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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감 시절, 정훈병과의 날 축사 장면
정훈감 시절, 정훈병과의 날 축사 장면
대학생들의 화염병이 난무하고 최루탄의 매운 연기가 서울 시내 어디를 가든 온종일 걷히지 않고 자욱하던 때였다. 꼭 무슨 큰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잠겨 있는 가운데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이 사건은 민주화를 부르짖던 청년학생들을 격분케 하여 용기백배 투쟁하는 진군의 나팔 소리가 될 것이라고 난 믿었다.

주변 분위기에 장단 맞추느라 겉으로는 염려스러운 듯이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더 큰 힘으로 곳곳에서 일어서 주기를 바라며 시간마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장군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때였다. 마침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육본 보안부대장이 이런 내 마음 속을 다 읽고 있다는 듯이 나를 향해 말했다. "표 장군! 박종철 사건 말이오, '억'하면 '윽'할 수도 있는 건데 언론에서 너무 빠르게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군은 이에 대한 정훈교육을 빨리 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수사관이 수사 도중 책상을 치면서 '억'하고 크게 소리치니까 박종철씨가 '윽'하고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난 부정적으로 답했다. "상황을 조금 더 지켜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사실 관계가 확실하지도 않고요."

그러자 그는 대뜸 큰소리로 호통쳤다. "당신은 그러니까 문제 있는 장군이야!" 난 당황하여 "아니 왜 이러시오!"했다.

그러자 그는 완전히 실성한 사람처럼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지금이 적기라고 내 나름대로 판단해서 말한 건데,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지 무슨 잔소리가 많아?" 완전히 부하 다루듯이 고압적인 자세로 마구 퍼부어댔다.

"박종철, '억'하면 '윽'할 수 있으니 빨리 교육해" vs. "정훈감은 나야"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식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참으려 해도 화가 치밀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말이 좋아 장군이지, 날마다 푸대접 받으면서 신경 쓰느라 쌓인 분노가 일시에 폭발했다.

"야, 이 새끼야! 육군의 정신교육 책임자는 정훈감인 나야! 너는 보안대 일이나 잘해! 네가 뭔데, 문제 있다 없다 이래라 저래라 누구더러 함부로 말해!" 나도 일어서서 두 눈을 부라렸고, 한 대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는 "나는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육본에 파견한 사람" 운운하며 나를 문제 있는 장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야, 이 새끼야! 나도 대통령이 임명한 장군이야!" 하고 대꾸했다. 그는 밥 수저를 던지더니 획 나가버렸다.

울분이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감히(?) 보안부대장과 말다툼하고 있으니 다른 장군들은 곤란했는지 슬슬 빠져나가 버렸다. 옆에서 함께 식사하던 동기생 오상숙 장군이 나를 달랬다. 그는 특별히 마음이 온유하고 착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어차피 정훈감은 마치고 나가야 할 것 아닌가? 기분은 나쁘겠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가서 잘못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라." 오 장군은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참으로 할 일이 많은데 그냥 옷 벗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대장 방에 들러 "최 장군! 내가 잘못했습니다"하고 마음에 없는 굴욕적인 말을 던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후 내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걸리고 방해받았다.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본에서는 정훈감실 주관으로 분기마다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교양강의를 실시했다. 한 번은 한모 교수를 초청하여 관료제도의 문제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그날따라 전례 없이 참모총장이 직접 참석했다.

교육이 끝난 다음 총장이 나를 급히 불렀다. 총장은 '어디서 그런 엉터리 강사를 초빙해 왔느냐'며 강사 선정이 너무나 잘못되었다고 한참 꾸중했다. 그러더니 "그 교수 아주 삐딱한 것 같아! 정훈감이 만나서 직접 설득시켜봐!"하고 지시하는 것 아닌가.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내가 그를 설득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장의 지시라 어찌할지 몰라 고민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며칠 후 작전참모부장이 재촉했다. "내가 저녁 값을 조치해 줄 터이니 그 교수를 빨리 만나시오!" 사실 저녁 값 때문이 아닌데. 내가 미덥지 않았던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온 20기 이무웅 장군과 자리를 함께 하라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의심받고 있었지만, 덕분에 난 그날 좋아하는 생선회를 허리띠 풀고 먹을 수 있었다.

그 교수야 물론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일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니 비싼 생선회를 마음껏 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강의를 잘해서 대접받는다고 여겼으리라.

그는 김대중 정부 들어 제2건국 운동의 이론체계를 세워 전파하러 돌아다녔다. 국민의식개혁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었던 난 그를 만나 잘못 가고 있는 제2건국에 대해 논의, 건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접촉 자체가 어려웠다.

그가 일하는 단체의 비서실에 내 신분을 자세히 밝히고 한 번 뵙고 싶다고 몇 번 연락했는데도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관료제의 문제점에 대해 강의는 멋들어지게 했어도, 그 자신도 관료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니 역시 편리한 점이 많고 세속적인 기분에 취해 스스로 권위주의적인 탈을 벗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386세대라는 사람들 중에도 이와 비슷해진 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개혁한다고 요란하기만 했지 쉽게 관료화돼, 중추적 주도권은 직업 관료들에게 다 빼앗기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질책만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친일, 독재의 기득권 세력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너무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대단한 결단이 아니면 초심을 지키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말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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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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