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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책이 있다. 사실 책을 뒤적이지 않고서 웬만하면 끌리는 책은 별로 없다. 사실 제목부터, 표지 디자인까지 멋지고 예쁜 것은 얼마든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는 더 그렇다. 모두가 책의 제목을 색다르게 짓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도 하고, 표지 디자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다.

하지만 문득 어떤 제목을 들었을 때, 책의 겉표지에 끌려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 그런 책이 가끔 있다. 그중에 제목 자체부터 이 책을 사라고 권유하고 있다. 바로 이병률 시인의 <끌림>이다.

흰색 표지에, 깔끔하게 <끌림>이란 두 글자만 쓰여 있는 심플함에 반해, 제목에 끌려 구매한 이 책은 여행산문집이다. 여행기이기보다는 여행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책이다. 시인이자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구성작가 이병률이기에 다른 여행관련 서적과는 다르리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으레 요즘 나오는 여행서적들은 보면 한아름 사진과 빼곡하게 글이 담겨 있다. 혹은 빼곡한 글 대신 카피식의 글 정도만 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책장을 덮고 나면 허전함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이기에 조금은 남다름이 있으리라 기대했던 만큼 분명 이 책은 다른 여행서적보다 무언가 작은 미동이지만 마음속에 뭉클거림이 느껴진다.

더욱이 이 책은 단기간 어느 특정 지역을 다녀와서 쓴 책이 아니다. 무려 10년이란 시간동안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을 찍고 그 곳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담겨있다. 1994년부터 2005년 올 초까지 약 10년 동안 근 50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남긴 청량제 같은 사진과 글.

이 책은 그의 사적인 생각을 과감 없이 담고 있어 매력적이다. 사실 여행이란 것이 목적이 있다면 덜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병률은 일하다 말고 어디론가 떠나고픈 충동에 의해 뚜렷한 목적도 의도 없이 그의 발이 멈춰지는 곳 따라 여행을 다녀왔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는 그렇게 스물아홉이란 나이에서 어느덧 서른아홉. 올해로 마흔이 된 이병률 시인은 그가 처음 여행을 시작한 때부터 마지막 여행까지 그의 생각도 세월이 흐르는 만큼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새는 떨어지면서 세상 단 하나뿐인 유혹만을 생각했어. 마지막이었으니까. 마지막인데 마지막 이후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존재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이 발작적이며 동물적인 유랑을 마치고 나서 발작적이며 동물적인 유랑과 상관없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 -<끌림> 본문 중에서

그는 홀로 여행하면서 외롭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여행길에 친구가 있었다. 사진기라는 훌륭한 친구 덕분에 노르웨이, 이탈리아, 싱가포르, 베니스, 중국 등의 추억을 가지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실 길을 간다는 것, 홀로 걷는다는 것. 그것은 그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추억을 만든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 면에서 이병률은 50여 개국에서 만난 풍경과, 친구들 모두가 추억으로 남아 그의 인생에 자양분이 되었을 터.

끌림에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그가 정처 없이 떠났던 것처럼 목차도 없고, 페이지도 없다. 그냥 펼치다가 마음에 드는 장에 멈춰 읽을 수 있다는 점. 진정으로 그의 목적 없는 여행을 따라할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뒤에서부터 읽어 처음으로 가거나, 처음부터 읽어 마지막으로 가거나, 중간부터 읽어 앞뒤로 가거나 해도 상관없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서 읽어도 여행은 그런 거니까, 정처 없이 읽다보면 그 끝이 보이는 책이 <끌림>이다. 그의 짧은 글이지만 울림은 깊고, 멋들어진 기술이 있는 사진은 아니어도, 진심이 묻어나는 사진까지.

또한 이 책의 백미는 미혼이 스물아홉 청년이 쓴 사랑의 감정들이 진솔하게 묻어나온다. 그는 사진과 함께 순간순간 정답이 없는 사랑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생각을 기록했다. 그것 또한 정답이 아닐테지만, 동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유용한 사고가 아닐까, 싶다.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 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끌림> 본문 중에서


더불어 이 책 후반에는 카메라 노트라고 해서 여러 가지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까지 담아냈다. 여행노트와는 또 다른 볼거리이다. 특히, 여행 산문집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작은 사이즈의 책이어서 여행 가방에 넣고 다녀도 좋을 듯싶다.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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