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다. 요지는 '왜 나서느냐'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북한 핵실험 이후 계속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행이 "국내 정치엔 개입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대놓고 "지금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라고 했다. 국가 위기에 나라의 중심에 서야 할 국가 원로인 그가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한다는 이유다.
두 신문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근거를 새삼 되짚을 이유는 없다. 북한 핵실험 직후 대북포용정책 폐기를 주문했던 신문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과 비교해 시시비비를 가려봤자 접점을 찾기는 힘들다.
짚을 건 이유다. 왜 이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린 걸까? <조선일보>가 정리한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9일부터 23일 사이에 4번의 강연, 4번의 인터뷰를 했다. 보름 가까운 이 기간 동안 몇 번의 변곡점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행을 정면에서 문제삼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나서는 걸까?
김대중 발걸음에 주판알 튕기는 정치인들
두 신문의 비판을 되짚자.
<세계일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론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함으로써 사실상 정치권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고 그 결과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세력들은 그의 행보를 주요한 변수 중 하나로 상정하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도 김대중 전 대통령 "목소리 쪽으로 일부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고 했다.
두 신문이 중하게 여기는 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인해 형성되는 정치 지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김 전 대통령으로 인해 조성될 지도 모를 대선 지형이다.
"주판알을 튕기는" 사례는 여럿 있다.
"북한은 민족적 차원에서 다룰 상대가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며칠 만에 "햇볕정책은 통일 때까지 민주당의 정책"이라고 '후진'한 사례가 있다.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한 두름으로 엮을 것인지를 놓고 '곡예운전'을 한 사례도 있다.
한화갑 대표의 '후진'과 한나라당의 '곡예운전'엔 공통점이 있다. 전진을 못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차단막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입장에선 호재다. 차단막을 보호막으로 삼을 수 있다. 보수세력과는 확실히 다른, 어쩌면 유일한 차이일지도 모를 대북포용정책을 대선 이슈로 삼을 수 있다.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하라고 훈수를 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장기판 앞에 앉은 상황 아닌가.
노 대통령이 PSI 참여확대 선택한다면
하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다른 변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고 중이다. 양대 경협사업에 대해선 일단 가닥을 잡은 듯 보이지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긴 침묵의 소절 사이로 참여 확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는 추측보도가 삐져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PSI 참여 확대로 맘을 굳힌다면 상황은 의외로 간단해질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여당의 비극의 씨앗은 분당이라고 말한 후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이 잇따라 고개를 끄덕거렸고, 반면에 친노그룹은 거세게 반발했다.
분당 반성세력과 분당 옹호세력 간의 절충이 어렵게 된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PSI 참여 확대를 결정한다면 이는 결별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그에 반비례해서 이른바 분당 반성세력의 정체성은 강화될 것이고, 통합 과정은 자연성을 띨 수 있다.
직선대로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게 꽃길이 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공학과 철학, 계산과 소신의 충돌
한반도 위기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상황 요인에 따라 국내 정치세력이 입장을 재조정할 수 있다.
한화갑 대표는 햇볕정책을 통일이 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했지만 말미에 '국제공조'를 거듭 강조했다. 후진은 했지만 유턴을 한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심 여하에 따라 친노세력이 이탈할 여지도 있다. 양대 경협사업과 PSI의 거래 불가피성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핵심 문제는 최대공약수가 산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소'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공학과 철학, 계산과 소신이 충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