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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책 한 권을 꺼냈다. <구름빵>은 구름으로 빵을 만들어먹는 고양이 형제 이야기다. 그들에게 창은 비상하는 출구다.
ⓒ 박태신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눈빛부터 달라져요."

순천 '기적의 도서관' 허순영 관장의 말입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전국일주를 하던 8월에 들른 곳 중 하나입니다. 대략적으로 도시를 정하고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열차, 버스 등을 타고서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해 찾아가는 식이었습니다.

순천은 사실 지나가는 도시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순천 어딘가에서 순천의 명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적의 도서관'과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세트장을 찾아갔습니다.

그 선택은 잘못되지 않아 8일간의 전국 일주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곳이 이곳 '기적의 도서관'이었습니다. 때는 무더운 날씨의 정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도서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안에는 분명 인기척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매주 월요일은 오후 1시부터 개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더위 아래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 '기적의 도서관'은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각각의 여력이 합해져 멋진 작품, 그것도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 박태신
그런데 개장 시간을 모르고 찾아오는 아이들, 학부모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오후에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고는 풀이 죽었습니다. 방학 중이라 도서관엔 더욱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기다리는 아이들 미안하게, 냉방이 되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 맞춰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도서관 안은 아이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란도란'이라는 이름의 장소는 학부모들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어른들도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책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책 안내를 해 주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세상입니다.

신발을 사물함에 넣습니다. 손을 씻고 들어가게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둘 다 '괴나리 봇짐'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에 있습니다. 아이들 세상에 왔으니 아이들 법에 따라야지요.

정말 책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3만4천여 권의 장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책을 '장서'라고 해도 되겠죠?

여행 짐을 한곳에 아무렇게나 놔두고, 사진 촬영 허락받고 동화의 세계를 노닙니다.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이 참 자유롭습니다. 책상에 앉아 보는 아이, 소파에 책을 놓고 보는 아이, 엎드려서 보는 아이 등 장소에 따라 활자가 아이들 머리에 들어가는 방식은 각양각색입니다.

▲ 영아 유아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북 스타트' 사업. 영국에서 시작된 '북 스타트 운동'은 큰 성과를 이루었다. 모든 연령의 아이들에게 문을 열기는 우리나라에서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처음이다.
ⓒ 박태신
'기적의 도서관'은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모델의 도서관입니다. '기적의 도서관'은 2003년 순천시에서 기적의 어린이 도서관 유치 신청을 하고, 문화방송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순천을 제1호관으로 선정하면서 착공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 책 저 책 눈가는 대로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프랑스 어린이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샤를 페로가 옛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모은 책인 <샤를 페로가 들려주는 프랑스 옛이야기>를 봅니다. 이 책에는 익히 아는 이야기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이 있습니다.

오래전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 1>이라는 책을 줄쳐가며 꼼꼼히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옛 이야기들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아이들이 옛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갈등을 해소해나가면서 성장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그만큼 옛 이야기가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외부로 둥그렇게 튀어나온 공간의 창. 신비의 세계를 보여주는 창.
ⓒ 박태신
글자 없이 그림으로만 되어 있는 안노 미쯔마사의 <숲 이야기>도 봅니다. 안노 미쯔마사의 다른 여행 그림책에도 글자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얀 아르튀스-베스트랑이 공중에서 찍은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하늘에서 본 지구>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의 의도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보존해야 할 지구의 모습을 담는 것입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무모한 발전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토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발전입니다. '기적의 도서관'도 그런 미래의 삶을 위한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 2층에서 바라본 모습. 자꾸만 올라가고 싶은 2층.
ⓒ 박태신
'기적의 도서관'은 아주 예쁜 건물입니다. 2층 건물의 경사진 철골 지붕에다 건물 중앙에 지붕까지 뻗은 미니 정원도 갖추고 있는,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 창의성 넘치는 구조입니다. 건물 안은 무수한 세계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세계를 잠시 볼까요?

미취학 아동들이 엄마와 함께 책을 보는 '아그들 방', 부모가 소리 내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도 되는 '아빠랑 아가랑', 컴퓨터를 이용한 멀티 동화 등 전자도서를 볼 수 있는 '디지털 자료실', 고학년 어린이들이 책을 보는 '지혜의 다락방', 옥상정원인 '비밀의 정원' 등이 있습니다. 게다가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는 강당도 있습니다.

여름엔 이곳에서 '도서관에서 하룻밤'이라는 행사도 엽니다. 더욱이 '기적의 도서관'은 온돌방이라 어디서건 책을 보다 이불 덮고 잘 수 있답니다.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

이렇게 '기적의 도서관'은 책읽기는 물론 이야기 들려주기, 그림, 연극 등 많은 활동들이 책 읽기와 연결돼 진행됩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 아이들이 책을 읽고 그린 그림들.
ⓒ 박태신
'기적의 도서관'은 '불우한 조건과 차별, 기회 박탈, 무관심 등으로 소외되고 뒤쳐지는 어린이는 없어야 함'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안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꿈의 세계에 몰입합니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말입니다. 학교에서 해줄 수 없는 작업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책을 대출받으려면 '여권'이 있어야 합니다. '책나라 여권'이라고 부르는 회원증 말입니다. '책나라'의 주인은 어린이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린이 사서 제도를 실시합니다. 고학년 아이들이 책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책도 읽어주고, 역사 문화 자료를 수집하고 소개하는 일까지 합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있었던 시간은 참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관장님의 차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현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저도 어린이가 되어 어느 구석에 처박혀 동화 속을 돌아다니고 싶습니다.

순천에 가실 일이 있으면 꼭 한 번 들르십시오. 성인의 마음에 아직 살아있는 '어린이성'을 확인하고 흐뭇해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보람을 한껏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림책 독자는 0세에서 100세까지랍니다!

▲ 이곳의 손때 묻은 책과 책들은 아이들이 집에 간 밤새, 아이들 손에 읽혀진 것을 서로 자랑하느라 들썩일 것이다.
ⓒ 박태신

덧붙이는 글 | '기적의 도서관'  www.scml.or.kr


기적의 도서관 - 정기용의 어린이 도서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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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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