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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증장애인으로 20여 년간 집안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집이 이층연립인데 이층이라 계단은 나에게 '건너지 못할 강'이어서 20여 년간 외출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건장한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데 마땅히 도움 청할 곳이 없다. 어쩌다 주위의 도움으로 외출하고 나서는 다시는 외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전신 류머티즘 관절염이라 팔, 다리 관절들이 모두 굳어져 있기에 나를 다루기가 쉽지 않고 일일이 업고 다녀야 하기에 봉사자들이 많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난 다시는 문 밖을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난 노모와 둘이 살고 있다. 삶을 포기하고 살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집안에 갇혀 지내는 나를 기억해주는 이도 없다. 친구 한 두 명 연락하는 정도다. 매일 그날이 그날 인 채 외롭게 살아왔다.

죽은 듯이 살고 있는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병원 검진 받을 계기가 생겨 검진 받았더니 두 다리 수술이 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희미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올해 초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를 통해 집 계단 난간을 잡고 자력으로 계단을 내려 올 수가 있었다. 20여 년만에 자력으로 땅을 밟은 것이었다.

어지러웠다. 매일 목발 짚고 걷는 운동을 했다. 근육을 십수 년 쓰지 않았기에 근육이 다리뼈에 붙어 있는 걸 수술 때 떼어 놓았다고 했다. 햇빛을 받지 못해 백옥 같은 얼굴은 한 여름 뜨거운 햇볕에 검게 그을렸다. 이제야 얼굴에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이었다. 목발 짚고 집 주위는 돌 수 있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다.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좀 더 멀리 가기 위해 전동스쿠터가 있었으면 했다.

희망을 가지니 희망이 이루어져 전동 스쿠터를 선물로 받았다. 옛날보다는 장애인 복지가 조금 나아져 작년부터 중증 장애인에게 고가인 전동 휠체어, 전동 스쿠터를 의료 보험을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전동 휠체어나 전동 스쿠터를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다.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스쿠터를 운전해 보니 노약자용이라 금방 배울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집 주위를 돌았다. (이후 행동들은 모두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라며) 가게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경비 아저씨랑 동네 어르신을 대접했다.

한 이틀 도로를 다니며 스쿠터 운전 연습을 했다. 자신감이 생겨 좀 더 멀리가기로 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을 찾아가는데 너무 많이 변해 몇 번 지나친 끝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스쿠터가 작기 때문에 골목이라든지 관공서에 들어가서 민원을 볼 수가 있고 소리가 나지 않아서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분명 전동 휠체어, 전동 스쿠터는 방에 갇혀 사는 중증장애인에게 자력으로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꿈의 선물이다.

그러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선 다리와 팔에 장애가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은 뇌병변 장애나 전신마비 환자라야 그 조항이 부합한 것 같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어떤 돌출 상황이 발생할 시 순발력이 떨어진다. 차가 속력을 덜 내는 이면 도로는 좀 안심 할 수 있는데 언제까지 이면 도로로 다닐 수가 없어 차도로 나가 처음에는 인도로 다녔다.

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만 다녀보니 인도 턱이 들쑥날쑥이다. 어떤 곳은 낮아 이용하기 편한데, 어떤 곳은 높아 인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도 또한 바닥이 고르지 못해 지나다니는데 어려움이 있고, 또 가게에서 큰 물건하나 인도에 내놓으면 다시 돌아 가야하고, 또 인도에 차가 올라와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좀 위험하더라도 차도로 다니기로 했다. 차도 갓길 노란선이 그어졌는데 그 길로 다녔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지만 좀 다니니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았다. 스쿠터에는 뒷거울이 있어 큰 트레일러가 오면 잠시 정지했다가 가곤 했는데 전동 휠체어에는 뒷거울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몸이 불편한 사람은 몸을 돌려 뒤쪽을 보는 것이 아주 어렵다. 그러니 사고위험이 높다. 마음속으로 '오늘도 무사히'만 빌 뿐이다.

매일 가까운 곳을 돌다보니 좀 심심해졌다. 좀 더 멀리 나가기로 했다. 집은 부산 광안해수욕장 근처인데 해운대 누리마루까지 가기로 했다. 먼저 가방에 조카 디카를 넣고, 지갑에 비상금과 신분증, 비상연락처, 혹시 모를 우리 집 전화번호까지 메모해서 지갑에 넣었다. 휴대폰은 없다. 집안에 갇혀 있다보니 휴대폰이 필요 없고 올 전화도 없기에 구입하지 않았는데 밖에 외출 때 비상시에는 필요할 것 같다.

수영 2호교를 건너기로 했는데 인도의 턱이 높아 차도 갓길로 가기로 했다. 해운대 가는 길은 도로가 넓고 통행량도 많고 횡단보도도 적어 스쿠터 타고 가기에는 위험했다. 차들이 빨리 달리고 있기에 나도 스쿠터 최고 속력을 냈다. 극히 위험한 일이지만 차도에서 스쿠터를 타면 속도감이 없다. 그만큼 차들이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사거리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차도로 들어 달렸다. 별 무리 없이 누리마루에 왔다. 누리마루 가는 길은 차량통제구역이다. 휠체어 스쿠터는 보행자에 해당되는지 제재없이 출입할 수가 있었는데 많은 관광객이 오고 가니 속도는 도보 수준으로 줄였다.

건물 안은 들어 갈 수가 없고 밖에서 사진 여러 장 찍고 잠시 쉬었다가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는 위험한 찻길을 피해 이면도로로 오다가 이면도로가 끝나면 차도로 들어갔는데 뒷거울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만큼 긴장하며 가고 있었다. 우리 동네로 가려면 왼쪽도로로 가야한다. 그 쪽으로 가려면 차선을 바꿔 안쪽으로 가야하는데 극히 위험한 일이어서 결국 그 도로로 가지 못하고 가던 길 따라 계속 가 돌고 돌아서 집에 도착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스쿠터는 나에게 소중하다. 내 발이자 내 자유다. 멀지 않은 곳은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다만 차들이 내 옆을 얌전하게 지나가 주면 좋겠다. 또 돌출없이 평탄한 길이 있으면 더더구나 좋은 외출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데 왜 밖으로 나오냐고 반문하겠지만. 몸만 불편할 뿐 마음과 생각은 그들과 다르지 않아 더 멀리 가고 싶고 더 멀리 뛰고 싶다. 나는 또 다른 희망을 꿈꾼다. 더 먼 길을 가기위해 위해 장애인 승용차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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