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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향리로 데려 갔던 선배(좌)와 나. 2001년 전북 정읍에서 농활중 찍은 사진. 매향리 사건 이 후 나와 선배는 둘도 없는 동지사이가 됐다.
나를 매향리로 데려 갔던 선배(좌)와 나. 2001년 전북 정읍에서 농활중 찍은 사진. 매향리 사건 이 후 나와 선배는 둘도 없는 동지사이가 됐다. ⓒ 김귀현
학생회장단 야유회 간다더니...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다. 과학생회장 형에게서 토요일 아침에 전화가 왔다. 총학생회에서 간부들끼리 야유회를 가는데 같이 가자는 거였다. 당시 내가 사모하던 생활과학대 학생회장 누나가 온다는 말에 혹해 난 그 야유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야유회 장소로 간다던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비장해 보였다. 뭔가 낌새가 수상했다.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는 '매향리'로 향했다.

당시 미군 사격장 문제로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매향리. 그날따라 크고 작은 시위 중에서도 정말 '큰'시위가 있었다. 속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뉴스에서만 보던 그 곳에 발을 내려놓자마자, 그 상냥하던 생활과학대 회장 누나까지 투쟁 전사가 되어 뛰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뛰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나는 잡혔다.

말 그대로 '복날에 개 맞듯이' 맞았다.

이렇게 학생회장 형에게 속고, 경찰한테 맞고, 한총련 산하 학생회가 싫어질 만도 한데, 난 그 집회 이후 운동권 학생이 되어 버렸다. 물론 학생회장 형이 나에게 적용했던 사람을 속이며 벌이는 조직화는 지양했다.

'이게 뭐길래 학생들이 이렇게 맞아가며, 고생하며 투쟁하나'를 알고 싶기도 했지만, 집회 현장의 그 묘한 긴장이 좋았다. 결국 나중에 학생회 간부까지 되었고, 투쟁의 전선에 언제나 동지들과 함께 했다.

이런 나도 참 어이없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반공의식이 투철하고 미국을 최고의 우방으로 생각했던 나는 대학 선배들이 '북한은 한민족이고 미국은 나쁘다' 할 때부터 수긍할 수 없었다. '전쟁광 부시', '북한을 못 살게 구는 미국' 뭐 이런 종류의 얘기를 들을 때 난 이런 말로 반박을 했다.

"그럼 미국이 북한 다 때려 부수면 되잖아! 전쟁 내서 그냥 북한 없애라 그래요!"

참 무지하고 어렸던 나는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우리는 별 상관없는 줄 알았다. 그만큼 난 의식 자체가 없었다. 단지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북한을 미국이 무력으로 붕괴시켜 우리에게 한반도의 북쪽을 돌려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였다.

귀여운 새내기의 한 마디, "저는 부시 지지자예요"

시간이 흐른 뒤 난 복학생이 되었다. 학내 언론사 활동을 했던 나는 동아리 방에서 후배들에게 이리 저리 말이라도 걸어 보려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취재를 가는 후배에게 물었다.

"어디 취재 가니?"
"OO 학교 학생회 취재 가요."

"거기가 지금 NL이니 PD니?"
"네? 그게 뭔데요?"


2학년 학생이 NL, PD를 몰랐다. 뭐 요즘엔 학내에서 그런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니 이해 할만도 했지만, 언론사에 있으면서 모르는 것은 정말 '이건 아니잖아~'였다. 바로 후배들을 불러 놓고 NL, PD에 대한 강의를 했다.

후배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무의식, 이 정도는 애교였다. 북핵실험 후 만난 1학년 후배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은 정말 뭣도 모르고 까부는 것 같아요. 부시가 강력하게 나와서 북한이 이 정도로 조용한 거지. 정말 부시 아니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리고 날리는 결정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한국에도 지지자가 생기고 있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한국에도 지지자가 생기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선배, 저는 부시 지지자예요."

미합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에 부시 지지자가 있다니, 그것도 대학생이…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설득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부시 지지자인 후배에게 '그건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기만 해도, '그 빨갱이 선배 졸업이나 하지' 이런 소문들이 확 돈다. 이전에도 후배들에게 한총련 얘기를 조금 꺼냈다가 '빨갱이'로 찍힌 적이 있다.

학생 운동의 메카였던 우리 학교마저도 이런데 다른 학교는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이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자본주의를 숭배하는 우파의 성향을 띠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때려 부숴라'하던 신입생. '부시를 지지한다'고 외치는 신입생, 그들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전자의 경우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다소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고, 후자의 경우 이제는 그런 걸 주제로 함께 얘기할 선배조차 없다.

세상을 바꾼 것도 '대학생'이 한 일이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내는 목소리가 컸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일들 중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사안이 있다면 학생회를 필두로 한목소리를 내 개선점을 찾았다. 내가 2학년 시절에는 3일간 단식 투쟁까지 벌여 학부제를 철폐시키기도 했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이때는 정말 3일이 지옥 같았다.

하지만 이젠 학교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되었다. 물론 학교가 벌이는 사업들이 순기능도 있고 역기능도 있다. 예전의 학생회가 너무 반발만 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의 상황도 매우 좋지 않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를 지지한다. '학교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 이란 생각에 학생들은 간혹 보이는 학교의 부당함에 대항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교내에 걸려있던 FTA를 반대 대형 걸개그림이 '수시 모집 기간이라 고등학생도 많이 올 텐데 학교 이미지 안 좋아지게 이런 걸 왜 거는가'라는 학생들의 항의에 때문에 금세 내려진 적도 있다.

대학의 보수화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쏟아지는 실업자들, 4년간 취업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인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기의 주장을 펴는 것은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을 누구를 탓하리오. 적어도 대학생들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대학 보수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목소리를 낼 때는 낼 줄 아는 게 대학생의 의무이자 특권이 아니던가.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꾼 것도 우리 대학생이 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생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는 선배로서 마음이 정말 착잡하다. 그리고 그 귀여운 후배는 웬만하면 부시 말고 다른 사람을 지지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지지할 만한 사람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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