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일에 있게 될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은 지금 선거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TV에서도 후보자들의 광고 방송이 줄을 잇고 있고, 이곳 해리슨버그에도 후보자들의 이름이 적힌 간판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다.
더욱이 내가 사는 버지니아 주는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접전 지역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여간이 아닌 듯하다.
이곳 타운하우스 단지 안에도 자기 집 정원이나 창문에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내걸어 두기도 하고, 자동차 뒷 창문이 안 보일 정도로 후보자의 이름을 써붙이거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등의 적극적인 선거활동도 눈에 많이 띈다.
재미있는 것은 길가에 세워진 큰 간판이나 동네 입구에 서 있는 작은 간판 모두 후보자의 이름만 나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속 정당의 이름을 크게 적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물론 미국은 양당제를 실시하는 나라인 만큼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일 거라고 짐작하지만 나 같이 이곳에 산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는 누가 민주당 후보인지, 누가 공화당 후보인지를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런데 미국의 치열한 선거 바람은 우리 집에도 불었다. 엊그제,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우리 지역에 누가 출마하는지 알아?"
"응. 웹하고 알렌." (거리에 세워진 간판이나 동네 산책길에서 본 팻말만으로도 후보자가 누군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엄마는 누구를 지지해? 웹? 아니면 알렌?"
"둘 다 관심 없어."
"누가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는 알아?"
"몰라. 관심 없대두."
"왜 관심이 없는데?"
"…."
"왜 관심이 없냐고?"
"나랑 상관 없는 선거잖아."
"왜 상관이 없는데?"
"얘. 그만 해. 투표권도 없는데 이번 선거가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 무슨 관심이 있겠냐고?"
딸아이의 집요한 질문에 핀잔을 주자 작은딸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한다.
"이건 숙제야. 엄마가 대답해 줘야 할 숙제라고."
딸아이의 숙제는 오는 7일에 있게 될 미국 중간선거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지역에 출마하는 의원이 누구인지, 부모님은 누구를 지지하는지, 왜 지지하는지, 그들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등을 적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에 부모님이 선거에 관심이 없다면 왜 관심이 없는지도 알아오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번 중간선거에 대해 어린 자녀들도 참여시켜 정치에 관한 관심을 공유하는 게 목적인 것 같았다.
그것이 숙제라고 하니 진지한 답변을 해줘야 했는데 사실 질문은 이번 중간선거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어느 정당을 지지해?"
"글쎄, 투표권도 없는데 지지 정당은 무슨? 그래도 굳이 정당을 선택하라고 하면 엄마는 민주당."
"왜?"
"전쟁이 싫으니까. 그리고 민주당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공화당은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잖아. 엄마는 보수보다 진보가 좋아. 그리고 민주당이 인권 문제나 마이너 그룹에 대한 배려도 더 있는 것 같고."
"마이너 그룹이 누군데?"
"우리 여성들도 마이너 그룹이지. 여성뿐 아니라 어린이, 흑인 등 유색인종 등도 마이너 그룹이고."
"엄마는 정치 가운데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어?"
"얘, 숙제 되게 어렵다. 엄마는 뭐에 관심이 있나? 세계 평화에 관심이 있지. 그리고 사회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고."
"이민 정책은?"
"글쎄, 지금 당장은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 그것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겠지."
딸의 선거 관련 숙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알다시피 지금 미국은 온통 중간선거 열풍에 휩싸여 있다. 이번 선거 승리를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물불 안 가리고 뛰는 부시 대통령을 보면 도대체 부시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지 아니면 공화당의 골수 열혈당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물론 우리와는 정치시스템이 달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여당의 승리를 위해 청와대를 비우고 전라도로, 경상도로 날아 다닌다면 '선거 중립성 훼손' 운운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살아남지 못할 터인데... 미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