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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집을 비운다고, 아내가 냉장고에 많은 반찬을 준비해뒀다.
며칠 집을 비운다고, 아내가 냉장고에 많은 반찬을 준비해뒀다. ⓒ 임석교
"슬아, 이건 니가 좋아하는 김이고, 이건 아침에 필요하면 먹어." 온갖 반찬과 깍두기, 김치, 깻잎반찬, 카레 등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내일(26일)부터 슬이가 엄마노릇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 녀석에게 냉장고 반찬 내역을 설명해주고 다시 확인한다.
둘째 녀석에게 냉장고 반찬 내역을 설명해주고 다시 확인한다. ⓒ 임석교
오늘(25일) 아내와 큰 딸은 서울에 갔다. 서울에 있는 특수 중학교에 시험을 치러 간 것이다. 처음으로 두 여자가 여행을 갔다. 아니, 이렇게 두 여자가 없는 집에 막내 놈이랑 둘이 있는 건 처음이다. 물론 두 여자의 여행도 걱정이다. 어디서 잠을 잘지, 무엇을 먹을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맴돈다.

물론 천성이 여린 막내랑 이틀을 산다는 것도 걱정이다. 평소 즐기던 게임을 하면 될지, 아니면 필요한 걸 모두 사주면 될지, 아침에 깨워서 어떻게 학교에 보낼지 등 온갖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둘째 녀석이 좋아하는 것들. 며칠은 인스턴트 식품도 허락해준다.
둘째 녀석이 좋아하는 것들. 며칠은 인스턴트 식품도 허락해준다. ⓒ 임석교
물론 아내도 걱정이 태산이다. 국을 한 냄비 끓어두고, 온갖 반찬을 준비했다. 평소 모습이 아니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과연 둘이서 이틀을 견딜 수 있을까.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국 한 냄비. 아마 나 혼자서 저걸 다 먹으려면 보름은 걸릴 거다. 그동안 안 오려는 것인가?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국 한 냄비. 아마 나 혼자서 저걸 다 먹으려면 보름은 걸릴 거다. 그동안 안 오려는 것인가? ⓒ 임석교
하지만 우린 이렇게 산다. 평소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은 녀석은 말을 잘 듣는다. 엄마가 곁에 없기에 어리광을 피울 때가 없어서인지 더 어른스럽다. 직접 아침을 준비한다. 물론 본인이 먹고 싶은 것으로만…. 이것만 해도 나는 만족한다.

"아빠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할 거야." 난리다. 엄마, 언니가 없으니 본인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역시 걱정이 앞선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잘 하는데.

인간은 상황에 맞추어 사는 유일한 동물일까? 걱정이 해결된 셈이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능력이 본능적으로 발휘된다. 큰 딸과 아내가 없는 오늘 이 저녁도 막내 녀석과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가족이 곁에 없으면 슬퍼지는 내 마음을 막내는 알까.

큰 딸의 시험 합격을 기대하며, 오늘 처음으로 막내 녀석과 외롭고 즐거운 밤을 맞이한다. 여러분, 가족 없으면 이렇게 슬퍼집니다. "있을 때 잘 혀, 그러니깐 잘 혀"라고 한 어느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있을 때 잘 혀, 그러니깐 잘 혀."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시골아이>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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