져온 책 중에 제주도에 관한 것이 있었다. 물허벅이나 해녀, 한라산 중턱에 뛰노는 말, 돌하루방과 낮은 돌담 너머 넘실대는 파도 등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안보고도 설명들을 술술 말할 수 있을 만큼 읽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풍경들은 꿈속에 나타나곤 했다(아버지는 아직도 그 책을 갖고 계신다).
또 동·식물 도감 같은 책을 통해서는 날마다 수많은 생물들의 신기함에 빠져들었다. 뒷간에 가도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이끼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 해마는 성전환을 한다는 것 등 책에서 만나는 생물들의 세계는 정말 신기했다. 그래서 책장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읽었다.
이 책들은 대부분 너무 읽어서 나중에는 책장이 모두 솜처럼 포슬포슬해졌다. 책이 귀한 시골에서 자랐지만, 난 이렇게 아버지가 품팔이를 한 후 낯선 도시에서 가져온 책들을 통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무언가 알아가는 재미를 맛봤다. 이미 책과의 지독한 사랑을 시작했던 것이다.
칠순 아버지의 책사랑은 아직도...
지난 여름휴가 때, 친정집에 가져간 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자다가 깨어 읽던 책을 찾았지만 책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일어나셨는지 낮잠중이시던 아버지께서 내가 읽고 있던 책을 가져가 진지하게 읽고 계셨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늘 보고 자랐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땀과 흙투성이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최종학력은 소학교 졸업. 욕심만큼 공부를 하지 못했음이 아쉽다는 이야길 자주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틈만 나면 신문이나 책을 읽으셨다. 한여름에는 농사일을 하고 들어와 점심 후 잠깐 자는 낮잠까지 쪼개어 신문이나 책을 읽곤 하셨다. 이른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신문과 책읽기는 내가 어렸던 30년 전이나 연세가 76세인 올 여름이나 이렇게 변함이 없다. 친정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아버지 모습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자라면서 틈날 때마다 신문과 책을 읽고 계신 아버지 모습을 날마다 보고 자랐다. 이런 우리 7남매가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책을 사이에 두고 치르는 아버지와의 행복한 '전쟁'
"아버지, 이 책 모두 읽고 저 좀 빌려주세요. 읽고 반드시 돌려 드릴께요!"
"빌려간 책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는데 멍청하게 누가 빌려간 책을 돌려준다던? 때문에 아버지도 아버지 책은 절대 빌려줄 수 없다. 그러니 네 돈 주고 사 보거라. 그리고 책이란 것은 제 돈 들여 사서 제 것으로 만들어 읽어야 가치가 더 큰 것 아니겠니?"
"아버지도 참, 틀림없이 돌려 드린다고요. 정말 꼭 돌려 드릴 테니 저를 믿고 빌려주세요. 아버지한테 있어서 빌려보면 되는데 돈 주고 사보는 건 아깝잖아요. 그 대신 그 돈으로 다른 책 사드릴께요. 네?"
92년 당시 인기가 꽤 있던 <풍수>라는 두 권 짜리 책을 두고 아버지와 난 입씨름을 벌였다. 출산 때문에 친정에 간 내가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이라며 먼저 자랑을 했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세 번을 읽었지만 다시 읽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마침 관심을 두던 책이라 빌려보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로 빌려 줄 수 없다고 하셨다. 도리어 두 권을 합하면 2만 원쯤이니 맛있는 것 한번 안 사먹으면 사볼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읽은 후 잘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주라고까지 하시는 거였다.
그렇지만 훗날 내 집에 오신 아버지는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으시고 제일 먼저 내 책장 앞에 섰다. 그리고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을 비롯한 역사분야 책 5권을 쏙쏙 뽑아 들었다. 그러시고선 하시는 말씀.
"이 책은 아버지가 가지고 가서 볼 테니까 너는 돈 주고 또 사보아라. 아버지는 고기반찬 보다 이 책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아버지가 골라낸 책 중에는 며칠 내로 읽으려고 마음 먹었던 따끈따끈한 신간도 세권이나 끼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 책을 뺏기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칠순 가까운 아버지의 책 욕심은 내 가슴까지 설레게 했다. 아버지는 동생들 집에 가서도 탐내는 것은 책뿐이어서 동생들도 아버지께 여러 권을 즐겁게 빼앗겨 드렸다. 자식 집에 오셔서 그 무엇보다 책을 욕심 내셨던 아버지. 눈물 나도록 기분 좋고 고마웠다.
'내 책은 절대 빌려줄 수 없다. 그렇지만 네 책은 내가 필요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가져가야겠다.'
이 정도면 책 욕심 많은 나의 가장 큰 '적'은 친정 아버지가 아니고 그 누구랴!
새로 아버지께 보내드릴 책을 간추려 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