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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흔을 두 해나 넘기고도 그동안 별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는데 올해 들어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좀 더 많아졌다 싶은 흰 머리카락은 지금까지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올해 초 면도할 때 발견한 흰 턱수염과 흰 코털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 이제 나도 늙어가고 있는가! 욕실의 거울에 비친 사내를 바라보며 나는 맥없이 중얼거리곤 했다. 흰 머리카락은 염색을 하면 얼마든지 가릴 수 있지만, 흰 턱수염과 흰 코털은 그럴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유가 어디에 있든 이렇게 흰 턱수염과 흰 코털에 한번 눈길을 주고 나니까, 최근 1~2년 사이에 내 몸에 나타난 소소한 변화들이 모두 노화의 징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흔을 넘은 내 나이가 비로소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새벽에 자주 잠이 깨고, 잇몸이 자주 시큰거리고, 딸아이가 즐겨 듣는 비트 강한 대중음악이 귀에 몹시 거슬리고, 눈이 쉽게 뻑뻑해지고, 깜빡깜빡 잊어먹는 건망증이 심해지고….

이 모든 육체적 변화의 근본 원인이 다름 아닌 마흔을 넘긴 내 나이에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나는 내 나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창 좋은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가고 이제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중년에 접어들었다는 자각은 꽤나 쓸쓸하고 서글픈 것이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글 한 줄 못 쓰고 책읽기로만 소일하면서 두 해 늦게 내게 찾아온 마흔병을 견디며 지냈다.

소설가이자 번역문학가인 안정효의 에세이집 <가뢰와 뒤쥐>를 읽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는데, 쓸쓸해하던 내게 따스한 위안이 되었다. 저자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사색의 깊이와 그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통찰은 마흔 넘은 사내의 목마름을 적셔주었다. 뒤늦게 마흔을 앓고 있던 내게 예순이 넘은 노작가가 가만가만 그러나 확신을 담아 들려주는 인생론은 큰 깨달음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2.

ⓒ 넥서스BOOKS
안정효의 에세이집 <가뢰와 뒤쥐>는 우리가 마주치는 인생의 여러 국면과 세상살이의 다양한 세부에 관한 단상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주제별로 열두 장으로 나누어 묶어 놓은 그 단상들은 고작 한두 쪽에 불과한 짧은 글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무게는 웬만한 책 한 권의 무게에 값한다. 여기저기에서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어온 값싼 지식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끌어낸 귀한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단상들에 담긴 인생론은 매우 쉽고 실제적이어서 강한 설득력이 있다.

내가 삶의 여로에서 되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때는, <가을바다 사람들>의 주인공처럼 마흔 살이 되던 생일날이었다. 마흔을 내 인생의 반환점으로 선택한 까닭은 아마도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건강이나 삶에 대한 의욕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80살까지는 살리라고 계산했다. 따라서 80 인생에서는 40이 반환점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는 쓰지 못할 돈은 구태여 벌려고 애를 쓰지 않기로 작정했다.

내가 일을 얼마나 하고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부터 가장 먼저 했던 까닭은, 인생에서는 어차피 먹고 사는 활동이 가장 중요한 함수이기 때문이었다. 하루 세 끼 먹고도 남는다면 더 이상은 고생을 해가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는 해답을 얻을 때까지 나는 별로 많은 계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돈을 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84쪽 '돌아서는 마흔 살'에서)


삶의 반환점인 마흔 살이 되던 생일날에 했다는 저자의 이러한 결심은 다 늙어 죽을 때까지도 소유의 욕망에서 쉽사리 놓여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부끄럽게 한다. 소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을 한다. 신진대사가 너무 활발해서 쉴 새 없이 계속 움직이는 뒤쥐처럼 말이다. 그러나 뒤쥐는 쉴 새 없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매 시간 먹어야만 한다. 악순환이다. 그리고 악순환의 끝에 뒤쥐는 결국은 이가 닳고 털이 빠져 2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만다. 하루하루를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그 누가 쉽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뒤쥐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답게, 사람스럽게, 그리고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뢰와 뒤쥐>의 저자는 말한다. 결국 이 책의 저자가 펼쳐 보이고 있는 인생론의 핵심은 "사람답게, 사람스럽게 그리고 사람처럼 살자"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소박해 보이는 이 인생론은 그러나 보기보다 훨씬 더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

가. 사람답게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짓는 특징들 중의 하나를 들자면, 인간만이 유일하게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며,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이 뒤쥐의 삶과 동격으로 취급된다는 것은 치욕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인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한가운데, 즉 인생의 반환점에 서 있는 마흔 살이야말로 그 일을 하는데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마흔은 젊은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새로운 삶을 기획할 수 있고 늙은이가 느끼는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바라볼 수도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아직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죽음까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헤아리는 행위란, 어쩐지 손해를 보는 듯한 개념이어서겠다.

죽음까지의 남은 거리를 계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처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거의 언제나 도중에서 갑자기 살기를 멈춰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남은 삶을 정돈할 기회를 잃는다. (36-37쪽, '반환점'에서)


삶과 죽음, 그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죽음을 진지하게 준비함이 없이는 진지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그릇이요, 삶을 담았다가 쏟아놓을 때가 되면, 깨져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때, 뒤쥐의 삶처럼 욕망의 쳇바퀴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반복되던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진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고 반환점을 돌고 난 이후의 삶을 스스로 설계해보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반환점에서 되돌아보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걸어갈 길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며, 반환점 이후의 삶을 설계해보는 것은 남은 삶을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삶을 정돈하고 잘 죽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남은 삶의 설계를 스스로 해야 하는 까닭은 타인이 설계한 삶은 아무리 내가 살더라도 타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흔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려면 우리는 일단 멈추어야 한다.

나. 사람스럽게

딱정벌레목의 가뢰(tiger beetle, meloidae)라는 곤충은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사냥을 하려고 냅다 달려 나가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옆으로 지나치는 사물과 사냥감에 관한 시각적인 정보를 눈으로 포착하여 분석을 위해 두뇌까지 전달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달려 나가기만 하다 보니까 정보가 입력이 되지 않고, 그래서 옆으로 무엇이 돌아다니는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가뢰는 짧은 거리를 냅다 달려 나간 다음 일단 멈춰 서서 잠깐 주변을 살펴본 다음에, 자신의 위치와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는, 다시 냅다 달려 나간다. 단거리 달리기와 일단정지가 정신없이 반복되는 셈이다. 뒤쥐의 생애보다도 훨씬 더 숨가쁜 가뢰의 한살이는 극단적인 주마간산(走馬看山) 삶이다. 그리고 가뢰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104쪽, '가뢰처럼 살아가기')


저자가 가뢰의 예를 들어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바쁜 현대인들의 삶에서 멈춤이란 휴식을 위한 여유가 아니라 일종의 휴지기로 간주된다. 사람들은 그 잠시의 짬을 오히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시간이 생기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을 하는 대신 일을 한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흔 살의 멈춤은 단순히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다시 가늠한 이후에 다시 달려 나가기 위한 가뢰의 멈춤과는 달라야 한다. 일과 일 사이에 있는 단순한 휴지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멈춤은 마흔 살까지 숨차게 달려만 오던 삶에 새로운 속도를 부여하기 위한 멈춤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속도는 달리기가 아니라 보행의 속도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며, 그 먼 길을 끝까지 가려면 달리지 말고 걸어야 하기에 그렇다. 산책의 속도로 느릿느릿 걸어갈 때 비로소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길의 표지판도 확실하게 보이고 그 길에 늘어선 사물들과 자연의 얼굴도 뚜렷해지는 법이다.

우리가 그렇게 느린 속도로 세상을 주유할 때, 세상의 그 많은 지식은 비로소 우리의 몸으로 흘러들어 귀중한 삶의 지혜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종명이 부끄럽지 않게 될 터이다.

사람스럽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렇게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우리 주위의 사물과 자연과 세상에 대해서 눈을 맞추며 새롭게 배우며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반환점인 마흔을 돌고 나서도 젊은 날의 달리기 속도를 고집하는 사람의 노년은 경제적으로는 윤택할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을 면하기 어렵다.

다. 사람처럼

인간은 또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각각의 가치가 그 사회 전체의 가치보다도 오히려 무겁다는 점에서 개미나 꿀벌처럼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들이 만드는 사회와는 구별된다. 개인은 사회라는 전체에 속하지만 결코 종속되지는 않는다. 더불어 살되 각자의 개별성이 존중되는 삶이 바로 인간의 삶인 것이다. 사람처럼 산다는 말의 의미는, 내게는 그렇게 이해되었다.

인간은 남들의 존경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신부터 존경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존경은 명성의 최소 기본 단위이다. 그리고 세상만사는 기본 단위에서 시작된다. 스스로 자신을 존경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존경을 기대한다면, 기본적인 명제가 어긋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떳떳하지 못한 인간이라면, 만인의 추앙을 받은들 무슨 소용인가? (97쪽, '자신에게서 존경을 받는 사람'에서)

그렇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내세울 것 없는 지위, 한줌 밖에 안 되는 재산, 볼품없는 얼굴과 몸이 전부일지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존을 잃지 않는다면 사람처럼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마흔은 한탄하고 후회하고 쓸쓸해 하는 나이가 아니라 '나'를 되찾고 일으켜 세우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나이이다. 사회 전체를 다 주고도 개인 하나를 사지는 못한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인간은 누구라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이 세워질 때,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솟아나고 함께 사는 공존의 지혜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가와 예술가가 서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게 되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않고, 즉 모두가 사람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3.

이처럼 안정효의 <가뢰와 뒤쥐>는 인생의 반환점인 마흔 살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삶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짧지만 울림이 오래 가는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지나온 날을 되돌아봄도 없이, 앞날을 설계함도 없이 지나쳐버린 나의 마흔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책을 읽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스럽게 그리고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예순의 노작가가 흔들리는 마흔을 위해 쓴 인생론을 담고 있는 책 <가뢰와 뒤쥐>는 성인으로서의 삶을 막 시작하는 스무 살 청년이 읽어야 할 책이다. 가뢰처럼, 뒤쥐처럼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스물에게, <가뢰와 뒤쥐>는 그 어떤 인생론과 철학서도 제공하지 못하는 풍부한 삶의 통찰과 세상살이의 지혜를 안겨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가뢰와 뒤쥐>

ㅇ 안정효 지음
ㅇ 넥서스BOOKS 펴냄
ㅇ 2003년 9월 1일 초판 1쇄
ㅇ 가격 12,000원


가뢰와 뒤쥐

안정효 지음, 넥서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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