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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3월 16일 경기도 문산 변전소에서 북측에 위치한 개성공단에 송전을 시작했다. 이날 저녁 경기도 파주 최전방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전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아래). 위 사진은 이전의 개성공단 야경.
지난 2004년 3월 16일 경기도 문산 변전소에서 북측에 위치한 개성공단에 송전을 시작했다. 이날 저녁 경기도 파주 최전방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전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아래). 위 사진은 이전의 개성공단 야경. ⓒ 연합뉴스 황광모

돌부리가 삐져나왔다. 한미FTA다.

정부는 금강산관광사업과 함께 개성공단사업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사업 지속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들렀다가 '춤 파문'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위태위태하다. 유엔 안보리 산하 제재위원회가 구성됐다. 곧 거래금지 자금과 물자 품목이 결정될 것이다. 곳곳에 돌부리가 삐져나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돌부리는 한미FTA다.

<한겨레>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전망했다. "북핵 위기로 우리쪽 입지가 더욱 좁아져 개성공단 문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전한 소식은 더 세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게 미국쪽 반응이라고 전했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9월 국제국장 등 2명을 워싱턴에 보내 각계 인사를 만나게 한 뒤 작성한 보고서에 그렇게 기재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노동조합연맹 입법국 정책책임자인 테아 리는 "개성공단 문제가 협상 의제로 포함된다면 노동권과 인권에 관심있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과 기독교 우파, 보수진영, 공화당 사이에 이에 반대하는 '이상한' 동맹이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개성공단 앞에 놓인 돌부리, 한미FTA

개성공단 착공식.
개성공단 착공식. ⓒ 연합뉴스
가를 게 하나 있다. 한미FTA에서 논의되는 개성공단 문제는 한국산 인정문제다. 즉 북한 핵실험 후에 제기된 사업 중단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통상문제이고 후자는 정치문제다. 따라서 별도 차원에서 푸는 게 순리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9월의 한미정상회담 전에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 있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협상 틀 밖에서 한미 양국의 최고위층이 결단을 내릴 문제라고 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러던 차에 북한 핵실험이 강행됐다. 미국은 양대 경협사업에 딴죽을 걸고 있다. 미국 최고위층의 속내가 어떨지 굳이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미국 입장에서 한미FTA는 더할 나위 없는 자리다. 외교 채널을 통해 정치적으로 한국을 윽박지르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한미FTA를 통하면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경제논리로 통상 문제를 풀겠다는 데에야 한국이 달리 할 말이 없다.

한국 입장은 곤혹스럽다. 테아 리의 말이 진실이라고 가정하면 그렇다. 북한 핵실험 이후 조성된 한반도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미국 내 정치지형의 변화가 절실하다. 민주당이 공화당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그런데 테아 리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를 강변하면 민주당이 미국 내 범보수우파와 동맹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 문제는 설득한다고 해도

지난 2004년 12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북 개성공단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리빙아트 냄비를 구매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북 개성공단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리빙아트 냄비를 구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이 지점에서 점검할 문제 두 가지가 나타난다.

테아 리의 전망은 옳은가? 테아 리가 내놓은 전망엔 전제가 깔려있다. 개성공단 문제가 불거지면 노동권과 인권 문제가 함께 불거진다는 전제다. 이 논리는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가 끊임없이 제기한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문제에 민주당도 동의한다는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나 통일부는 레프코위츠 특사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반박해 왔다. 북한 노동자가 저임금에 시달린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다른 사회주의권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과 비교해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의 개성공단 방문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실상을 직접 보고 얘기하라는 취지였다.

뭘 몰라서 하는 주장이니까 직접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치자.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는 오늘자에서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절반 이상이 노동당에 들어간다는 보도를 내놨다. 월 임금 57.5달러 중 노동당으로 30달러가 들어간다는 산업자원부의 문서를 근거로 한 것이다.

"통일부도 잘 모르는데 산업자원부가 어떻게 알겠느냐"는 통일부의 답변이 있지만, 이런 답변이 미국을 얼마나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대북 제재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라는 것이지 제재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임금 지급 방식을 바꾸는 방법이다. 양대 경협사업의 지속을 전제로 강구되는 '조정' 방안의 하나다.

이렇게 문제를 푼다고 치자. 개성공단사업과 북한 노동자의 기본권 문제에 대해 미국 민주당의 이해를 구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풀릴까?

부시 행정부도 할 말이 있다. 개성공단사업 지속 여부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는 "미국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면 된다. 이건 대북강경책과는 성격이 다른 통상문제라며 민주당을 공격할 수도 있다.

라이스에 이어 웬디 커틀러, 다음엔 유엔 안보리

한미FTA 4차 협상 개시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제주공항에 원정투쟁단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한미FTA 4차 협상 개시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제주공항에 원정투쟁단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가정하자. 미국이 개성공단사업의 지속을 용인하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를 거부할 경우 어떤 현상이 초래될까?

개성공단은 경공업지구다. 노동집약형 산업체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저임금과 함께 관세 장벽이 철폐되거나 축소돼야 한다.

미국은 바로 이 두 문제를 모두 걸고 있다. 임금문제야 미국을 어떻게 설득해본다 치더라도 관세문제는 한미FTA에서 타결을 보지 못하면 풀 방법이 없다.

이러면 세계 최대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판로가 모두 막히는 건 아니다. 다른 시장도 있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결과가 다른 시장에 전범으로 작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FTA협상을 벌이지도 않은 일본이나 중국, 유럽연합 등에 한미FTA 결과가 준용된다면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시장은 극도로 위축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사업은 현재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한미FTA에서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문제가 일축된다면 본사업은 시동을 걸지도 못한 채 힘을 잃어버릴 수 있다.

개성공단사업은 삼각파도 앞에 놓여있다. 라이스 미 국무 장관에 이어 웬디 커틀러 한미FTA협상 미국 수석대표가 왔다. 그 다음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위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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