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이!

솟은 서둘러 달려가 바닥에 고개를 숙인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수이를 안아 세웠다. 수이는 몸을 틀면서 눈을 떴지만 금방 앞이 보이지 않자 괴로운 소리를 질러 대었다. 솟은 극적으로 상봉한 수이를 반겨할 사이도 없이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수이! 내가 왔어! 솟이 왔다고!

그러나 수이의 괴로운 절규는 끊어지지 않았다. 솟은 당황해 하면서도 수이를 꼭 안고 자신의 몸에 두른 나무껍질 옷을 벗어 수이를 감싸 주었다. 원래 사슴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던 솟은 자신의 옷이 바뀌었음을 뒤늦게 알아채고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을 차분히 생각해 볼 경황은 없었다.

-어서 이 쪽으로!

‘하쉬’가 둥근 막대기를 휘두르며 앞장서서 나갔다. 솟 역시 수이를 데려온 이상 이 이상한 동굴 속에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솟은 두 손을 허우적거리는 수이를 반강제로 들쳐 업고서는 하쉬의 뒤를 허겁지겁 따라 나섰다. 하쉬는 갈림길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방향을 잡고 나갔다. 한참을 달려간 하쉬는 모퉁이에서 흠칫 몸을 돌리며 급하게 달려오는 솟을 제지하고 소리쳤다.

-엎드려!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사방에 불꽃이 튀어 올랐다. 솟은 다른 하쉬들이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누! 제발 오해를 풀어라! 이건 결국 네가 소중히 여기는 가이다의 생명을 위한 일이기도 해! 희생이 있더라도 하쉬의 생명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솟은 자신을 돕는 하쉬의 이름이 아누임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아누는 둥근 막대를 겨눈 채 솟에게 중얼거렸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

-그래 알아들을 수 있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지?

그때 솟의 품에 안긴 수이가 발버둥을 쳤다. 솟은 수이를 가볍게 누르며 아누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일어나서 빛을 쏘면 넌 무조건 앞으로 내달려라. 그 것 밖에 없다.

솟은 ‘빛을 쏜다’라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누는 이미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솟은 자꾸만 자신의 품에서 빠져 나가려 하는 수이를 등 뒤에 들쳐 엎고 언제든지 뛰어나갈 자세를 잡았다.

-지금이다!

아누가 벌떡 일어섬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는 둥근 막대기 끝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갔다. 솟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나갔다. 솟의 눈앞에서는 다른 하쉬들이 아누가 쏜 빛을 얻어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폭음을 내는 막대기를 들어 솟과 아누를 향해 마주 쏘았다. 솟의 귓가로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솟은 공포심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바라는 게 있다면 등에 업은 수이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사히 내보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으학!

솟의 등 뒤에서 아누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솟은 뒤를 돌아 아누의 상태를 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가죽을 벗긴 짐승의 머리통 같은 하쉬들은 이제 솟의 눈앞에 다다라 있었다.

-전부 비켜라!

솟의 맹렬한 기세에 하쉬들은 감히 폭음을 내뱉는 막대기를 가져다댈 수조차 없었다. 솟이 빠져 나가자 정신을 차린 하쉬들은 그의 등 뒤를 향해 폭음을 내 뱉는 막대기를 겨누었다.

-으하악!

막대기를 겨눈 하쉬들은 순간 모조리 밝은 빛에 휩싸여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깊은 상처를 입고 엎어진 아누가 모퉁이에서 기어 나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강력한 빛을 쏘아대었기 때문이었다. 아누는 수이를 업은 채 멀어져 가는 솟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토해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